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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공평동 재개발공사 현장 근처를 지나가다 종종걸음으로 가는 고등어 무늬 고양이를 만났다. 바삐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피해 공사장 벽 쪽으로 붙어 가는 걸음걸이가 조심스럽다. 두리번두리번 앞을 살피며 가느라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가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녀석은 굳게 닫힌 공사장 철문 아래로 슬그머니 몸을 낮추고 기어들어간다. 보통 이런 경우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인사를 하지만, 어쩐지 그 녀석은 철문 근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는 가지 않을 것 같았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공사장 철문 아래로 손만 슬그머니 디밀어본다.



역시 예감대로 고양이는 철문 근처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의아한 눈으로 이쪽을 본다. 분명 사람이 따라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니까 안심하고 있었는데, 저 네모난 기계는 뭘까 하고 궁금해 하는 눈빛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과 두려움 중 어느 감정을 따를지 저울질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만약 철문 아래로 내가 얼굴을 디밀었다면 녀석은 금세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은 무서우니까, 일단 마주치면 도망가야 하니까. 그러나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했다고 믿는 상황에서는 대개 고양이의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법이다. 제 꽁무니를 따라 들어온 네모난 기계의 정체를 파악해보려고 녀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덕분에 나도 녀석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밤늦은 시간 공사장은 인적이 끊겨 오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덕분에 밤이면 이곳은 하루 종일 먹이를 구하러 다니느라 지친 고양이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된다. 퇴근길에 공사장 철문 아래로 기어들어가는 고양이를 지금까지 몇 마리는 족히 보았다. 한데 녀석들은 왜 하필 위험한 공사장 자리로 자꾸만 찾아드는 걸까. 영역동물인 고양이가 아무 연고도 없이 이곳으로 숨어들진 않을 테고, 사람을 피해 임시로 숨어든 게 아니라면 이 공사장 부지는 한때 녀석들이 살던 영역이 아니었을까. 원래 주차장과 어학원 건물, 그리고 좁은 골목이 있던 지역이라 고양이가 몸을 숨길 장소도 많았으니까.


깃들어 살던 건물이 재개발로 헐리고, 때때로 밥을 챙겨주던 가게 주인이나 동네 사람들이 떠나도,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고 사람의 글을 읽지 못하는 길고양이는 그런 사정을 알 길이 없다. ‘늘 보던 익숙한 얼굴이 다시 와 주겠지, 내가 살 집도 다시 생기겠지’ 그런 부질없는 희망을 안고 밤이 되면 다시 홀린 것처럼 그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건 아닐까. 집에서는 헤어드라이어 소리에도 깜짝 놀라 도망가는 겁 많은 녀석들인데, 거대한 포클레인이 무섭게 쿵쿵 땅을 파대는 소음을 견디면서도 두려움을 꼭 참고, 그 허망한 기대 하나에 발목 잡혀 매번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재개발로 폐허가 된 공사장에 사람의 온기가 도는 날이 찾아오는 것보다, 원래 이 땅에 살던 토박이 길고양이가 먼저 동네에서 사라지는 시점이 더 빨리 올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유한한 존재이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할 시간이 인간보다 더욱 짧은 고양이에게는 더욱 그렇다.

 

  1. BlogIcon 초코언니
    2016.03.24 00:03

    누군가 기다릴 고양이 생각에 찡하네요 다시 봄이 찾아오니 다시 좀 살만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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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심 많은 길고양이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춘다. 처음 고양이를 찍을 때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놓칠세라 달려갔지만, 이제는 한 박자 쉬고 천천히 다가가는 게 낫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나의 반가움이 처음 만난 고양이에게도 똑같은 감정으로 전해지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오히려 반가워하는 몸짓이 크면 클수록, 기뻐서 다가가는 속도가 빠를수록 고양이는 위협을 느끼고 먼저 달아난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찍을 때는 적당한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 다가가기는 하되 천천히, 녀석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속도로만. 그렇다고 마음 둔 녀석들이 멀리 달아나는 걸 맥없이 보고 있을 만큼 소극적이지는 않게.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를 안심시키면서 다가가는 요령은 오리걸음신공이다. 몸을 낮추고 체중을 실어 걷다 보면 무릎이 아파서 먼 거리를 이동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가깝다면 괜찮은 방법이다.

그렇게 살금살금 움직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골목길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몸을 낮추고 엉덩이는 바닥에 붙이고 앉아 네가 불편해한다면 더 쫓아가지 않을게하고 마음속으로 신호를 보낸다. 내가 있는 쪽을 틈틈이 돌아보며 상황을 살피던 고양이가 창살 너머를 지긋이 보더니 저기다싶었는지 눈을 빛낸다. 순식간에 슬그머니 몸을 납작하게 숙이고 철문 아래로 기어들어가 버린다.



사람은 따라 들어갈 수 없지만 자신은 통과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을 때 길고양이는 걸음걸이부터 달라진다
. 몸을 낮추고 위축된 듯 걷던 자세도 위풍당당해진다. 창살 너머 공터로 기어들어가 내가 있는 자리를 다시 확인한 녀석은 아예 식빵 자세로 앉아 겨울 햇볕을 쬐고 있다. 고개를 갸웃하며 여유 있게 바라보는 눈빛은 여기까지는 너도 못 따라오겠지?’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왼쪽 귀 끝이 잘린 것을 보면 TNR 고양이라 근처에 돌보는 분이 있을 텐데, 아마 밥 주는 사람 말고는 마음을 터놓지 않거나 그분들에게조차 거리를 두는 녀석일 확률이 높다.

 

억센 창살이 고양이와 나 사이를 가로막지만, 사진을 찍을 때 이런 구조물이 꼭 방해 요소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직선이나 곡선의 강한 모양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양이에게로 시선이 집중된다. 이를테면 창살 형태를 활용한 천연의 액자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창살에 사로잡힌 길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인간 세상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수월해진다.

 

액자가게에서 맞춘 액자는 모양이나 색깔에 한계가 있지만, 거리에서 발견하는 이런 액자는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다. 녹슬어 떨어져나간 페인트 자국, 삭아 바스러지는 창살의 모습에는 인공적인 가공으로는 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담긴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찍으며 또 한 가지 배운다. 장애물로만 여겼던 창살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는 것을. 그건 반드시 길고양이 사진에만 국한된 깨달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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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부터 다시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주말이나 휴가 때 짬짬이 고양이 여행을 떠나는 걸 제외하면 직장에 매인 몸이라 평일에는 다른 지역의 길고양이를 만나러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길고양이와의 만남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점심 먹고 남는 짬을 활용해 고양이 산책을 나선다. 회사 뒤편 안쪽 길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오래된 주택가 골목이 나온다. 이 일대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만나러 가는 나만의 짧은 여행이다.

 

처음 골목을 다니기 시작할 때는 한 마리도 만나지 못한 채 허탕치고 돌아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한 보름쯤 골목을 누비고 다녔더니 숨은 길고양이가 한두 마리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골목 안쪽에서 처음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고양이 한 마리가 사는 곳 근처에는 반드시 또 다른 고양이도 있기 마련이므로.

 

전봇대 뒤나 계단 후미진 곳에 조심스럽게 숨겨둔 길고양이 밥그릇을 발견할 때면 더더욱 반가웠다. 저 밥그릇은 근처에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암호이고, 이 동네 어딘가에 몸을 의탁한 고양이들이 조금은 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렇게 내 눈에 들어온 길고양이 출몰 지역을 길고양이 골목으로 부른다.

특히 마음 가는 길고양이 골목 중에 고양이 계단이라 부르는 장소가 있다. 한쪽 귀 끝에 TNR 표식이 있는 노랑둥이 두 마리가 주로 활보하는 장소다. 이중 한 녀석은 꼬리가 지팡이 모양으로 꺾여 있어서 꺽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붙임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껏 만난 길고양이들 중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계단 끝에 서서 꺽꼬가 놀고 있는 계단 위를 올려다보면, 녀석은 사람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냐앙 울면서 허둥지둥 계단을 뛰어내려온다. 그러고는 계단 기둥에 머리를 부비며 반가움을 표현하다가 슬금슬금 다가와 내 발치에 엉덩이를 척 갖다 댄다. ‘아니, 이 녀석이 날 언제부터 봤다고싶어 한편으로는 당혹스럽다가도 이 동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사람만 보면 달려올까하는 생각에 찡해진다. 녀석은 남자사람과 눈이 마주나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붙임성만큼은 어디 가지 않는지 금세 다시 몸을 드러내곤 했다.

 

꺽꼬의 환대를 받으며 고양이 계단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수가 없다. 점심을 최대한 빨리 먹고 사무실을 나왔을 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식시간은 길어야 40. 회사와 길고양이 골목이 있는 주택가를 빠르게 걸어 오가는 데 왕복 30분 정도 걸리니, 막상 길고양이를 만나도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턱없이 짧을 10분의 위로 덕분에 고단한 하루를 견딜 힘을 얻는다. 오히려 짧은 시간 어렵게 만났다 헤어지기에 그 만남이 더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1. 이하나
    2015.08.08 09:33

    저도 회사 근처에 있는 고양이들로 위로받으며 살고 있죠. 궁디팡팡하면서 얘기해요. 네가 나를 장기근속자로 만들어 줬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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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기 시작한지 올해로 어느덧 13년째다. 첫 길고양이책을 출간한 2007년부터는 세계 고양이 명소와 애묘문화를 취재하는 세계 고양이 여행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국가를 비롯해 애묘문화가 발달한 일본, 타이완의 고양이 명소를  꾸준히 한국에 소개하다 보니, 애묘인을 위한 ‘12일 고양이 투어프로그램쯤은 어렵지 않게 짤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어떻게 하면 가는 곳마다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느냐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낯선 지역에서 길고양이를 찾아야 할 때 1순위로 꼽는 장소가 있다. 조성 역사가 오래된 원도심 지역이나 골목 많은 주택가다. 길고양이를 만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기도 하거니와, 허탕을 친다 해도 낯선 골목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기에 길고양이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보상해준다. 그곳에는 길고양이뿐 아니라 그들에게 마음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 사례를 다양하게 발굴하고 싶었던 내게는 딱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나의 주 활동 무대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보자

하지만 이제 막 길고양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따로 권해주고 싶은 방법이 있다. 해돋이 명소 추천받듯 길고양이 출몰 지역을 콕 집어달라 해서 다녀오는 것보다,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의 길고양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길고양이의 삶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알지도 못하는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것보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고양이 여행이란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 길고양이 통신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라는 부제를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상적인 공간은 익숙해서 별 볼일 없는 곳이 아니라, 익숙하기에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20027행운의 삼색 고양이가 살던 종로 빌딩가 화단이 그랬다. 녀석을 내 인생의 첫 길고양이로 삼기 전에도 스쳐 지나가는 길고양이를 찍은 적은 더러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내게 특별한 고양이가 된 건 장기적으로 관찰과 기록을 시작한 첫 길고양이였기 때문이다. 행운의 삼색 고양이가 살던 종로 빌딩가 화단은 당시 취재를 위해 매주 다니던 동선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꾸준히 관찰할 수 있었고, 그 고양이가 어렸던 시절부터 어미가 되어 새끼를 돌보는 모습, 동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까지 오랜 시간 지켜보며 길고양이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 사는 동네라면 길고양이는 어디든 있다.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기에, 혹은 그만큼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에 쉽게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부담 없이 자주 찾아갈 수 있는 공간에서 일상 여행자의 마음으로 길고양이 관찰을 시작해보자. 직장 근처도 좋고, 집 근처도 좋다. 익숙한 동네에서 충분히 길고양이의 삶을 지켜본 연후에 새로운 곳을 탐험한다 해도 늦지 않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사는 곳은 가까울수록 좋다. 그 친구가 길고양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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