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몸의 유연성은 상상을 초월할 때가 있습니다.

무심히 몸을 늘어뜨리고 있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가끔 엉뚱한 자세를 보여줄 때가 있거든요.
고동이도 그랬습니다.



이게 바로 일명 'ㄱ자 자세'인데요, 난간 같은 곳에 앞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누운

고양이에게서 볼 수 있는 자세입니다. 통통한 앞다리 속에도 분명 뼈가 있을 텐데,

저 자세만 보아서는 앞다리에 뼈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목이 긴 흰양말을 빨아 널은 것 같아서 저는 '양말빨래 자세'로도 부릅니다. 


각진 난간을 보면 꼭 저렇게 앞다리를 늘어뜨려야 직성이 풀리는지...

귀엽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해서 웃게 됩니다. 그냥 편편한 바닥에 쭉 뻗고 눕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말이죠. 고양이의 복잡미묘한 심리는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런 의외성 때문에,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시간이 일러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강남의 주점 앞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고양이 사료가 알알이 흩뿌려진 것으로 보아, 근처에 밥 주는 사람이 있는 듯합니다.

고양이는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왔던 것인지, 떨어진 사료알을 주워먹던 그 자세로

등 근육을 긴장시키며 동그랗게 얼어붙었습니다.

여름철엔 시원해 보였을 술 광고도 겨울에 보니 선뜻해 보여 추운 느낌을 더합니다.

경계심에 찬 얼굴로 몸을 숙이고 귀를 뒤로 날리며 관망하는 오렌지 고양이입니다.

달아날까 말까 머릿속으로 가늠하고 있는 것입니다.

흰 털신을 신고 있지만, 모양만 그럴듯해 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때 강남의 소비문화를 상징했던 '오렌지'라는 단어도, 오렌지 고양이에게는

그저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일'일 따름입니다.


바삐 지나치는 사람들이 굳이 발밑까지 보려 하지 않으니, 잘 보이지는 않지만

주택이 드물고 주점만 즐비한 이곳에도 길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작심하고 눈에 불을 켜면, 고귀한 빛이 납니다.

귀금속을 어떻게 갈고 닦더라도 똑같이 흉내낼 수 없는 황금빛입니다.

금으로 공들여 세공하고, 금가루를 곱게 뿌려 빛이 반사될 때마다

다른 각도에서 광채를 내는 작은 금방울 같습니다.

눈동자에 금가루를 뿌리다 흘려, 얼굴에도 그만 금가루가 묻었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금빛이 눈에 띄지 않도록, 눈 속에 가만히 감추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인간의 욕심을 아니까요. 금덩이를 낳는 능력을 들킨 거위가

왜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고양이가 눈 속의 금방울을 보여줄 때, 무심코 지나치지 마세요.

고양이가 당신에게 그걸 보여준다는 건, 그만큼 당신을 믿는다는 이야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면 말없이 눈을 맞추고 깜빡, 눈을 깜빡여 인사해 주세요. 



고양이 작가 한 분을 만나고 돌아나서는 길에, 젖소무늬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어느 가게에선가 내놓은 사료를 맛있게 먹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화들짝 달아납니다.

네 발 달린 동물의 빠르기를 두 발 달린 동물이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실은 따라잡지 않는 게,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을 안고 달아나는 고양이에게는

더 안심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굳게 닫힌 셔터문처럼, 자신을 가둘지
모를 세상으로부터 달아나는 고양이.

길고양이는 자신에게 금지된 것이 너무나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뜻한 집, 맛있는 밥, 온전한 수명.

어디서 누구에게 태어났는지에 따라 그것은 온전히 고양이의 것이 되기도 하고

고양이에게 금지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달아나는 고양이를 찍을 때면, 카메라를 든 손이 자꾸만 무거워집니다.
  아무 생각 없이 타박타박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른쪽 길도, 왼쪽 길도 색깔만 다를 뿐 똑같아보여서

무심코 발길을 오른쪽 길로 돌려 봅니다.

 
오른쪽 길로 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왼쪽 길은 어떨까?'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쩐지 가보지 못한 왼쪽 길에는 더 재미난 삶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관성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대개 가던 방향대로 가게 됩니다.

한번 내린 결정을 바꾸기도 그렇고, 되돌아가자면 다리도 아플 테고

지금까지 걸은 거리를 생각하면, 맨 처음 갈림길로 다시 가긴 귀찮거든요.



그러나 호기심도 모험심도 다 수그러들고, 돌아가기엔 너무 오랜 시간을

길에서 허비한 후에야, 가보지 못한 길을 생각하며 쓰러져 후회합니다.

'그때 그 길로 다시 가야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너무 늦었겠지.'

 
그래도 고양이에게 '좌절금지'라고 말해주고 싶은 건,
 
이쪽 길이 아니다 생각될 때, 그때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나오면 된다는 것. 아니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있다는 증거이니 다행이라는 것.


익숙하지 않은 길이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가보려는 사람,

원하던 길이 아니라 생각될 때 용기 내어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

그런 모든 사람을 응원하게 되는 12월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괴로워하는 대신,

후회없는 시간으로 채워나갈 내년이 머지 않았음을 기뻐하는

그런 연말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