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의 ‘눈빛 호신술’
고양이의 눈을 보면, 고양이의 심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처럼 마음이 눈빛에 그대로 드러나는 동물은 흔치 않거든요. 특히 동공의 크기 변화를 보면 길고양이가 느끼는 놀람이나 분노, 두려움이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종종 만나러 가곤 하는 길고양이 무리 중에서도 회색냥은 그런 감정을 눈매로 잘 드러내곤 합니다.
몇 년 동안 같은 동네를 다니다 보면, 고양이나 저나 서로에게 익숙해집니다. 길고양이들이 제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식빵을 굽거나 잠을 자는 것도 그런 까닭인 듯합니다. 하지만 자주 만나는 길고양이들 중에서도 회색냥은 조금 다릅니다. 회색냥을 처음 본 것도 1년이 넘었으니 이제 서로 얼굴을 익힐 만큼 익혔지만,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는 눈빛입니다.
가끔 고양이 은신처에 들르면 다른 고양이들은 하나 둘씩 반기며 나오는데 반해, 회색냥은 한참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제가 거의 갈 때가 다 되어서야 슬며시 나타납니다. 머리 뒤꼭지가 따가운 느낌이 들어 뒤를 홱 돌아보면, 회색냥은 제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한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앉아, 예의 그 눈으로 바라봅니다. 여차하면 후닥닥 뛰어 달아날 수 있도록, 앞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요.
회색냥은 어지간해서는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법이 없습니다. 가까이 있을 때면, 얼굴은 살짝 숙이고 눈동자만 슬그머니 치켜올려 저를 힐끔 봅니다. 그런 회색냥을 볼 때마다 눈칫밥으로 연명해온 세월이 느껴져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가끔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모습도 보았지만, 그건 예의 ‘안전거리 3미터’ 이상을 확보했을 때 망원렌즈로 당겨 찍어서 가능한 거였죠.
이렇게 곁을 주지 않는 회색냥이 야속하게 느껴지다가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느낌이 듭니다. ‘저 녀석은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킬 수 있겠구나, 인간에게 헤픈 정을 주다 다치진 않겠구나’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