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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자유여행으로 돌아보는 경우 보통 렌터카를 많이 이용하지만, 나나 어머니나 둘 다 운전면허가 없고 앞으로도 딸 계획이 없는지라 여행기간 중에는 대부분 버스로 이동했다. 정류장마다 서는지라 렌터카로 이동하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지만, 동일주버스나 서일주버스만 이용해도 목적지를 찾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중산간 지역은 운행간격이 드문드문해서 다니기가 좀 까다롭고, 특히 오름을 돌아보는 건 쉽지 않았다. 차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버스관광 1일 투어 상품도 나와있지만, 별로 관심없는 관광지와 쇼핑몰까지 우르르 따라다녀야하는 게 싫어 다른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한라산도 고려해봤지만 어머니가 함께 등반하기엔 좀 힘들 것 같아 오름을 한두 곳 다녀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인터넷 검색하다 찾은 곳이 소규모 오름투어를 진행하는 '공정여행으로 제주 즐기기' 카페였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주인장이 공정여행을 테마로 제주포니여행사를 차리면서 6월부터 1일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공정여행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는데, 보통 제3세계 여행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게 대부분인지라, 제주 공정여행은 어떤 식으로 운영하려는지 궁금했다. 정식으로 투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지인들과 함께 사전답사 형식의 샘플투어를 진행한다고 해서, 문의를 드리고 참여해보았다. 이날의 일정은 한라생태숲-제주마방목지-거문오름-하도리 철새도래지-백약이오름 순으로 돌아보는 동부여행 1일 투어였다. 

이날 돌아본 순서대로 사진 투척. 거문오름 가기 전에 잠깐 들렀던 한라생태숲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라산 쪽 풍경이다. 날은 쨍하니 맑았지만 하늘은 약간 뿌연 날씨였다. 이번에는 멀리서만 보고 돌아가지만, 겨울 한라산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좋았던 제주마 방목지. 제주 토종말은 다리가 짧고 몸집이 통통해서 더 친근감이 간다. 제주 관광지를 돌다 보면 사람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말을 가끔 볼 수 있는데, 내가 말을 직접 타고 다니는 것보다 들판에서 풀 뜯어먹는 모습을 그냥 보고 있는 게 더 좋았다. 방목지 관리자분이 이제 그만 들어오라고 부르니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말들이 귀엽다.  

 

이날의 주된 방문지였던 거문오름. 제주에는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세 군데 있는데,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 일출봉이 그곳이다. 거문오름은 사전예약을 받아 1일 400명만 탐방할 수 있고,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자연해설사의 인도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초입부터 만만찮은 비탈길에 계단길이 이어져 저질체력인 내 입장에서는 등반이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거침없이 나를 앞질러 올라가신다. 

우리 일행은 분화구 코스까지 걸었는데, 분화구 코스를 들어가기 전 중간지점에서 탐방안내소로 돌아갈 수 있는 갈림길이 있으므로 체력이 달리는 분들은 여기서 탐방을 마칠 수도 있다. 분화구 코스 외에도 능선까지 다녀올 수 있지만, 등반이 취미인 듯한 여자분 한 명만 능선 코스를 선택했다. 

 

 거문오름에는 데크가 잘 조성되어 있다. 등반을 원활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나무뿌리를 직접 밟지 않도록 공간을 띄우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 이유는 다음 사진에서...

 

거문오름의 지질구조를 잘 보여주는 장소라며 해설사분이 멈춰서서 설명해준 곳. 여느 산은 바닥이 대부분 흙으로 되어 있지만, 거문오름은 저렇게 돌이 대부분이다. 흙은 돌 위에 살짝 얹혀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나무뿌리도 바위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오름을 오르는 사람들도 무심코 나무뿌리를 밟지 말고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400명이 매일같이 나무뿌리를 밟으면 간신히 돌틈에 뿌리를 박은 나무 입장에서도 힘들 테니까.

 

분화구 코스가 끝나고 탐방안내소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훨씬 편했다. 황토처럼 보이는 흙길은 화산송이인 듯. 밟으면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도리 철새도래지로 가던 길에 잠시 내려 구경했던 세화리 바다. 얼마 전 사진을 올렸던 고양이 발자국도 여기서 발견했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시멘트 포장길에서 길고양이 발자국이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눈에는 잘 띄지 않아도 우리 곁에 늘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는 증거다.

 

하도리 철새도래지. 긴 목을 주억거리면서 물고기를 찾아 헤매는 녀석들을 멀찍이서 볼 수 있다.

 

철새도래지 근처에 있던 용천수. 일명 탕탕물이라고도 하는데, 동네 아이들이 멱을 감거나 어르신이 몸을 씻으며 더위를 식히는 장소로 이용된다고 한다. 거문오름을 오르느라 몇 시간 수고한 발을 차가운 물에 씻으며 이곳에서 잠시 더위를 달랬다.

 

이날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백약이오름. 백 가지 약초가 자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앞서 돌아본 거문오름은 자연의 보고라 불릴 만큼 다양한 동식물군이 살고 있기에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너무 규모가 크다보니 내가 분화구 속을 걷고 있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백약이오름은 아담해서 분화구 모양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왕복 1시간 내에 등반을 마칠 수 있어 체력적 부담도 적다.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 중간중간 소똥이 지뢰처럼 투척되어 있어서 피해다녀야 했다.

 

백약이오름의 분화구 한가운데 눈동자처럼 고여있던 물의 흔적.

 

백약이오름에서 내려다본 이웃 오름들. 제주에는 368곳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두 곳을 다녔으니 앞으로 또 다른 탐방 기회를 기대해본다. 

 

고양이 여행만이 목적이었다면 오름 여행은 건너뛰었을지도 모르겠다. 깊은 산속보다는 아무래도 해안마을이나 단독주택이 많은 여느 골목에서 고양이를 만날 확률은 더 높아지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의 여행 취향을 알아보고 싶어서 떠난 여행인지라, 가능하면 산과 바다, 작은 마을 등 다양한 환경을 두루 살펴보고 싶었다. 오름도 그중 하나였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오름이 좋긴 한데 하루에 2곳을 오르는 건 체력적으로 좀 힘든 것 같다"고 운영자분께 의견을 드렸는데, 프로그램도 오름 한 곳과 다른 체험장소를 함께 돌아보는 걸로 수정된 듯하다. 카페에 들어가보니 우리가 참여했던 '데이 투어'는 1인당 3만 5천원으로 투어 비용이 확정된 모양이다. 6월까지는 5천원 할인된 1인당 3만원. 버스여행하면서 하루쯤 오름도 돌아보고, 가까운 여행지도 돌아볼 계획이 있다면 이곳에서 도움을 받아봐도 좋을 것 같다. 사람마다 여행 취향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우르르 몰려다니는 단체관광보다 소규모 맞춤투어가 마음 편했다.  

 

어머니는 언제든 "직장을 그만두면 제주도에 함께 다녀오자"고 노래를 부르셨지만, 정작 어디를 가고 싶으신지 여쭤보면 "그냥 너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내가 따라가면 되지"라고만 하셨다. 젊었을 때는 자식들 키우고 돌보느라 바빴고, 50대 이후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여유가 없었던 어머니가 혼자 여행을 다니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고, 그래서 제주도 여행이란 어머니께 막연한 꿈처럼 남아있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딜 가고 싶다고 하지 않으시는 것도, 그저 제주이기만 하면 어디라도 좋다는 마음이라서다. 어머니는 '아무 데나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래서 더더욱 아무 데나 다녀올 수는 없는 일. 나름 추억이 될 만한 일정을 짜 보겠다고 머리가 복잡했는데, 하루 정도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1일투어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좋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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