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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살인자?불편한 영화광고

by 야옹서가 2008. 9. 7.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다룬 영화 '외톨이'가 곧 개봉한다. 평소 관심있던 주제라 눈여겨봤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화가 먼저 치민다. 히키코모리를 무슨 잠재적 살인자처럼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9월 5일자 무가지 <AM7>에 실린 영화 '외톨이' 지면광고 먼저 보자.
히키코모리란? "가장 가까이서 이유없이 죽음을 만드는 외로운 사람들"이란다.
죽음을 만든다는 건 '자살'로도 '살인'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나, 아래 친절하게 예시된 3가지 사례를 보면
'히키코모리=위험한 잠재적 살인자들'이라는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결론의 비약은 한술 더 뜬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무차별 살인을 벌이고 있을 그들은, 방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된다!"
이 카피 쓴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난 이런 광고문구를 생각해낸 당신이 더 공포스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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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영화 <외톨이>의 배너 광고. 
"가장 가까이서 이유없이 죽음을 만드는 외로운 사람들" 운운하는 지면광고 카피에 비하면
히키코모리에 대한 정의는 좀 더 객관적이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예시들은 여전히
'히키코모리=잠재적 살인마'의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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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로, 9월 8일 무가지 <AM7>에 실린 지면광고.
   여전히 "히키코모리가 된 치명적 그녀", "죽음의 공포가 시작되는 공간, 히키코모리의 방",  
  "천사같았던 소녀를 끔찍한 히키코모리로 만든 가족의 비밀" 등 자극적인 문구가 이어지고 있다.
   히키코모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히키코모리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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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한 영화정보 사이트의 홍보문구에서는, 작년 화제가 된 '사이코패스' 관련 영화를 들먹이며
 "그보다 업그레이드 된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것" 운운하는 통에,  "사이코패스=감정없는 살인자,
   히키코모리=그보다 더 흉폭한 잠재적 살인마"의 등식이 성립되도록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컨셉이 심리드라마도 아니고 공포스릴러이니, 히키코모리를 부정적으로 그릴 것은 예상 가능하고,
또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려면 최대로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야겠다 싶었던 모양이지만,
이런 광고 때문에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또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
정신질환자에 대한 세상 의 시각은 또 얼마나 냉담해질지 모르겠다. 영화홍보만 잘 되면 그만인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심리적인 피난처로 선택하는 곳이 자신의 집이고,
그중에서도 최후의 장소가 방이라는 걸 생각하면, 지극히 소재주의적인 이런 영화는 씁쓸하기만 하다.

"원래 '히키코모리를 소재로 한 공포스릴러'인데 어쩌라고? 싫으면 딴 거 보셈."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내 돈 내고 저 영화를 볼 일은 없겠지만, 영화광고는 여전히 문제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신문에서, 이메일 접속하러 들어간 포털사이트에서,
심지어 블로그의 배너광고에서도 저 광고는 계속 보일 테니까.
그리고 그 광고들이 누군가에겐 알게모르게 편견을 심어줄 테니까 말이다.


영화 <외톨이> 외에도, 올 하반기엔 은둔형 외톨이를 다룬 영화가 많이 개봉될 거라고 한다.
그 영화들은 부디 실망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상처받은 인간에게서 희망을 보고 싶지,
절망을 보고 싶진 않으니까.

*은둔형 외톨이를 소재로 한 책 하나 추천. 클릭하면 리뷰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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