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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R&B 음악, 그림으로 민권운동?-‘황과 흑의 조우’전

by 야옹서가 2001. 8. 16.

 Aug. 16. 2001
| 8월 2일부터 12일까지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린 ‘황과 흑의 조우: 브라운아이즈’전은 신인 남성 듀오 ‘브라운아이즈’와 미술가 박이창식씨의 합동전시다. 브라운아이즈의 리드보컬 나얼(23)이 흑인뮤지션을 그린 드로잉 1백 20점과 대규모 설치작품을 선보이고, 팀의 작곡가 윤건(24)이 전시장에 설치된 그랜드피아노로 매일 20여분간 콘서트를 여는 갤러리 쇼케이스 형식으로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브라운아이즈는 “그룹명에 담긴 주제의식과 이번 전시의 주제는 동일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그룹명인 ‘브라운아이즈’는 ‘brown-eyed soul’의 약자로, 이는 백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blue-eyed soul’을 풍자한 것이다. 이로써 동양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려 했다는 것이다.

‘황과 흑의 조우’라는 전시명 역시 이런 주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정해졌다. 황인종 그룹인 브라운아이즈가 흑인 뮤지션들의 언어인 R&B로 노래하는 것이 음악 속에서 두 인종의 상징적 화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인종차별에 대한 자유를 외친 흑인 뮤지션들을 그림으로 되살리고 무기 상자를 천장까지 높이 쌓아올린 설치작품은 미술을 통해 모든 종류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한다는 의도를 표현했다. 이번 전시 참가작가인 나얼은 계원예술대학 매체회화과 출신의 미술학도이기도 한데, 이번 1집 앨범 재킷도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사실 브라운아이즈 이전에도 노래와 그림을 병행하는 가수들이 없진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가수 조영남을 들 수 있는데, 1973년의 첫 개인전 이래로 치른 개인전 횟수만 18회에 달한다. 홍익대 미대 출신인‘어어부밴드’의 리더 어어부는 보컬이자 행위예술가,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는 올해 초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한·일 디자인 교류전 ‘액티브 와이어’전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참가할 만큼 독특한 그림세계를 인정받았다. 그밖에 이상은, 이현우 등도 노래 못지 않게 그림을 즐겨 그리는 가수로 유명하다.

음악과 그림으로 차별 철폐 주장하지만 설득력 약해
그러나 위에서 예를 든 가수들이 음악과 미술을 별개의 영역으로 다룬 반면 브라운아이즈는 두 영역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한다. 흑인음악으로 흑인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관심을 낳았다면, 이번 전시 또한 흑인으로 대변되는 모든 계급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전시를 단순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음악웹진 ‘뮤즈컬트’에서 ‘빠떼루칼럼’을 연재하는 칼리큘라는 “고도의 지적 마케팅에 신비주의 전략을 가미한 상술일 뿐”이라며 “흑인 정체성 회복을 통한 범인류적인 인권회복 등의 내용 따위는 없었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브라운아이즈의 구성원이 아직 삶의 연륜이 짧은 20대 초반인 반면, 그들이 추구하는 주제는 거대담론에 속한다. 또 그들이 부르는 R&B 음악이 흑인음악이긴 해도 노래 가사는 민권운동이나 차별 철폐가 아니라 사랑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그 괴리감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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