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포털 엔키노/2000. 10 .30] 시청 쪽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 통로 벽에서 이상한 물체들을 발견했습니다. 붉은 벽돌 틈새에 끼어있는 투명한 아크릴 큐브들-호기심에 눈으로 하나하나 훑어보니 한 두개가 아닙니다. 큐브 안에 들어있는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크기의 인형들이며, 기괴한 방식으로 몸체가 짜깁기된 곤충들-아, 작가는 함진이군요. 1978년생이니 나이와 경력을 중시하는 미술판의 기준으로 본다면 아직 약병아리도 못되고, 이제 막 부화하려는 달걀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독특한 작업세계 때문에 주목받는 신진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함진의 작업은 일단 크기 면에서 관람자의 허를 찌릅니다. 초등학교 앞에 많이 있는 100원짜리 뽑기 기계 아시죠? 원형캡슐 안에 장난감로봇이며 반지 따위가 들어있는......딱 그 정도 크기의 작업을 합니다. 고물고물한 그의 인형작업을 보는 사람들의 첫 반응은 "야∼진짜 귀엽다. 어쩌면 이렇게 조그맣게 잘 만들었지?"지만, 그 다음 반응은 "어, 근데 얘네들 좀 엽기적이다..."입니다.

전시된 인형들을 한번 쭉 훑어보죠. 파리와 바퀴벌레를 자가용처럼 타고 다니는 나체의 아저씨들이나 머리카락으로 만든 집 속에서 쉬고 있는 손톱만한 종이인형은 그래도 애교스러운 축에 속합니다. 멸치 머리와 사람 몸통이 결합되면서 담배를 물고 있는 회사원이나 금발의 신부가 탄생하기도 하고,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곤충들의 사체를 이어붙여 만든 익룡은 앙증맞지만 한편으론 섬뜩합니다.


이번 전시 중에서 가장 엽기적인 상상력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로만 인식돼온 만화캐릭터들의 재해석입니다. 두개골의 절반이 날아가 뇌와 안구가 노출된 미키마우스 인형이라던가 스트립 쇼를 하는 키티 인형, 게이인 곰돌이 푸가 애널섹스를 하는 모습이나 채찍을 들고 새도매저키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습-이렇게 작품 전반이 성적 욕구와 파괴욕구라는, 대극적이며 원초적인 심상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형들의 조그마한 몸 속에 구깃구깃 억눌려 있다 튀어나오는 비대한 욕망은 관람자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보통 만화 속 세계에선 천진난만하고 행복한 녀석들이 주인공인데, 함진의 인형은 이른바 `아픈 것`, `나쁜 것`, `아닌 것` 들을 다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디에나 고통이나 욕망은 존재하며, 그런 면들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이 만화보다 더 비현실적이라는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함진 스스로 설명하는 제작 동기는 간단합니다. 집에 혼자 남아 이것저것 주물럭거리며 뭔가를 만들었던 자신의 자폐적인 성장기가 작업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죠. 벽의 구멍난 틈이나 방의 모서리 같은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며 전시하는 방식이나, 그의 인형들처럼 작아지고자 하는 욕구는 상징적인 퇴행을 반영합니다. 그렇게 작아져서 어머니의 자궁 속과 같이 어둡고 따뜻한 방, 고통없는 안전한 세계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지요.


그러나 자폐적인 세계는 외부와의 관계를 부정해버리기 때문에, 그 안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은 결국 자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파국을 막기 위해 함진이 선택한 것은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욕망들을 인형이라는 형태로 끄집어내며 외부와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을 보호하던 껍질을 힘겹게 부수고 나오는 병아리의 모습은 핏물에 흠뻑 젖어있어 끔찍하기까지 하지요. 창작활동을 통해 자폐적인 세계의 껍질을 막 깨고 나오는 함진의 작업을 보면서 그 병아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걸음은 아직 불안정하고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불확실함을 인정하는 건 곧 삶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니까요. 그가 자기만의 세계를 나와 다른 세계와 접촉하기 시작할 때, 그의 인형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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