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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삶도, 예술도 결국은 착란일 뿐 - 성능경전

by 야옹서가 2001. 11. 15.

Nov 15. 2001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은 11월 9일부터 25일까지 ‘한국현대미술 기획초대전’ 다섯 번째 작가로 중진작가 성능경을 선정해 ‘예술은 착란의 그림자’전을 개최한다. 성능경은 1970년대 전위미술집단 ST(space & time)그룹에서 활동하면서 신문, 사진 등 매체를 이용한 개념미술과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실험적인 작품경향 때문에 그 위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초기작인 ‘1974년 6월 1일 이후’를 비롯해 ‘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 ‘착란의 그림자’, 후배작가 전용석씨가 촬영한 다큐멘터리 ‘S씨의 하루’등 최근작까지 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신문을 도려내듯 권력을 상징적으로 해체한 전위미술 1세대
성능경을 한국 전위미술 1세대로 각인시킨 작품은 1974년 제3회 ST전에서 선보인 신문읽기 퍼포먼스다. 전시기간 동안 해당 날짜 신문을 소리내어 읽고 면도날로 신문기사를 도려내는 퍼포먼스는 유신체제 검열에 유린된 언론을 풍자하는 행위였다. 당시 유행했던 앵포르멜 추상회화가 관념의 세계에만 머물렀던 것에 반해 그의 작업은 신문을 매개로 권력을 해체하는 직설적이고 명쾌한 작업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 같은 신문작업들은 인물사진을 확대인화하고 눈을 가려 익명성을 부여한 ‘특정인과 관련 없음’(1977), 확대한 신문사진에 잉크로 화살표나 점선을 그린 대규모 사진설치작업 ‘현장’연작(∼1989) 등으로 이어졌다. 15년 간 모습을 달리하며 지속된 신문작업의 완결편 ‘넌센스 미술’(1989)은 신문지와 포장지, 골판지 상자 전체에 검은 구두약을 칠해 전시하면서 모노크롬 회화를 신랄하게 조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신문작업과 함께 성능경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다른 한 축은 일상에 대한 관심이다. 작가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를 담은 ‘S씨의 반평생’(1977)이 그 시초라면, 네 자녀들을 찍은 평범한 스냅사진을 모자이크하듯 붙여 제작한 가족사적 작품 ‘S씨의 자손들’(1991)은 ‘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는 발견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잘못 찍힌 스냅사진이나 현상액이 흘러나와 얼룩지고 초점이 흐려진 폴라로이드 사진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작품에서 반미학을 표방하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일상공간에서 환각적인 초현실 공간으로의 변이
 지속적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또 다른 행로를 모색중인 그의 최근 작품은 퍼포먼스에서 연극적 요소가 강조되고, 컬러사진의 강렬한 시각성을 부각시킨 것이 특징이다. 검은 팬티와 모자, 선글라스만 걸친 몸을 은박테이프로 칭칭 감은 ‘쿠킹호일맨’(2001)으로 변신하거나, 자택의 내부를 다중노출로 촬영한 최근작 ‘착란의 그림자’(2001) 연작이 그 대표적인 예다. 팔리지 않고 짐이 돼버린 옛 작품들, 적나라하게 노출된 살림살이, 언뜻언뜻 스쳐가는 가족의 얼굴이 다중노출로 동시에 잡히면서 일상의 공간이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 ‘착란의 그림자’는 18평 단독주택에 붙박힌 연로한 재야 예술가의 히스테릭한 현실을 반영하면서, 일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본질을 재조명하려는 의도를 명쾌하게 표현했다.

전시기획을 맡은 문예진흥원 큐레이터 김혜경씨는 “1960∼70년대 이후 독창적인 작업으로 한국미술사에 중대한 역할을 해온 중진 전위작가들이 기존의 화단구조에서 상업적으로 수용되지 못했고, 비평 면에서도 조명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전시로 잊혀져가고 있는 작가들을 다시 평가하고, 현대미술사의 편향된 부분을 고르게 보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지난 9일에 이어 17일 오후 2시, 24일 오후 4시에 성능경씨의 퍼포먼스가 열릴 예정이며, 24일 오후 1시 문예진흥원 강당에서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개관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의전화 02-760-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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