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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성장시키는 방향을 선택하세요 라모 님의 선물이 도착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삶여행 人연 캘린더'와 고양이 걸개 그림, 편지가 한 세트로 들어 있다. '삶여행 人연 캘린더'는, 1년 동안 나의 삶에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기록한 다음, 1년 뒤에 그 만남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는 용도로 쓴다. 달력이 아닌 연력 같은 개념이지만, 일정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을 기록하는 용도라는 점이 다르다. 1년 뒤에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모아 정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유롭게 뒹굴거리는 고양이 그림이 프린트된 골판지 액자를 보고 있으니, 재활용을 하기 위해 작업실에 모아둔 골판지 상자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라모 님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짓게 된다. 상자 모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니. 빈 상자를 좋아하는 건 '고.. 2008. 2. 16.
고양이털의 전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나를 가장 두렵게 했던 건 ‘고양이털의 전설’이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만나 힘든 점을 물으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모아 “고양이털이 많이 날려요”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까짓 고양이털이 날리면 얼마나 날리겠나 싶어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았다. 날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도, 고양이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양이털은 가늘고 가벼워서, 민들레 씨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다가 호흡기로 빨려 들어가기도 한단다. 어렸을 때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았던 내게는 꽤 위협적으로 들리는 경고였다.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한 애묘가는 매번 고양이털이 반찬 그릇에 날아와 앉는 통에, 날마다 반찬 삼아 고양이털을 먹는다고 했다... 2008. 1. 10.
다즐링에서 '고양이 스승님'을 만나다-삶디자이너 박활민 10년 동안 써온 컴퓨터에 슬슬 사망 기미가 보인다. 하루에 한두 번씩 꼭 ‘치명적인 오류’ 운운하는 메시지가 뜨면서 다운된다. 파랗게 깜빡이는 화면은 내게 모종의 경고를 던지는 듯하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며 살다 보면, 네게도 곧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다고. ‘라모’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박활민씨에게도 한때 그런 ‘시스템 오류’ 메시지가 떴다. 대개 무시하기 마련인 그 메시지를 읽었을 때, 그는 마음의 균형을 회복할 장소를 찾아 떠났다. 2003년 한국을 떠나 티베트·인도·네팔을 떠돌았고, 북인도 다즐링에서 1년을 머물렀다. 박활민씨가 다즐링에서 한 일은 ‘인생의 방학’을 즐기는 일이었다. 하릴없이 산책하고,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찍거나 그림을 그렸다. 명상하듯 먼 곳을 응시하는 고양이를 .. 2007. 12. 28.
비둘기 학살의 공포 »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지만, 몸에서 솜털이 빠질 무렵이면 시련이 시작된다. 사간동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산비둘기 새끼를 만났다.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몸에서 솜털이 슬슬 빠지고 깃털이 자라나면 시련이 시작된다. 어미는 더 새끼를 돌보지 않고 매정하게 내버려둔다. 한때는 귀여웠을 솜털이 지저분하게 너덜거리는 것으로 보아, 어미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닐 시점은 이미 지난 청소년 비둘기인 듯했다. 한데 사람이 눈앞에 다가와도, 화분 그늘에 숨어 있던 녀석은 도무지 달아날 기색이 없다. 어딘가 불편한 듯 작은 몸을 움찔거릴 뿐이다. 새끼 비둘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마의 깃털이 성글게 빠져 있고, 눈과 눈 사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쭉한 상처가 있다. 상처가 꽤 깊.. 2007. 11. 4.
고양이 발바닥의 매력 서울역 근처 헌책방 북오프에 들렀다가 재미있는 일본 문고판을 발견했다. 이름하야 고양이 발바닥 책. 고양이 발바닥에는 ‘육구’라는 말랑말랑한 살이 있는데, 고양이의 종류와 나이에 따른 발바닥의 모양을 실제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물론 고양이 발바닥이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발바닥의 주인인 고양이씨의 얼굴과 몸도 가끔 등장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양이의 육구는 한때 구멍가게에서 인기리에 판매되었던 ‘곰형 젤리’라는 과자류와 비슷하다. 밝은 색 계통의 털을 가진 고양이들에게 흔한 분홍색 발바닥은 ‘딸기 젤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어두운 색 계열의 털을 지닌 고양이의 발바닥은 ‘초코 젤리’, ‘포도 젤리’ 등으로 부르는데, 애묘가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별칭이다.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 스밀라의 발바닥은.. 2007. 11. 2.
접대 고양이를 아십니까 마음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꿈꾼다. 고양이 동호회 게시판을 기웃거리고, 애묘가의 블로그를 즐겨찾기하고, 오프라인 고양이 카페를 찾아 아쉬움을 달랜다. 애묘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꿈을 잠시나마 이뤄주는 ‘고양이 테마파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쿄의 신흥 쇼핑지구 오다이바에 위치한 ‘네코타마 캐츠리빙’도 그중 하나다. ‘고양이 100마리와 놀 수 있는 테마파크’란 말에 솔깃해져서 이곳을 찾았을 때, 실제로 눈에 띈 것은 열댓 마리 남짓한 고양이뿐이었다. 그럼 나머지 고양이는 어디에? 한쪽 벽 구석에 붙은 ‘접대묘’ 명단 속에만 있다. ‘미녀 100명 상시 대기’ 따위의 유흥주점 전단지를 보았을 때와 같은 황당함이랄까. 규모 면.. 2007.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