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만나는 고양이를 포착하려면 어쩔 수 없이 플래시를 쓰게 됩니다.

번쩍 하는 불빛에 깜짝 놀란 고양이의 표정에는 경계심과 긴장이 뒤섞여 있습니다.


태어났을 때는 하얀 색이었을 네 개의 양말이, 지금은 회색으로 변했습니다.

흰색 양말에 때가 묻으면 회색 양말이 되는데, 한번 회색 양말이 되고 나면

어지간히 때가 묻어도 검은색으로는 잘 변하지 않는 것이 신기합니다.

아직은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길고양이, 구멍가게 쪽으로 슬그머니

걸음을 옮깁니다. 반쪽만 보이는 옆얼굴이 어쩐지 쓸쓸하게 보이는, 그런 날입니다.

 

비 오는 날, 길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피할까? 궁금한 마음에 우산을 들고 골목으로 나서 봅니다.


사람이 쓴 우산도 휘청휘청할 만큼 거센 비바람이 불어, 길 위로 고양이의 자취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고양이 레이더를 윙윙 돌려보면, 어디선가 잡히는 게 있습니다.

처마 밑에서 가만히 비를 피하고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물에 젖은 땅을 밟은 듯,

어린 고양이가 오도카니 앉은 땅 주변으로 동그라니 젖은 발자국이 또박또박 찍혔습니다. 

고양이와 눈높이를 맞춰 살그머니 쭈그리고 앉아봅니다. 가만히 보니, 검은 코팩 무늬에다

짜장면을 먹다가 국물이 한 방울 튄 듯한 점무늬까지 갖추었습니다.



비오는 날, 눈길은 자연스레 젖은 땅을 향합니다. 흙이 사라진 바닥에는 시멘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왼쪽의 사람 발자국 옆에 나란히, 고양이 발자국이 또박또박 찍혀 있습니다.

누구 발자국이 먼저 찍혔을까요?

오래 전 이곳에 처음 시멘트 바닥이 깔렸을 때, 나란히 찍힌 발자국처럼,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걷는 길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밀레니엄 고양이 일족 중에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길고양이가 있습니다.

왼쪽 눈은 금빛으로 빛나는 태양을 닮았고, 하얗게 변한 오른쪽 눈은 보름달을 닮아

보름달을 눈동자에 담았다는 의미로 '보름이'라 부르고 있는 수컷 고양이입니다.


보름이는 붙임성 좋은 길고양이들과 달리 소심해서, 인기척만 나면 숨곤 했습니다.

태생적인 소심함이 아니라, 어쩌면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의 본능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보름이를 외나무다리 위에서 딱 마주친 것입니다.


보통 저 외나무다리에서 눈이 마주치면, 여느 길고양이들은 잽싸게 몸을 180도 돌려

반대편으로 도도도도 달아납니다.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과 같은 속도로, 거리낌 없이

내달리지요. 그러나 보름이는 조심스레 한쪽 앞발로 기둥을 짚고, 천천히 뒤로 이동합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기에 균형을 잡기가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고양이보다 더 굼뜬 제가 외나무다리 반대편으로 갔을 때까지도, 보름이는 그렇게

천천히 후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흘깃 보더니 다시 그 자세로

반대편을 향해 슬금슬금 나아갑니다. 여전히 한쪽 발은 지팡이처럼 벽을 짚고,

다른 한쪽 발을 외나무다리에 얹은 채로... 한쪽 앞발이 보름이에겐 지팡이입니다.



천천히 멀어지는 보름이의 뒷모습을 보니 어쩐지 나이 든 할아버지 고양이가 지팡이에 의지해 

흐릿한 앞길을 걷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잘 살아갈 것만 같은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외나무다리 걷듯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런 고양이의 모습은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웃음으로 제 곁을 스쳐지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제 마음에 오래 남는 고양이의 얼굴은, 그렇게 고단한 삶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고양이의 얼굴입니다.

여간해선 정면으로 보기 힘들었던 보름이의 얼굴을, 오늘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덕에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앞길을 비켜주니 냉큼 뛰어내려 꽁지가 빠져라 잽싸게

달아나는 보름이. 다음에 만날 때는 보름이가 좀 더 편한 표정을 짓고 있길 바랍니다.
바람막이 없는 높은 곳에서 햇살바라기를 하는 길고양이들이 종종 눈에 띄는 걸 보면,

기나긴 겨울도 어느덧 다 지나간 듯하네요. 유독 눈이 심하게 내렸던 궂은 날씨도

혹독했던 겨울도, 지난 계절의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밀레니엄 고양이들 중에서 늘 다정하게 붙어 다니는 카오스 대장과 노랑아줌마의 소식

전해드려요^^ 처리해야할 일로 마음이 바쁘다보니 포스팅을 못하다가 이제야 올리네요.


'봄은 언제 오는가...'  카오스 대장냥이 혼자 고독을 씹고 있습니다.

따뜻해진 햇볕에 어느새 꾸벅꾸벅 졸음이 오는 카오스 대장...노랑아줌마가 슬그머니 끼어듭니다.

고양이가 슬그머니 끼어들면서 슬쩍 눈치를 볼 때의 표정이 참 귀여워요^^

고양이의 미묘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남의 집에 찾아왔으면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겠지!" 카오스 대장냥이 매서운 눈빛으로

저를 향해 추궁을 합니다. 옆에서 함께 바라보는 노랑아줌마도 함께 추임새를 넣을 듯한

표정이네요^^ 둘이 언제나 다정히 있는 모습을 보면 안심도 되고, 그래도 아줌마의 저력으로

꿋꿋하게 살아남고 있구나 싶어 든든하기도 합니다.


봄은 거의 문턱까지 와 있지만, 아직 바람 끝은 차가울 때가 있습니다.

왼쪽에서 바람이 불면 노랑아줌마가 카오스 대장냥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오른쪽에서 바람이 불면 카오스 대장냥이 또 노랑아줌마를 위한 바람막이가 되어

서로 의지하며 따뜻함을 나누는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언제까지나 보고 싶네요.

세월이 흘러도 노랑아줌마의 동안은 여전하네요. 겨울 내내 뭔가에 쫓기며 지낸 듯하던 시간도

이제 슬슬 마무리가 되어 가고, 블로그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이런저런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부산 지역의 이웃들께 알려드릴 소식도 하나 가지고 왔답니다.



[알림] '길고양이 통신원' 고경원이 부산 지역 캣맘들을 찾아갑니다. 



부산 동물학대방지연합 주최로 매년 2회 열리는 '반려동물 문화교실'의

2011년 상반기 주제가 길고양이로 정해져서, 강연자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총 4분이 강의하며,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2:50 <길고양이의 건강과 질병>(사하동물병원 박자실 선생님)

3:00-3:50 <길고양이를 둘러싼 주민간의 갈등, 그 해법은?>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신수미 팀장)

4:00-4:50 <부산/경남 일대 길고양이 학대 사건, 해결 사례>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

5:00-5:50 <길고양이 블로거, 9년간의 기록>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의 고경원)


부산은 거리가 있어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이번처럼 좋은 기회가 생겨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요,

길고양이 통신 블로그 이웃분들과도 인사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정비 중이라, 참석 신청은 전화로 받는다고 합니다. 051-817-0993

따로 참가비는 없고 무료 강연이라고 하네요.


*부산동물메디컬센터는 교대역 2번 출구, 또는 거제역 4번 출구와 가깝습니다.






 

턱 밑에서부터 목 언저리까지 난 하얀 앞가슴털이 귀여운 짝짝이가 지붕 밑 은신처에서

빼꼼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1월도 다 지나간 요즘이건만, 철 지난 단풍잎은 아직도 나뭇가지 끝에서

떨어질 줄 모릅니다. 아직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남은 것인지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나뭇가지에 매달린

단풍잎이 고양이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아주면 좋으련만, 단풍잎도 제 목숨 챙기기에만
 
급급합니다. 잠시라도 긴장을 놓으면 발아래 세상으로 툭 떨어져, 그만 빛을 잃고 말 테니까요. 


고양이 얼굴을 가리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자니, 인기척을 느낀

짝짝이가 화들짝 놀라 몸을 숨깁니다.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조심성이 많은 짝짝이는 

인기척에 놀라 숨지만, 곧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며 머리를 쏙 내밀 것을 압니다.

앞발에는 하얀 발목양말, 뒷발에는 긴 양말을 신어서 '짝짝이'라 이름 지어준 녀석이건만 

지붕에서 내려올 줄 모르니, 귀여운 짝짝이 양말을 잘 간수하고 있는지, 그새

세월의 때가 묻었는지 제 눈으로는 살펴볼 수 없습니다.
괜히 쌓인 눈을 앞발로 툭툭 쳐서 떨어뜨리면서 자기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냥 가지 말고, 자기에게도 뭔가를
좀 달라는 것입니다.

짝짝이라면 여간해서는 저를 향해 고함을 지르지 않던 녀석인데,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고함소리가 커졌습니다. 먹이를 조르는 아기새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입을 크게 벌리며

짹짹 울어대듯이, 지붕 위로 올라간 고양이들도 자기 존재를 큰 소리로 알려서 뭐라도 먹을 것

타 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두려움도 이기게 만드는, 생존을 위한 적응법입니다.

시 아래를 관망하던 짝짝이는 다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래 지붕 위는 힘이 약한 소심이 가족 3마리가 살고 있던 곳이라서, 짝짝이가 왜 지붕 위에서

머물러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납지 못하고 유순한 성격 탓에 지붕 위로 밀려난 것일 수도 있고,

잠시 마실 간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짝짝이가 지붕 위에 있던 것을 본 게

올 겨울만도 몇 차례 되니, 원래 있던 영역에서 밀려난 것인 듯하기도 합니다.

기운없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우는 모습을 보니 길고양이에게도

세력 다툼은 참 피곤한 일이로구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파벌 싸움만큼이나

치열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