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말. 하지만 어떤 말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당신의 가치를 발견해 줄 사람이 있을 거예요”처럼 진심을 담은 격려는, 인생이 꼬여 절망하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비록 그 말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문제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은 얻게 된다. 《긍정적인 말의 힘》(웅진윙스)은 이처럼 말 한마디에 담긴 놀라운 힘을 보여주고, 어떻게 하면 그 힘을 이끌어낼 것인지 보여준다.

35년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쳐온 할 어반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소홀히 하기 쉬운 말의 영향력을 알리는 데 전념해왔다. 저자는 긍정적인 말의 힘을 부각시키기 위해 부정적인 말의 반작용을 먼저 소개하는데, 사람들이 무심코 쓰는 ‘악명 높은 말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욕이나 불쾌한 말, 두 번째는 불평·투덜거림·칭얼거림, 세 번째는 잔인하거나 고통을 주는 말, 마지막으로 무례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말이 그것이다. 마치 어렸을 때부터 “네까짓 게 뭘 한다고?”처럼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 늘 위축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친구와 생활하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이런 말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마음을 열어 주는 긍정적인 말의 힘
그럼 어떤 말이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까? 저자는 먼저 어떤 말을 ‘선택’해야 할까를 스스로 고르게 한다. 그가 제안한 ‘내가 선택하는 매일의 대화’ 목록은 상반된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다.

예컨대 이 목록은 ‘빈정대다<->진실로 대하다’와 같이 단순히 대립되는 말부터 ‘이름을 생략하고 인사하기(안녕)<->이름을 불러주기(안녕, 크리스)’와 같이 행동과 결부되는 사례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말의 내용뿐 아니라, 목소리의 톤, 신체 언어, 스킨십까지 포함한 진실된 말일 수록 상대방에게 더 큰 변화의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둠직하다.

저자는 긍정적인 말의 유형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말의 힘에 대해 명사들이 남긴 격언을 소개함으로써 주장을 한층 설득력 있게 설파한다. 예컨대 ‘서로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칭찬을 하라’고 조언할 때에는 “인간이 가진 본성 중 가장 깊은 자극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은 욕망”이라는 존 듀이의 명언을 끄집어낸다. 하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밖에도 ‘관계를 맺고 치유하는 사랑의 말을 하라’ ‘존경과 감사를 보여주는 친절한 말을 하라’ ‘우리를 웃게 만드는 재미있는 말을 하라’ ‘가족을 하나 되게 하는 애정 어린 말을 하라’와 같이 가족, 친구, 직장 선후배 등 다양한 대상에게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을 두루 실어 유용하다. 그의 조언이 너무 많게 느껴진다면, 책머리에 실린 테레사 수녀의 말을 기억하자.

“친절한 말은 짧고 말하기도 쉽지만, 그 메아리는 오래 간다.”
소설가는 소설로, 감독은 영화로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들이 주 무대를 떠나 그림책 위에서 대결을 펼친다면 어떨까? '슬리피 할로우', '유령 신부' 등에서 그로테스크 미학을 선보인 팀 버튼, 그리고 대서사시를 방불케 하는 소설 <반지의 제왕>으로 명성을 날린 존 로날드 로웰 톨킨이 각각 그린 그림책을 소개한다.



먼저  J.R.R.톨킨이 직접 동화를 쓰고 그림도 그린 <블리스 씨 이야기>(자유문학사)를 살펴보자. 역자 후기에 따르면, 톨킨은 1920~1930년대에 걸쳐 <실마릴리온>을 구상하던 무렵 이 그림책을 그렸다고 한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장편 소설을 쓰는 동안 머리를 식히려고 에세이를 썼던 것처럼, 톨킨 역시 소설 속에 거대한 환상 세계를 구축하면서 색다른 기분전환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블리스 씨 이야기>는 고지식한 노신사 블리스 씨가, 처음 장만한 노란 자동차를 타고 돌킨스(‘톨킨’을 살짝 비튼 이름) 가족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대소동을 그렸다. 운전이 서툰 블리스 씨의 차에 치여 어쩔 수 없이 동승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고, 마침내 숲속에서 산적 노릇을 하는 봉제곰 삼인조까지 가세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꼬여간다. 여기에 블리스 씨가 기르는, 기린처럼 목이 긴 토끼 지래빗(Girabbit)이 등장하는 등 환상과 현실이 유쾌하게 뒤범벅된다.


실제로 톨킨은 1932년 자동차를 구입해 운전을 배우면서 가족과 함께 동생의 과수원을 찾아갔는데, 그 날 두 번이나 펑크를 내고, 제방 벽을 부수는 등 좌충우돌했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이 그림책 속 블리스 씨의 모습에 익살스럽게 녹아 있다. 강박관념 없이 끄적인 듯 만든 그림의 느낌이 살아있고, 톨킨의 고풍스러운 손 글씨를 접할 수 있어 이채롭다. 

그림책 작가로 변신한 감독과 소설가

그로테스크한 팀 버튼의 영화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새터)을 읽어보자. 사실 이 책은 ‘읽는다’고 말하기에는 멋쩍은 책이다. 수록된 글의 분량이 웬만한 시집보다도 더 짧기 때문이다. 대신 명쾌한 그림으로 상황을 압축해 보여준다. 기괴한 숙명을 타고나 괴짜 취급을 받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주인공들은 신경질적인 펜 선으로 삐뚤빼뚤 그려진다.

 

팀 버튼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모두 부조리한 관계로 엮여 있다. 예컨대 ‘마른가지 소년과 성냥 소녀의 사랑’에서 마른가지 소년은 성냥 소녀의 열정에 반하지만, 둘의 사랑이 타오르자마자 소년의 온몸도 불타버린다. ‘로봇 소년’에서는 인간인 스미스 부인과 전기 믹서가 혼외정사를 나눈 결과로 로봇 아기가 탄생한다. 한편 표제작인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에서는, 굴 껍질 얼굴로 태어난 아들의 머리뚜껑을 따고 정력제 삼아 삼켜버리는 비정한 아버지까지 등장한다.


두 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비틀린 성격을 지녔다는 점이 닮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세계관이 명확히 다른 만큼 두 책의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다.  톨킨은 블리스 씨와 친구들이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을 맞는 결말로 일반적인 동화책의 기승전결을 따랐지만, 팀 버튼의 그림책 속에는 구원이 없다. 

 

팀 버튼의 세계에서 자신의 결함이나 이해받기 힘든 남다름 때문에 고통 받는 캐릭터들을 기다리는 것은 파국 뿐이다. 그들의 고통은 절망적이다. 순수한 결함 그 자체인 캐릭터에게, 결함을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대처법은 자기 자신의 소멸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서 2006년 발표한 어느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20, 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가장 혈기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이 무렵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날로 심해져가는 경쟁 사회에서 박탈감이나 우울감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어서 힘들겠다”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대사가 공감대를 얻는 건 그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마르탱 모네스티에가 무려 20여 년간의 자료 조사와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한 <자살>(새움)은, 이처럼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이 마지막 탈출구로 선택한 자살의 역사와 방법, 실제 사례들을 조망한 책이다. 자살의 방법, 자살하는 이유, 자살하는 사람들의 특성, 자살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 자살에 얽힌 불가사의한 사건들, 자살로 위장된 타살, 문학 속의 자살, 심지어 동물들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폈으니, 그야말로 ‘자살의 백과사전’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양도 방대해 번역된 분량만 600여 쪽에 달한다.
책에 소개된 자살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목매달기, 손목 긋기, 투신하기 등과 같이 흔히 시도하는 방법 외에도, 세 마리의 사자가 들어있는 우리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루이 엘메다 공작, 삽을 이용한 단두대를 만든 제분업자, 피아노를 단두대처럼 목등뼈에 떨어지게끔 설계한 자살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자의에 의한 자살뿐 아니라 타의에 의한 명예 자살도 언급한다. 독당근을 탄 사약을 마시게 한 그리스, 아주 얇게 편 금박을 자살자에게 삼키도록 한 중국, 할복자가 배를 가르고 개착인이 목을 치게 한 일본 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한편 통제할 수 없는 공포가 자살을 촉발하는 경우도 있다. 1938년 10월 한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오손 웰즈의 방송 사고가 그 예다. 그가 H.G.웰즈의 ‘스타워즈’를 각색한 내용을 너무나 실감나게 이야기한 바람에,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고, 공포에 질린 시민 일부는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 통계와 다양한 사례로 나열되는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살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이제 그만 생을 마치려 합니다>(해토)는 ‘유서로 본 자살의 심리탐구서’라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도입부는 흔히 볼 수 있는 자살에 관한 일반론을 소개했지만, 정작 마음을 흔드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다양한 유서들이다. 우리 주변에 한두 명은 있음직한 평범한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얼마나 많은 마음의 갈등이 저 글귀 속에 들어있는 것일까.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하지만 이제 당신을 포함하여 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하겠어. 나 때문에 근심할 일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말이야.”

“삶은 고통과 불행일 뿐, 정말 괴로웠어요. 다시 한 번 환멸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어요.”

자살자들은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내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여러 번의 예비 신호를 보낸다. 자살은 그 중 마지막 신호다. 누군가는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을 차분하게 정리하며 맞이하고, 누군가는 죽기 싫지만 억지로 죽음에 끌려가는 듯 원망하고 저주한다. 자살자들을 의지박약한 사람이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그들의 손을 한번쯤 잡아줄 수는 없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2005년에 기획했던 단행본 <새빨간 미술의 고백>이 올해 7월 말에 출간됐다.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현대미술 분야를 다뤘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좋다. 무엇보다도 '쉬운 미술 이야기'를 가장한 신변잡기적 에세이가 아니라, 작품에 대해서만 논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선전하고 있어서 고무적이다. 퇴사한 뒤 출간된 책이라 판권에 내 이름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내심 반가운 소식이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편집자 분투기>에서 책이 꽂힌 모양새에 따라, 즉 책이 누워 있는지, 서가에 세로로 꽂혀 있는지에 따라 그 책의 시장 반응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잘 팔리는 책은 오랫동안 독립 매대에 누워 있지만, 반응이 미지근한 책은 그냥 서가에 꽂히기 마련이다. 일단 오프라인 대형 서점에서는, 신간 코너의 잘 보이는 곳에 책이 '누워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YES24 미술일반/교양 부문,  알라딘 예술/대중문화 부문 베스트셀러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YES24 미술일반/교양




알라딘 예술/대중문화
편집자로 일하면서 책을 만들 때의 즐거움 중 하나는 '가능성 있는 저자'를 발굴하는 것이다. 반이정 씨의 경우도 그랬다. 2005년 초 단행본 출간을 기획했을 때 반이정 씨의 대중적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미술잡지를 돈 주고 사서 볼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저자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겠지만, 적어도 일반 대중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저자 이름으로 나온 책도 아직 없었다. 2003년부터 1년간 중앙일보에 이 책의 씨앗이 된 미술 칼럼 '거꾸로 미술관'이 연재되긴 했지만, 연재 후 2년의 공백이 생긴 상황에서 신문 연재의 덕을 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20~30대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읽힐 만한 재기발랄함이 있다. 이를테면 아래 원고와 같이.

[반이정의 거꾸로 미술관]
"예술이란 일종의 용도변경이다"

1. 이 작품이 재현해 보이려는 것은. 어느 원주민 부족의 가면(假面)입니다.

2. 가면이란 자신의 본색을 은폐하는 데 사용되는 고전적인 위장술이지요.

3. 이 작품이 위장술을 위해 채택한 방법은 원자재의 용도 변경 입니다.

4. 예술품으로 용도 변경 원자재는. 원래 어느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 표피랍니다.

5. 그 브랜드의 상호가 그리도 궁금하시다면, 작품을 꼼꼼히 뜯어보세요.

6. 작품 안에 답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한번 찾아봅시다! (Just do it!)




단행본 원고의 한 꼭지치고는 짧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용도 변경'의 원조 격인 마르셀 뒤샹을 끌어내어 설명하면서 현대미술의 역사까지 짚어나갔다면, 분명 친절하기는 하나 지리멸렬한 글이 되었을 것이다. 작품의 원재료로 쓰인 신발의 브랜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가면의 눈썹에 박힌 나이키 로고, 원고 맨 마지막 줄의 'Just do it!'이란 광고 문구 덕분에 독자들은 나이키 운동화의 유쾌한 변신을 깨닫게 된다. 

필자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는데,  필자로서 그의 매력은 '껄렁껄렁함'이다(완성된 원고를 읽어보니 평소보다 30% 정도는 자제한 것 같다). 그리고 흡인력이 강한 짧은 글을 쓴다는 점이다. 언뜻 보기엔 가벼운 것 같지만, 짧은 글 속에서도 할 말은 다 한다. 반이정 씨를 필자로 섭외하면서 현업 미술평론가인 만큼, 활발히 활동 중인 현대미술 작가를 제대로 선별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2000년대를 전후로 제작된 최신 현대미술 작품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이 책을 기획하는 데 자극제가 됐다.

미대에 다닐 때 왜 미술 단행본은 클림트나 반 고흐 같은 옛날 작가들의 책만 출간되는 건지 궁금했었다. 단행본 편집을 하게 되면서, 동시대 현대미술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얼마 없고, 또 그런 작가들의 도판을 많이 쓰면 저작권료 문제가 복잡해져서 그렇다는 걸 알았지만. 즉, 품이 많이 드는 데 비해 채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들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빨간 미술의 고백>이 경쟁력을 지닌다면, 미술서적 시장의 틈새를 노렸다는 점에 있다. 즉 '미술서적의 탈을 쓴, 감상적인 신변잡기적 글'과 '난해하고 현학적인 미술평론' 모두에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TASCHEN에서 펴낸 <ART NOW>처럼 최근 작가들의 작품을 일별할 수 있는 책이길 바랐다. 그리고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그런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직접 정한 독특한 제목도 이 책에 주목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해야겠다. 책 제목은 작고한 연극배우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제목 '빨간 피터의 고백'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냥 <빨간 미술의 고백>이라고 했으면 좀 밋밋했을텐데, '새'자가 추가되면서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관용적 표현을 연상시켜서 재미있다.

꼭 내가 기획한 책이어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을 다룬 책도 관점만 명확하다면 팔릴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기 위해서, 이 책이 좋은 반응을 얻길 바란다. 그래야만 '그 나물에 그 밥'인 20세기 초반 작가들의 이야기를 골백번씩 울궈먹어 온 미술서적 시장이, 지금보다 좀 더 재미있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홍대앞 프리마켓에 갔다가, 벤치에 책이 놓여 있기에 반가워서 찍어 봤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발목을 가장 먼저 잡는 건 “뭘 해서 먹고 살 건데?” 하는 주변 사람들의 끈질긴 질문이다. 결국 ‘밥만 축내는 고등룸펜’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창작을 위해 쓸 정열을 밥벌이에도 분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작가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서 꿈을 접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작가로 살겠다고 결심한 이상은, 이른바 ‘대박’이 터질 때까지 닥치는 대로 잡문을 쓰거나, 혹은 아예 속세를 떠나 탈속의 길을 걷는 수밖에 없다. 아래 두 권의 책은 작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 방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인 <빵 굽는 타자기>(열린책들)는 ‘Hand to Mouth’라는 원제가 보여주듯,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급급했던 무명작가 시절을 회상한 책이다. 요즘이야 시인이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등 다방면에서 유명세를 누리고 있고, 심지어 영화감독 자리까지 꿰찼지만, 폴 오스터에게도 지난한 무명 시절이 있었다.

작가가 되겠다며 대학을 때려치우고 경험한 일감도 참으로 파란만장하지만, 고난을 웃음으로 치환하는 작가의 탁월한 유머감각은 책 읽는 즐거움을 한층 북돋운다. 유조선 선원, 싸구려 탐정소설 작가, 마구잡이 번역자, 실패한 대필 작가, 카드게임 개발자…. 이런 경험을 모티브 삼아 소설에 녹여낸 까닭에, 폴 오스터의 애독자라면 <빵 굽는 타자기>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이후 발표된 소설과의 연계점을 찾아가며 퍼즐 맞추듯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 말미에는 그가 쓴 세 편의 희곡과 더불어, 직접 고안한 야구 카드게임 ‘액션 베이스볼’의 게임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작가되기의 어려움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처절하게’ 소설가가 된 한국 작가를 꼽으라면 ‘기인’ 이외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1985년 첫 출간됐다 최근 깔끔한 하드커버로 다시 나온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해냄)에 그 파란만장한 분투기가 생생히 실려 있다.

이외수는 안정적인 교사직이 보장되는 춘천교대를 때려치우고 거리에서 하루에 딱 20원씩 구걸하며 극한까지 스스로를 내몰았다. 요즘 화폐 가치로 100원 정도인 20원으로 살 수 있는 건 번데기 한 줌, 또는 삶은 감자 한 톨. 이 두 가지 먹거리를 번갈아가며 이틀에 한 끼씩 먹었고, 잠자리도 마땅치 않아 2년 간 노숙생활을 했다. 인간은 밥벌이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을 몸소 시험해보고자 했던 것일까.

‘전락’한 그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의 경악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려면 그냥 죽어라” 내지는 “아직도 안 죽었수?”가 길에서 그를 만난 사람들의 첫 인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라면 반 개를 먹고 냉수에 라면 스프를 타 마시면서 한 달을 버티고, 땡전 한 푼 없어도 사모하는 여인에게 밥을 사겠다고 큰소리 탕탕 쳤던 배짱은 실로 놀랍다(실제로 밥도 샀다. 물론 외상으로).

하지만 그런 근성과 배짱이 소설가 이외수를 만든 게 아니었을까. 마치 도인처럼 속세를 초월한 듯한 그의 모습은, 필시 저 밑바닥 삶까지 내려가 보았던 시절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소설을 쓴다고 호기를 부리며 춘천 전원다실 구석진 자리에 틀어박혀 글을 휘갈기던 무렵, 평생의 동반자도 얻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대단한 근성이다.

기행으로 점철된 힘겨운 시절의 이야기 중에서도 아내와의 로맨스만큼은 따뜻하다. 특히 아이를 낳은 아내에게 먹일 소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점에 갔다가, 맘씨 나쁜 주인에게 속아서 산 양지머리(실은 비곗덩어리)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마음이 짠하다. 퉁명스럽되 솔직하게 툭툭 내뱉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처한 어려움 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작가 지망생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삶의 자극이 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