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포털 엔키노/2000. 9]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가지각색인 것처럼, 사람의 모습을 본뜬 인형에도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아마도 인형 안에 어떤 생각을 담으려고 했는지에 따라 그 인상이 달라지지 않나 생각됩니다만......완구점에서 흔히 보는 바비인형류는 `쭉쭉빵빵해야 진짜 여자`라는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담겨있어 짜증스럽지만, 살다보면 때로는 가슴 설레게 하는 인형들도 만나게 됩니다.

제 경우에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 등장하는 죽음과 재생의 이미지가 담긴 인형극 장면이라던가, 인형 애니메이션인 <버림받은 자들의 밀실> 속의 마네킹 가족을 볼 때가 그런 때였지요. 처음 일본인형 전시회에 대한 안내메일을 받고 나서 꼭 가보리라 마음먹은 건, 제가 좋아하게 될지도 모를 또 하나의 인형을 만나러 간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전시장소인 주한 일본대사관 2층에 들어서면, 빨간 천을 씌운 나지막한 탁자 위의 인형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70점에 달하는 인형들을 모두 보여드릴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일본사회 속에서의 인형은 단순한 장식품이나 완구를 넘어,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일본에서는 등신대의 인형을 조종하면서 연기하는 인형극인 `분라쿠(文樂)`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인형의 테마를 정할 때 `가부키(かぶき)`나 `노(のう)` 등의 이야기구조를 빌려오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어린이들을 위해 인형을 장식하는 풍습인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명절이 다릅니다. 먼저 3월 3일의 `히나마쯔리(ひなまつり)`를 볼까요? `모모노셋쿠`(もものせっく:복숭아 명절)이라고도 하는 이 날에는 여자아이의 건강과 장래의 행복을 비는 히나 인형을 전시합니다. 3월 3일이 지나서도 히나 인형들을 치우지 않으면 아이가 시집을 늦게 간다는 전설(?)도 전해지는군요. 히나 인형의 단은 1단부터 많게는 7단까지도 올릴 수 있지만, 이번에 전시된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1단 부분으로, 금박병풍을 치고 일본 왕과 왕비를 앉힌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히나마쯔리가 여자아이들을 위한 인형명절이라면, 5월 5일 단오절(たんごのせっく)에는 남자아이가 무사처럼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원하는 `5월 인형`을 장식합니다. 요즘은 5월 5일이 남녀공통의 어린이날인 탓에 이런 구별은 옛날보다는 좀 덜하지만요. 이 인형은 갑옷과 투구를 쓰고 완전무장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흠......일본영화 <카게무샤>에 나오는 아저씨들의 전투복장과 비슷하지요?


이렇게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미를 자랑하는 일본인형이지만, 무척 단순한 모양의 `코케시(こけし) 인형`도 있습니다. 과거 일본의 빈곤층에서 노동력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여자아이들은 군식구로 여겨져 버림받거나, 방직공장 또는 사창가로 보내지곤 했는데, 이런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의 증표로 만들어 간직한 것이 코케시 인형입니다. 전통 코케시 인형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건, 그런 슬픈 역사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 일본인형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분들께 드리는 팁 한 가지!
살아 움직이는 일본인형을 보고 싶다면, 카와모토 키하치로의 인형 애니메이션 <부조리 3부작>을 권합니다. 일본 전통극예술의 모티브를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인데, 무척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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