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에서 우러나온 거짓말을 흔히 ‘하얀 거짓말’이라 부른다. 들어서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위로가 되는 거짓말도 있지만, 시절이 하도 수상하다보니 ‘하얀 거짓말’을 가장한 구린 거짓말도 있는 법이다. 이렇게 선의의 거짓말을 가장한 속 검은 거짓말을 그대로 믿다 보면, 엉뚱한 상황에서 뒤통수를 맞는 억울한 경우도 생긴다.
‘본심에서 흑심까지-거짓말 심리백서’(하이파이브 펴냄)는 단순히 듣기 좋은 거짓말 뿐 아니라,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격언과 같이 일상적인 말 속에 담긴 속뜻을 한 번 삐딱하게 꼬아서 바라본 책이다. 일본 와세다대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인 글쓴이는, 달콤한 말에 넘어가기보다 말의 속뜻을 한 번쯤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글쓴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을 여섯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친절함의 탈을 쓴 거짓말, 체면유지용 거짓말, 생색내기용 거짓말, 획일화를 강요하는 거짓말, 교훈이라는 이름의 거짓말, 책임회피용 거짓말이 그것이다. 일단 잘 정리된 목차만 봐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실속 없는 거짓말과 그 속뜻을 알 수 있어 유용하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인간 거짓말 탐지기'●
그런데 소개된 거짓말의 유형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말보다, 오히려 검증된 삶의 지혜처럼 들리는 말이 눈에 띈다. 이건 왜일까? 빤한 격언과 듣기 좋은 공치사는, 위기 상황에서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고 글쓴이는 강조한다. 그럼 친절함의 탈을 쓴 거짓말엔 어떤 게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예컨대 누군가 “마음에 있는 말 다 털어놔 보게”하고 어깨를 두드린다면, 누구나 “저, 그러면…” 하면서 속내를 터놓기 쉽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꼬임에 넘어가면 후회할 일만 남는다”고 냉정하게 조언한다. 거절당한 사람의 체면유지를 위한 거짓말로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도 흔히 하게 되지만, 이 말 역시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바보가 된단다. 게다가 “사랑만 있으면 걱정 없어요”라는 거짓말에는 한숨을 쉬며 “그러니 주위에서 늘 걱정을 하지”하고 되받기까지 한다.
글쓴이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잘 풀린다”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무슨 일에든 도전하라”라는 흔한 말 역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한 것과 생각 없음은 구별해야 하며,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젊었을 때 이것저것 집적대기만 하다가 어중간한 인생이 되기 딱 좋기 때문이란다.
특히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 “굳이 사서 고생하면 성격만 망가진다”고 받아치거나, “재주 많은 매는 발톱을 감춘다”는 격언에 “내놓지 않는 발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조언하는 부분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이렇듯 글쓴이는 지극히 현실에 기반한 거짓말 탐지기 역할을 충실히 한다. ‘~할 때 해야 할 ~가지’와 같은 말랑말랑한 격언집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냉소적인 이 책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으므로, 이런 역발상도 한번쯤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훈이의 재치 있는 만화도 이 책의 재미를 더욱 빛내준다.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가 복간됐다. 9월 말 동문선에서 나왔는데, 친숙한 열화당 판의 제목 대신에 <밝은 방>이란 제목을 썼다. 복간된 책은 15000원이니 절판되었을 당시의 책값에 비하면 거의 3배로 값이 뛰었다. 가격이 오르고, 제목이 바뀌고, 동문선 특유의 좀 '덜 세련된' 표지로 바뀌었어도, 이 책을 기다린 사람들이라면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열화당 판에 비해 도판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 도판을 스캔해서 쓸 때 두드러지는 망점이 대부분의 사진에서 나타난다. 아마 필름 원본이 아니라, 열화당 판에 수록된 도판을 그냥 스캔해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사진에 관한 에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좀 멀더라도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열화당 구내서점에 남은 재고를 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십여 권 가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 복간한 것은 좋았지만, 기왕에 할 거 제대로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동문선 판 <카메라 루시다>, 아니 <밝은 방>은 복간 소식을 들으며 느꼈던 설렘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안타까운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몰개성적인 잿빛 시멘트 건물로 일관한 한국의 도서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펴냄)에 등장하는 세계의 도서관 건축이 낯설면서도 부러울 것이다. 평생 도서관학, 문헌정보학을 연구해 온 최정태 부산대 명예교수가 ‘도서관 문화기행’이라는 독특한 테마로 집필한 이 책은, 뉴욕 공공도서관, 미국 의회도서관,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장크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 마자린 도서관 등 해외의 유명 도서관 십여 곳의 모습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 쓴 여행서이다. 더불어 한국의 전통 도서관 격인 창덕궁 규장각과 해인사 장경판전도 함께 소개했다.

오늘날 해외여행 시 들러야 할 장소로 도서관이 거론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필자는 “중세 시대만 해도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귀족, 성직자, 학자들이 여행 중에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도서관”이었다고 강조한다. 즉 “도서관 순례는 지식과 교양을 재충전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며, 영혼의 요양을 겸한 여행”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도서관 순례의 의미를 담아 기행 대상지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해당 국가에 전수된 지식의 정수를 담고 있으면서 문화 교류의 장소로 기능하는 국립도서관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수도원 도서관이다.
높은 천장, 빽빽한 책 가득한 애서가의 천국
필자는 해외의 도서관을 탐방하면서 우수한 도서관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든다. 아름답고 유서 깊은 건물, 100만 권 이상의 장서, 세계사를 움직인 인물이나 역사에 관한 포괄적 장서나 기록물, 1450년대 이후 1600년 이전까지의 초기 간행본 소장 수량,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나 ‘36행 성서’ 또는 셰익스피어 초판본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가 그것이다.

이중 철강왕 카네기의 기부로 1902년 착공된 뉴욕 공공도서관은 위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대표적 도서관이다. 85개의 분관과 4개의 전문 도서관으로 구성된 이곳은 신고전주의 양식에 입각한 건축물 양식이 이채롭다.

이곳에서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지식의 길잡이를 상징하는 ‘장미열람실’이다. 장미는 예로부터 ‘길을 찾아주는 진실한 방향’을 상징하기에 책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는데, 이러한 모티브는 미국 의회도서관 천장 돔에 새겨진 320개의 황금 장미꽃 장식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러면 여행의 또 다른 축인 수도원 도서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독일 남부 울름시에 위치한 비블링겐 수도원 도서관에서 그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도서관은 1781년 성채와 같은 규모로 완공된 수도원 내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이 23미터, 폭 12미터 규모의 복층 구조인 도서관 메인 홀은 궁전을 연상시키는 웅장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1층 동편에는 베네딕트 교단 원리를 상징하는 4개의 여신상이, 서편에는 법학, 자연과학, 수학, 역사를 의인화한 4개의 여신상이 지키고 있다. 화가 마르틴 쿠엔이 1744년에 그렸다는 천장화 역시 “지식은 하늘, 곧 신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믿음은 곧 지식”이라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이밖에도 한국의 전통 도서관으로 규장각과 해인사 장경판전을 소개했으나 해외의 도서관과 달리 그 명맥만 희미하게 유지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때로는 웅장하고 화려하게, 때로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도서관의 모습이 시원한 화보로 펼쳐지므로, 직접 도서관 기행을 떠난 듯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다.

최근 출간된 '내 사랑의 역사: 엘로이즈&아벨라르'(북폴리오)를 뒤적이다가 눈에 띈, 인상 깊은 한 대목.

위안의 편지 letter of consolation는 자신의 불행한 삶을 편지로 써서 보냄으로써,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고통이 사실 그다지 크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만들려는 의도로 쓰였다. 2만 단어에 이르는 그 편지는 단순히 아벨라르의 삶만을 이야기하는 자서전이 아니었다. 몇 세기 동안 그 편지는 그가 직접 지어 붙인 '내 불행의 역사 Historia Calamitatum Mearum'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왔다.

아벨라르는 '위안의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편지를 읽을 이름 모를 수도사에게 자신의 고통스런 지난날을 털어놓는다. 12세기에는, 사는 게 힘겹다고 느끼는 수도사들에게 이런 편지가 역설적인 희망을 주기도 했나 보다. 이른바 '초기 편지'에 해당하는, 엘로이즈와 아벨라르가 주고받은 8통의 편지 중에 5통이 아벨라르의 것이다. 아벨라르는 이 편지에서, 공공연히 알릴 수 없었던 비밀결혼, 축복받지 못한 아들의 출산, 강제 거세, 연인과의 생이별 등을 적나라하게 털어놓는다. 편지라기보다는, 편지 형식을 빌린 회고록이라고 해야 어울리는 글이다. 파란만장한 아벨라르의 젊은 시절은, 다른 수도사들이 '이 자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행복한 거로군' 하고 위안을 느낄 만큼 충분히 극적이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시대로부터 900년이 지난 요즘은, 인터넷이 이런 '위안의 편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내비치는 괴로움에 자신의 상태를 견주어 상대적인 위안을 얻는 일이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빤해 보이는 휴먼 드라마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힘들 때 위로받고 싶고, 힘든 사람이 눈앞에 있을 때 울컥하면서 위로하고 싶어지는 게 평범한 사람의 마음이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 바로 당신.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앞으로도 모르고 지나칠 확률이 더 높겠지만, 어쨌든 그런 위안의 편지를 필요로 하니까 말이다.
“하늘 아래, 아이들이 공을 차고, 김훈이 글로 적다.”

사진집 <공차는 아이들>의 뒤표지에 기록된 한 줄의 문장은, 이 책의 기획 의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진가 안웅철의 웅숭깊은 시선과 정제된 김훈의 글이 어우러진 책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 뿌듯하게 와 닿는 양장 표지의 단단한 만듦새만큼 듬직하고 힘이 있다.

표지와 속지까지 더해도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책을 한 장씩 넘기는 기분은, 맛은 더없이 훌륭하지만 양은 감질나게 적은 케이크를 먹을 때처럼 조마조마하다. 김훈의 글은 케이크 시트와 시트 사이에 얄팍하게 발린 크림처럼, 사진 사이로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글이 짧다고 해서 사유의 깊이도 덩달아 얄팍해지는 것은 아님을, 김훈은 보여준다.

“둥근 것은 거기에 가해지는 힘을 정직하게 수용하고 땅에 부딪치고 비벼지는 저항을 순결하게 드러내서 빼앗기고 뺏는 동작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시킨다. 멀리 하프라인을 건너서 다가오는 공은 지나간 시간과 공간의 모든 궤적과 충격, 흐름과 끊김, 전진과 후퇴의 모든 자취들을 그 안에 지니면서 늘 현재의 공이고, 닥쳐올 모든 시간의 가능성이 그 현재의 시간 속에 열려 있다. 그래서 공은 굴러가고 인간은 쫓아간다. 공이 굴러갈 때, 굴러가는 공을 작동시키는 힘은 쫓아가는 나의 힘이 아니고 그 공을 차낸 너의 힘이다. 너의 힘이 공 속에서 살아서 땅 위를 굴러가고 내가 그 공을 쫓아서 달릴 때 너의 힘과 나의 힘은 땅 위에서 대등하다. 공은 여전히 만인의 것이고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둥근 공 속에 담긴 인생의 비의
공은 둥글고 작은 세계다. 둥글기 때문에 어디로든 튀어나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히 한가운데가 텅 빈 가죽 조각의 총합을 넘어, 공이 인생에 대한 비의를 담게 되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면서부터다.

제목이 <공차는 아이들>인 만큼,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피사체는 역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공간은 다양하다. 마당 대신 좁고 긴 동선을 공유하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흙먼지가 휘날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굽이굽이 휘어드는 골목마다 사연을 간직한 골목길에서 아이들은 공을 찬다.

어떤 소녀는 공을 차기보다 보물처럼 소중히 어루만지고, 어떤 소년은 적막한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공을 친구 삼아 굴리며 함께 달린다. 그러나 굳이 책 제목에 드러나는 연령대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을 두루 아우름으로써,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공이라면 자연스럽게 축구가 연상되는 월드컵이 벌써 먼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 <공차는 아이들>은 언뜻 보기에 ‘뜰’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이 책은 월드컵과 무관하게 발간하길 잘했다. 축구 열풍에 편승한 책으로만 평가받기에는 아쉽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길, 길 위의 사람들, 그들의 발끝에 차여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의 움직임을 따라, 마음의 여백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진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