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 옆 굴다리 아래 '넝마주이'의 삶
원래 홍익대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했던 김우영은, 1998년 우연히 서울을 소재로 한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가로 돌아섰다. 뉴욕에서 7년 간 사진작업을 해온 그가 주로 활동해온 분야는 패션 사진과 광고 사진. 그랬던 그가 도시 문제를 다시 찍기 시작한 건 아름다운가게 박원순 변호사의 제안 때문이었다.
2005년 11월과 2006년 1월에 시행된 넝마공동체 강제철거 이후에, 사람들이 대책 없이 길바닥에 내몰린 상황을 본 박 변호사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남은 넝마주이 집단 거주지’를 기록으로 남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왔고, 김우영이 흔쾌히 이를 수락한 것. 흔히 물질적인 것을 기부하는 것만 기부로 여기지만, 재능을 기부하는 것도 한 방법인데, 이번 촬영도 그런 기부의 맥락에서 시작됐다. 이번에 촬영한 포이동 사진 중 130점은 단행본 <이웃: 김우영의 포이동 사진이야기>로 묶여 나왔다. 후배인 만화가 박광수가 글을 쓰고, 친구인 디자이너 손재익이 디자인을 맡아 각자의 재능을 기부했다. 여기에 솔출판사에서 출판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전시에 맞춰 책이 나올 수 있었다.
1986년 윤팔병 대표를 중심으로 결성된 넝마공동체는, 버려진 넝마들을 모으고 쓸만한 것을 추려내 팔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부유한 강남 주민들이 내다 버린 폐품들이 이들에게는 곧 돈이다.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월 평균 40톤의 넝마를 수집하고, 그중 80%를 동남아시아 등지로 수출한다. 이중 약 2톤의 넝마가 국내에서 재활용된다고 한다.
김우영의 재능 기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아름다운가게에서 개최한 ‘나눔을 이야기하는 얼굴들’전에 참여했고, 2005년 초에는 엄홍길 대장과 장애인, 비장애인 등반가가 함께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한 희망원정대 등반 과정을 찍은 사진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행’전도 열었다. 이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김우영은 “내가 넝마공동체의 대변인도 아닌 상황에서, 갑작스레 접근해 이 문제를 이슈화하려는 것처럼 비쳐질까 우려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듯 공동체 속으로 파고들어가 찍을 상황도 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전시 예정일까지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 하지만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포이동 곳곳을 누비면서, 김우영은 그간 보지 못했던 ‘굴다리 밑 세계’에 내심 놀랐다. 다리 위의 세계는 흔히 봐왔지만, 굴다리 밑의 삶은 한 번도 주의 깊게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도 나오지 않고, 볼일도 마음 놓고 볼 수 없는 컨테이너 박스에 임시 거주지를 마련한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컨테이너 밖에 간이 부엌을 만들어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립하려는 의지와 자부심은 누구보다 강했다.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자신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누려는 마음을 소박하게 실천하며 살고 있다. 매월 수집한 넝마 중에서 800여 벌의 옷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증해왔고, 북한 동포에게 7천여 벌의 옷을 모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주거지에서 강제이주될 수밖에 없었던 건, 법적으로는 이들의 공간 점유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민등록조차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초기에 대토의 가능성을 언급했던 강남구청에서도 아무 대책 없이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그러나 20년 간 강남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넝마를 묵묵히 수거해 온 이들이 거리로 나앉을 경우, 노숙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밖에 없다. 대안 없는 획일적인 법 적용은 또다른 사회 문제를 낳을 뿐이다.
김우영은 넝마공동체를 포함한 포이동 사진을 선보임으로써,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웃의 모습을 발견하고, 편견 없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토로했다.
“넝마공동체 분들은 ‘우리는 동정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다. 당당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분들 역시 포이동에 살아가는 이웃이고, 단지 약간의 대토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죠. 이분들에게 거주지에 대한 법적 권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랜 동안 그곳을 지키며 살아오신 분들인 만큼 대안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