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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마음을 쉬러 갔던 북유럽 고양이 여행에서 만난 고양이들 중에

아직 소개하지 못한 고양이 가족이 있습니다. 식객 고양이 캅텐인데요,

스웨덴어로 '캡틴'을 뜻한다고 합니다. 캅텐은 집고양이가 아니지만

아저씨 댁에서 매일같이 밥을 먹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출출하면 슬그머니 현관 난간에 둔 밥을 먹고, 집고양이와
 
놀다가 가곤 합니다. 한국에서도 반 정착 형태로 살아가는 길고양이가

있는데, 캅텐도 그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밥은 얻어먹지만, 고양이의 자존심은 버리지 않는다."

당당한 자세로 식객 고양이의 자존심을 이야기합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캅텐을 위한 밥그릇과 물그릇은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주변이 초록 들판과 커다란 나무로 가득하고, 인가가 서로 떨어져 있어

사람들 눈에 밟힐 염려도 없는 시골 마을은, 식객 고양이 캅텐에게

더없이 좋은 삶터가 되어줍니다. 가끔은 어린 고양이들에게 나무타기

시범을 보이기도 하는군요. 


고양이 중에서도 검은 고양이에게 마음이 끌리는 건, 흑표범을 닮아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나무 위로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캅텐의 모습이 듬직하고 멋집니다. 고양이처럼 날랜 몸으로

저도 따라서 나무를 타고 싶어집니다.


끔 멋모르는 어린 고양이가 캅텐의 등 뒤를 급습하기도 하지만, 

'캡틴'이라는 뜻의 이름이 달리 붙은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노련한 솜씨로

순식간에 상황을 종료하고 포효하는 캅텐입니다.



흑표범 같은 얼굴로 포효하지만, 군살이 붙어 전성기는 살짝 지난 중년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성숙한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의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은

왠지 모를 충만함을 안겨주네요. 식객 고양이 캅텐,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저씨네 집을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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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스웨덴의 고양이 보호소를 찾아가는 일은, 사실 처음부터 약간 꼬였었다.

한국에서도 초행길일 때는 주소검색 사이트에서 지도를 출력해서 나가곤 하는데, 낯선 여행지에서

생명처럼 소중하게 지니고 다녀야 할 약도를 깜빡 잊고 챙기지 않은 것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존해서

찾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지금 제대로 가고 있나?' 하는 불안함은 더 커졌다.

사설 보호소이고 큰 공공기관도 아니므로 고양이 보호소로 가는 표지판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때 "앗, 저기!" 하는 목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회색 길고양이 한 마리가 화단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직 고양이 보호소를 발견하진 못했지만, 마침 두리번거리며 가는 도중에 길고양이를 만난 것이다.

러시안 블루 고양이인 듯한 회색 몸인데, 내가 알고 있는 러시안 블루는 대개 털이 짧고 탄탄한 근육을 지녔지만

녀석은 단모종이라기엔 털이 길었다.


스웨덴 거리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기에, 단독주택 화단에 웅크리고 있는 회색 길고양이를 봤을 때

'앗 길고양이다!' 하는 반가움 뒤로 '근데 저 녀석은 왜 저기 있는 걸까? 집을 잃어버린 집고양이인가? 

저기 있어도 될까?' 하는 걱정이 교차했다.

겨울이면 오후 3시만 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할만큼 밤이 유독 긴 스웨덴에선, 겨울철 길고양이가 견뎌야 할 

추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발견해도 '알아서 살겠지' 하고 방치하는 따뜻한 나라와 달리

거리에 나와있는 고양이를 발견하면 족족 보호소로 데려가는 것인지도.


스웨덴에서는 길고양이 또는 이른바 도둑고양이란 말보다 일명 '노숙고양이'라고 해서, 집 없는 고양이로 간주한다.

그래서 집에서 살아야 할 고양이가 집 밖에 있으면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간주해서 보호소로 데려간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고양이 보호소로 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혹시 근처 주택가에서 산책 나온 집고양이라면

내가 섣불리 개입해서는 안될 일이라, 일단 사람을 잘 따르는지부터 확인해보아야 할 것 같았다.

 

한데 슬쩍 다가가려 하니 고양이는 잽싸게 몸을 돌려 어디론가 휙 달아나버렸다.

몸을 낮추고 경계하던 모습이, 진짜 길고양이였나 싶다.

인간을 경계하는 눈빛은 어느 길고양이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만국 공통의 신호 같은 것이니 말이다.

가을을 넘어 겨울로 접어드는 지금, 여름에 만났던 그 고양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의 길고양이, 부디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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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심심하면 제 냄새를 사방에 묻히고 다닙니다.

'여긴 내 거다' 하는 소유 표시의 일종인데요. 가끔은

턱밑을 긁는 용도로 나뭇가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날도 뾰족 비어져나온 나뭇가지에 턱을 비비던 

고양이가 심심했는지 눈이 반짝해서는, 꽃을 한 입

덥석 깨물어 봅니다.  "
우적우적~냠냠~"

딱딱한 나뭇가지와 뻣뻣한 잎은 남겨두고

보드라운 노란 꽃잎 속살만 깨물어 먹어요. 꽃잎은

무슨 맛이 났을까요?  계란 노른자처럼 고소할까요,

아니면 그냥 잎들이 그렇듯이 떨떠름한 맛일까요?

"음.. 그냥 꽃잎 맛이구만." 어린 고양이는 시큰둥하게

혓바닥을 내밀어 입 안에 남은 꽃잎 맛을 지워냅니다.

모양은 예쁘지만 생각보다 맛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맛있었다면 형제들에게 막 자랑도 했을 텐데, 괜한

싱거운 짓을 했다 싶은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납니다.

"예쁘다고 다 맛있는 게 아니란다. 꽃은 그냥

그 자리에 핀 모습을 바라볼 때가 좋지 않니?"

어린 고양이의 10배도 넘는 세월을 살아 온 

할머니 고양이는 꽃을 담담히 바라볼 뿐입니다.

소유하지 않고도 꽃을 사랑하는 법을,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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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싸우자!"  "야, 살살 좀 해!" 

싸우면서 자라는 어린 고양이의 하루는, 가까이 있는 형제와

아옹다옹 몸싸움을 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뒷다리 허벅지에

딱 힘을 주고, 앞발로는 상대의 몸을 누르며 제압하는 폼이,
 
제법 싸움의 기술을 익힌 듯합니다.  


하지만 엄마에게까지 발톱 내밀며 달려든 것은 실수랄까요.

엄마 이마에 '참을 인'자가 여러 개 지나가는 게 보입니다.


'장난으로 싸울 때는 발톱 내밀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지!'

발톱에 코가 찍혀 아픈 엄마는 이렇게 호통치고 싶지만,

아기 고양이가 그만 엄마에게 헤드락까지 걸면서 입을 딱

막아버리는 바람에 말도 못하고 이맛살만 찌푸릴 뿐입니다.

'야, 너 괜찮겠어?' 옆에서 구경하는 형제 고양이는

그저 묵묵히 눈치만 봅니다. 원래 제일 재미있는 게

남의 싸움 구경이라니, 그냥 슬그머니 구경만 할 밖에요.
 

"엄마, 싸우자! 나 오늘은 엄마를 이길 자신 있어!"

뭣도 모르고 두 팔을 벌려
하악거리며 엄마에게 도발합니다.


노랑이에게 몸이 깔린 다른 녀석은 엉덩이가 무겁긴 하지만,

괜히 말이라도 잘못 꺼냈다간 자기에게까지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려워서 그런지 아무 것도 못본 척하네요.



"이 녀석이! 오냐오냐 했더니 엄마 무서운 줄 모르고."


"끼잉...잘못했어요." 힘센 엄마 팔뚝에 붙들려 그만

꼼짝 못하는 아기 고양이입니다. 나중에는 엄마 팔도

한번에 뿌리치고 뛰어나갈 만큼 몸이 자라겠지만,

지금은 엄마가 하라는 대로 순순히 따라야겠죠?

발톱과 이빨도 아무 때나 내미는 게 아니고, 싸움도 때와 장소를

봐 가면서 해야 한다는 걸, 아기 노랑이도 잘 배웠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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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은 저의 소원 중 하나였는데요,

집고양이는 산책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고, 길고양이는 대개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에 혹시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더라도

산책이 아닌 미행이 되곤 합니다만, 붙임성 있는 스웨덴의 길고양이를 만나

잔디밭을 산책할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 여행 도중에 흔치 않게 접하는

'고양이 산책' 기회이기에,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겠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발걸음을

따라잡기 힘들 만큼, 고양이는 혼자 산책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곳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영원한 안식처-삭막한 묘지의 느낌보다

고요한 쉼터라는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무덤과 비석의 크기로

죽어서까지 지위의 고하를 구별하고 싶어하는 이들과 달리, 이곳에선

고양이 한 마리가 누우면 딱 들어맞을 크기의 조그만 무덤과 비석으로

잠든 사람을 표시할 뿐입니다.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게 몸을 낮추니, 모든 세상이 고양이 눈높이로 보입니다.  

몸이 스르르 줄어들어 고양이와 같은 키가 되어서 나란히 걷는 듯한 기분입니다.

내가 낮아질수록 세상은 커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평화로운 산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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