정련된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천착해온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 고종석이, 한국 현대 시인 50명과 대표시집을 소개한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을 펴냈다.

2005년 3월부터 1년 간 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 ‘시인공화국 풍경들’을 묶은 이 책은 김소월에서 시작해, 김수영, 서정주, 신경림, 백석, 조은, 황지우, 채호기, 김영랑, 김지하, 정지용, 김기택, 고정희, 신현림, 고은, 심지어 동요 작가 윤극영에 이르기까지 두루 아울렀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 시문학 백년사에서 제 방 하나를 너끈히 가질” 만한 시인들의 나라가 책 한 권에 구축된 셈이다. 그의 책 속에 골골이 펼쳐진 모국어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은, 정교한 로드맵을 따라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라, “수많은 이면도로와 오솔길과 뒷골목”을 따라 걷는 내밀한 산책이다.

고종석은 마치 실재하는 시인공화국을 여행하기라도 하듯, 시인들을 공간과 장소에 빗대 분위기를 돋운다. 이를테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한국 현대 시문학의 수원지”로 평가하면서 시인공화국의 ‘정부(政府)’에 빗대 설명하고, 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를 ‘성채’에 견주는 식이다. 고종석은 골목길 카페같은 성미정의 시집 속으로 불쑥 들어가 커피 대신 블랙유머를 한 잔 들이마시고, 놀이공원이나 디즈니월드 같은 박상순의 ‘Love Adagio’ 속에서 부유하는 글자들과 함께 노닌다.


‘언어의 박물관’을 감상하는 즐거움

그러나 이런 공간 설정의 잔재미보다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시인들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과 언어다. 스타일리스트라는 세간의 평가답게 미려한 언어로, 순진한 처녀 같은 ‘모국어의 속살’을 무방비 상태로 드러내게 만드는 능수능란함에는 홀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고종석은 노향림의 ‘눈이 오지 않는 나라’에서 뛰어난 소묘력을 지닌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전람회를 읽어내고, 김경미의 ‘쉬잇, 나의 세컨드는’에서 상처 입은 자아가 휘두르는 자책의 채찍자국을 본다.

그 치밀한 시선이 절정에 달한 곳은 강정의 ‘처형극장’을 평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고종석은 1971년생 젊은 시인이 10년 전에 펴낸 시집을 뒤늦게 접하고 느낀 충격을 “유미교(唯美敎)의 진정한 교주”라며 아낌없는 찬사로 표현한다.

고종석이 “‘처형극장’의 아름다움은 음지의 아름다움, 검(붉)은 아름다움이다. 그 습한 아름다움은 들머리의 시 ‘아름다운 흉조(凶兆)’에서 일찌감치 펼쳐진다”고 평할 때, 독자들은 선혈 같은 노을이 어두운 습지 위로 흩뿌려진 풍경을 본다. 또한 “‘처형극장’을 리듬이 거세된 시집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단지 그 리듬이 이를테면 데쓰메털의 빠르고 격렬하고 거친 리듬을 닮았을 뿐”이라고 부연할 때, 강정의 시는 저승사자의 음산한 노래가 되어 독자들의 귓속을 파고든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요즘, 출판 시장에서조차 ‘용도 폐기’되다시피 한 시를 찾아 읽는 것은 무용한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종석은 “브로치나 가락지 없이 살 수 있듯 사람은 문학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시 없는 삶은, 그것도 삶은 삶이겠으나, 정신의 윤기를 잃은 삶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책을 덮으니 비로소 알겠다. 세속의 기준으로는 무용지물일지 모르나,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언어의 장신구’로 가득한 박물관이 바로 시의 세계이고, 또한 고종석이 기꺼이 행복한 수형 생활을 감내하겠다고 털어놓은 ‘모국어의 감옥’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