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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삶의 불연속성 주목한 반예술-‘독일 플럭서스 1962∼1994’전

by 야옹서가 2001. 9. 20.

 Sep. 20. 2001
| 9월 7일부터 10월 28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독일 플럭서스 1962∼1994’전은 반예술을 표방하며 1960년대 초 독일에서 시작된 플럭서스를 회고하는 대규모 국제순회전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아우른 이번 전시는 플럭서스의 진두지휘자 격인 조지 마키우나스를 비롯해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 백남준, 볼프 보스텔, 조지 브레히트 등 26명의 작품 3백50여 점을 선보인다. 특히 플럭서스 공연의 각종 홍보물, 영화, 출판물 등 다큐멘트 1백여 점은 플럭서스의 태동기와 전성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삶의 불연속성을 반영한 반예술적 전위운동
1962년, 조지 마키우나스가 비스바덴시립미술관에서 ‘플럭서스-국제 신음악 페스티벌’을 개최한 이래,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 등을 뜻하는 라틴어 ‘플럭서스(FLUXUS)’는 급진적 전위운동을 뜻하는 명칭으로 쓰였다. 톱으로 그랜드피아노를 썰고 바이올린을 부수거나, 머리카락에 물감을 적셔 그림을 그리는 등 미술, 음악, 시, 무용, 영화가 혼합된 기상천외한 행위미술과 오브제를 선보인 플럭서스 작가들은 예술시장과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였다. 플럭서스는 우연성, 무작위성 등 삶의 불연속적 측면을 높이 평가했다. 미술평론가 르네 블록이 말했듯, 플럭서스는 양식이 아닌 ‘정신적 태도’ 그 자체라는 면에서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의 방식과도 일정 부분 닮아있다. 그들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예술에 부과된 낡은 기준의 무용함을 사람들에게 인지시켰다는 점만은 명확하다.

플럭서스의 우연성과 동시성은 볼프 보스텔의 ‘플럭서스-피아노-리투아니아: 마키우나스에 대한 경의’(1994)에서 적절히 설명된다. 이 작품의 감상은 관람자의 위치, 관람 시간, 설치장소 등 변수에 따라 매순간 달라진다. 관람자가 피아노 앞의 어느 지점에 서면 센서가 작동해 불이 켜지고 여행가방 속에 숨겨진 라디오가 일제히 소리를 내는데, 작품이 설치된 국가의 주파수에 따라 각각 다른 라디오 방송이 들리게 된다. 피아노, 여행가방, 쇼핑카트, 전화기 등 오브제의 기이한 조합도 시각적 충격을 준다. 이들의 만남은‘재봉틀과 박쥐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 아름다운’이란 로트레아몽의 글귀를 연상시킨다.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해 고민하느니 집에 가서 잠이나 자시오” 
플럭서스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작품에 음악(또는 악기)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이다. 플럭서스 음악의 대부라 할만한 존 케이지의 ‘모차르트 믹스’(1991)는 모차르트의 작곡 25점에서 발췌·녹음한 25개의 카세트 테이프와 다섯 대의 녹음기로 구성된 작품이다. 청중은 테잎을 임의로 교환해 들으면서 공연 길이는 물론 연주 기술과 방법까지 선택하게 된다. 이와 같은 무작위성은 작품을 상자 안에 담거나 단어를 이용한 언어유희와 함께 플럭서스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또다른 작가 토마스 쉬미트의 ‘타자기 시’는 반예술을 표방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향해 냉소를 보내는 블랙유머가 절정에 달한 작품이다. 종이 위에 구형 영문자판기의 자판을 그린 작품에 숫자가 써있는데, 그 순서대로 자판을 치면 다음의 시가 완성된다.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해 고민하느니 집에 가서 잠이나 자시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임대근씨는 “플럭서스는 만남, 이벤트, 아이디어, 오브제들로 구성돼 전 세계로 뻗어나간 다차원적 네트워크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기존의 관습을 초월한 ‘전영역적 현상(ein Feld-Phnomen)’이었으며, 수많은 매듭들을 통해 자율적으로 커나간 거대한 그물망이었다”며 플럭서스가 진정으로 삶과 예술을 하나로 엮으려 했다고 평가했다. 전시 입장료는 7백원이며, 제 2전시실에서 9월 14일부터 10월 17일까지 열리는‘중국현대미술전’도 감상할 수 있다. 문의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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