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비쩍 마른 길고양이, 뒷이야기
야옹서가
2009. 9. 28. 09:19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뒷북 고양이'가 있습니다. 왜 한 시간이냐면, 그때쯤 카메라의 메모리가 90% 이상 차거든요.
메모리 공간 확보도 할 겸 가만히 앉아 사진을 정리하고 있으면, 아까는 안 보이던 녀석이 슬금슬금 눈치 보며 나타납니다.
어딘가 불리할 것 같으면 모른척 하는 게 고양이의 특징.
저도 덩달아 모른척하고 가만히 있으면, 슬며시 가까이 옵니다. 석 달 전에 만났을 때와 다를바 없이 홀쭉한 얼굴이지만,
건강상태는 그리 나빠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로 남는 게 안타까워서 뭐라고 이름을 붙여줄까 하다가,
깍두기냥이라고 불러봅니다. 보통 입술과 볼이 뾰족한데, 볼이 쑥 들어가서 얼굴이 네모지게 보입니다.
양 볼이 움푹 패어 광대뼈가 드러난 사람 같기도 합니다. 얼굴이 마른 고양이는 왠지 눈빛이 더 형형해 보입니다.
눈곱을 좀 닦아주고 코에 난 생채기가 아물면, 야인 같은 이미지도 좀 더 부드러워질까요?
네모냥과 깍두기냥 둘 중에 어느 이름으로 부를까 했는데, 역시 깍두기냥 쪽이 더 귀여운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고양이는 저에게 '비쩍 마른 길고양이'가 아니라, 이름 있는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건네는 인사이기를 바랍니다. 만났다 헤어지는 과정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동안, 경계하면서도
마음 한켠을 조금씩 열어두는 길고양이의 삶은 그렇게 이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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