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에서 전업 블로거는 가능한가?

by 야옹서가 2009. 6. 16.
“복권에 당첨되면 뭘 하고 싶나?” 중학교 때인가, 졸업문집을 만드는데 저런 질문이 나왔었다. 좀 짜증이 나서 “몇 등에 당첨됐는지에 따라 다름.”이라고 적어 냈던 기억이 난다. 문맥상으로야 ‘1등 당첨’을 뜻하겠지만, 어쨌거나 저 질문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한국에서 전업 블로거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블로그와 관계된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을 전업 블로거로 규정한다면 전업 블로거의 범위는 넓어진다. 그런 기준으로 나누면 블로그로 월 20~30만원씩 벌면서 용돈벌이나 간신히 하는 사람이나, 블로그로 월 300만원씩 버는 사람이나 모두 전업 블로거일 테니까. 그러나 500원에 당첨된 사람도, 1억 원에 당첨된 사람도 모두 ‘당첨자’이지만 둘을 동일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전업 블로거의 기준도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전업 블로거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좀  범위가 좁혀져야겠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서도 그에 준하는 수입이 있는 블로거’가 될 수 있는가, 정도로.


성공사례로 회자되는 극소수 블로거를 예로 들며 전업 블로거에 대한 환상만 키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요리·인테리어·DIY 같은 주제로는 출판이나 기업 제휴 같은 수익 창출 기회가 종종 오는 편이고, 최근에는 리뷰 블로그도 인기를 얻고 있지만, 비인기 주제나 특수한 주제를 다루는 이들이 전업 블로거로 사는 건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정보 가치가 있는 포스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글과 사진에 적지 않은 공을 들여야 하고 심지어 원거리 취재도 불사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애써 만든 글도 소통할 채널이 없다면 유효기간은 짧아진다. 기껏해야 자신 소유의 블로그에서 하루 이틀 읽히다 새롭게 올라오는 글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블로거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력도 최소한의 기반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생성된 컨텐츠가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정보를 구축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전업 블로거가 가능해지려면, 블로그의 가치 있는 글이 다른 방식으로 소비될 수 있는 채널이 좀 더 늘어나야 한다. 이는 단순히 메타블로그를 통한 일시적 트래픽 증가나 그에 따른 광고 수익 정도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요즘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채널 개발에 대한 것이다.  기사 계약이나 블로그 기반 출판도 한 방법이겠지만, 특정 분야에서 새로운 양질의 정보를 필요로 하는 곳과, 그런 글을 꾸준히 생성해낼 수 있는 블로거가 서로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 현재는 그런 매개공간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그런 채널을 개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블로거가 공들여 만들어낸 컨텐츠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때, 또한 그런 컨텐츠가 블로그에만 고여있지 않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될 수 있을 때, 블로거도 블로그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전업 블로거가 가능한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그 이후에 논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