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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2001년 상반기 미술계 동향

by 야옹서가 2001. 7. 6.


Jul. 06. 2001
|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의 타계 소식은 2001년 초 미술계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전시 동향 면에서는 사진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대관을 중심으로 운영하던 인사동 화랑들이 작가지원을 위한 기획공모전을 제안하고 나선 것도 이채롭다. 한편 미술교사 김인규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부부 나체사진작품이 외설시비를 빚으며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한국 화단의 거장, 운보 김기창 타계
2001년 1월 23일, 운보 김기창(88)이 숙환으로 타계했다. 운보는 17세 때인 1930년 이당 김은호에게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해, 이듬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청록산수, 바보산수, 문자도, 점·선 시리즈 등의 작품에서 구상과 추상, 서양화와 동양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화풍을 선보이며 한국화의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해왔다. 정부는 운보의 화업을 기려 26일 오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1월 27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영결식은 각계 인사 8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예술인장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1976년 먼저 작고한 아내 우향 박래현씨와 함께 충북 청원 ‘운보의 집’ 뒤편 야산에 묻혔다. ‘운보의 집’은 운보와 우향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운보미술관으로 5월에 확장 개관됐다.

사진전의 이례적 약진
2001년 상반기에는 굵직한 국내외 사진작가들의 전시회가 줄을 이었다. 그동안 국내의 미술관과 화랑이 사진 전시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아트선재센터(트레이시 모팻전 2. 24∼4. 15), 국제갤러리(이정진전 2. 27.∼3. 24), 금호미술관(강운구전 2. 28∼3. 25) 등이 올해를 여는 첫 전시로 중견작가들의 사진전을 선택했고, 1998년 개관이래 단 한번도 사진전을 개최하지 않았던 로댕갤러리는 구본창전(4. 5∼6. 24)을 열었다.

이 같은 현상은 미술계가 올 한해 사진 장르에 거는 기대를 반영한다. 전시된 사진작가들의 작품경향을 비교해보면, 이정진·강운구·구본창·민병헌 등 국내 사진작가들의 작품 경향이 서정적이고 관조적인 경향을 띠는 데 비해, 해외작가들의 전시는 사회비판적 성향이 강했다. 성·계급·식민주의 등의 문제를 다룬 호주작가 트레이시 모팻이나, 자유보도사진가 집단 ‘매그넘’의 창립 50주년 기념전 ‘Our Turning World’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6월 28일에는 서울옥션에서 국내 최초로 사진경매가 실시되기도 했다. 또한 가나아트센터에서는 올해 처음 연 사진·영상페스티벌을 연례행사로 정착시켜 매년 6월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인사동 화랑가, 작가지원 기획공모전 늘어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미술계의 움직임으로 인사동 화랑가의 기획공모전 열풍을 들 수 있다. 물론 대안공간 풀, 대안공간 루프,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등에서 전시장 무료대관과 보조금으로 작가를 지원하는 기획공모전이 이미 실시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대안공간이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는 것과는 달리, 대관료 수익과 작품 판매로 화랑을 운영하는 상업화랑이 자체예산으로 기획공모전을 실시한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처음 기획공모전을 실시한 인사동 갤러리창은 4월 1일부터 30일까지 접수를 받아 그룹전 ‘Something or Nothing’(전시예정일 7. 1∼7. 10)을 선정했다. 관훈미술관도 기존의 작가지원 방식을 공모전 형식으로 변경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수시 접수, 전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첫 번째 지원작가로 나현(전시예정일 11. 14∼11. 20)을 선정했다. 사비나갤러리도 6월 1일 ‘사비나 공모전’ 개최를 공지했으며, 오는 9월 포트폴리오를 접수할 예정이다.

미술교사 김인규 씨 사진작품 외설 논란
충남 서천 비인중학교 미술교사이자 작가로 활동중인 김인규씨(49)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부부 나체사진작품 때문에 긴급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접근할 수 있는 홈페이지에 교사의 나체사진을 올린 것은 비교육적’이라며 삭제를 요청했다. 김인규씨는 ‘홈페이지는 교육공간이 아닌 개인적인 작품공간’이라며 이를 거부했고 결국 5월 26일 긴급체포 및 구속영장 청구로 이어졌다.

5월 27일에는 미술인 네트워크 ‘포럼A’와 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 측이 김인규씨를 지지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미술계 인사들이 “김인규씨의 작품은 ‘몸의 담론’이라는 전체적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며 지지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6월 7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요청에 따라 한국통신이 해당 작품 페이지를 삭제했다. 김인규씨에게 발부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김씨는 6월 18일 직위해제를 당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됐다.

이번 사건은 미술교사인 작가가 벗은 신체를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일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논란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시비와 인터넷 검열의 타당성 문제로 이어졌다. 이번 사건은 건강한 몸을 바로보자는 작품의 큰 맥락이 고려되지 않고, 오히려 나체사진이라는 단어만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공정한 토론으로 발전하지 못한 부정적 선례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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