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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정을 떼는 고양이

by 야옹서가 2006.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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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매점 앞을 지나면서 혹시 고양이가 있을까 기웃거려본다. 멀리 삼색 고양이의 엉덩이가 보인다. 얼마 전에 새끼와 함께 아름다운가게 사무실 근처에 누워 있던 어미 고양이다. 에웅에웅,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린다. 가까이 가 보니 삼색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뭔가 열심히 주워먹고 있어서 울 겨를도 없어 보였다. 플라스틱 통에는 참치나 소시지가 아닌, 고양이 사료가 담겨 있다. 매점 아주머니께 "사료를 사서 주시는 거예요?" 하고 여쭤 보니, 자주 오는 고양이들 주라고 누가 사료를 맡기고 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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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끼들을 살갑게 챙기던 어미 고양이가 요즘은 쌀쌀맞게 군다고 한다. 제 먹을 것만 챙기니 이상하다고. 새끼들이 다 자랐으니 정을 떼려나 보죠, 애매한 답을 하고 다시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본다. 담 속에 고양이 알람시계가 내장된 것처럼, 하염없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미를 닮아 낮고 굵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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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삼색 고양이가 열심히 밥을 먹는 담 바로 너머에. 새끼는 잡동사니가 쌓인 좁은 통로에 앉아 있다가, 머리만 빙글 뒤로 젖혀 나를 올려다본다. 어찌나 서럽게 큰 목소리로 우는지, 처음엔 몸이 끼어서 못 나오는 건가, 그래서 구해달라는 소린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를 다시 고쳐앉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가 울건 말건 '어디서 뉘집 개가 짖나' 하는 식으로 앉아 있다가, 어디론가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어미 고양이는 더 이상 새끼를 돌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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