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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심층 파고드는 붉은 혀의 춤-문범강전
야옹서가
2002. 6. 14. 18:39

June 14. 2002 | 사실주의적 화법으로 관능과 의식의 세계를 그려온 재미작가 문범강(46, 워싱턴 조지타운대 교수)이 일민미술관에서 5년만의 국내전 ‘B. G. Muhn: I LOVE YOU’를 연다. 8월 1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근작 회화 및 드로잉 30여 점,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조각작품 11점을 포함해 총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문범강이 그려내는 인물은 죽음과 관능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고 새빨간 혀를 도발적으로 내민 얼굴들은 쾌락을 갈구하는 듯하다. 사람과 개의 머리, 어른과 어린아이의 머리, 복수의 남성과 여성, 사람과 사물 등의 기괴한 이종교배는 축축하고 부드러운 혀가 살에 휘감기는 느낌보다 더 자극적이다.
의식의 진화를 꿈꾸는 머리, 욕망의 대상을 갈구하는 혀
그러나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는 욕망의 대상인 몸을 이미 떠나 있어, 처음의 관능적 인상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무엇인가 갈구하며 꿈틀대는 혀도 더 이상 자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교수형 당한 사람의 입술 사이를 무겁게 비집고 나와 축 쳐진 혀를 볼 때처럼, 이물감이 느껴질 뿐이다. 사실적인 얼굴의 세부묘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그림을 봤을 때 눈에 띄는 기하학적 풍경 역시 한껏 달궈진 욕망에 찬물을 끼얹는다.
문범강에게 있어 머리는 의식의 집결체인 동시에 쾌락을 인식하는 통로다. 욕망과 분리돼 살아갈 수 없는 인간, 그런 현실 속에서도 초월적 의식을 추구하는 이율배반적 심리가 ‘몸통과 분리된 머리’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쾌락에 몸을 싣고 망아의 순간에 빠져든 범부와 구도자 세례요한의 이미지가 기묘하게 맞물린 문범강의 그림들은 육체적 쾌락과 고통, 정신적 각성이 정점에 달한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한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 상에 비견할 만하다.
무의식의 심층으로 관람자를 빨아들이는 구멍의 이미지
평면회화에서 입체작업으로 활동범위를 넓힌 작가의 최근 조각작업 역시 이와 같은 세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컨대 2002년작 ‘그녀의 의식’은 평면회화에서 종종 등장했던 토템 형식의 나무기둥 위에 혓바닥으로도, 여성 생식기로도 해석할 수 있는 중의적 형상을 접합시켰다. 이밖에도 생선으로 변신한 여인이 알을 낳듯 여러 명의 아이를 생산해내는 형상이나 철망으로 만든 개의 머리와 사람의 얼굴이 접합된 작품 등 무의식의 세계를 손에 잡히는 형태로 재창조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홍익대 전영백 교수는 문범강과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베이컨의 두상이 분출하는 외침인데 비해, 문범강의 ‘벌린 입’ 모티프는 내면 깊이 들어가는 내향성을 지닌다”고 밝힌바 있다. 즉 문범강의 작품은 “안으로 빨아들이는 구멍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무의식의 심층으로 관람자를 인도하는 이같은 설정은 작가가 추구하는 ‘의식의 진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본 전시의 입장료는 1천원이며, 전시기간 동안 9시까지 연장 개관한다. 부대행사로 6월 20일과 27일 오후 7시 일민미술관 4층 강의실에서 ‘현대미술에 나타난 섹스와 죽음’을 주제로 한 특강이 마련된다. 작가가 뉴욕 미술계에서 활동하며 찍은 슬라이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수강료는 무료다. 문의전화 02-2020-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