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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한국 실험예술 30년-‘전환과 역동의 시대’전

by 야옹서가 2001. 7. 26.
 
Jul. 26. 2001|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미술의 주류는 앵포르멜과 모노크롬 회화였다. 그러나 이 양대 산맥 사이에 존재했던 실험적 예술경향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채 묻혀버린 것이 현실이다. 6월 21일부터 8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현대미술의 전개: 전환과 역동의 시대’전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 사이에 성행한 기하학적 추상회화, 해프닝과 팝아트, 실험영화 등 작가 50여명의 작품 1백60여 점을 재조명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사를 되짚어보는 전시다.

1960년대 주류였던 앵포르멜 회화를 대체할 미술형식을 시도했던 작가들은 주로 동인을 이뤄 활동했는데, 이들의 작품경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기하학적 추상회화이고, 다른 하나는 회화의 형식을 떠난 실험적 전위예술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기하학적 추상회화 그룹‘오리진’, 기성품을 이용한 오브제를 작품에 도입한 ‘무’동인, 생활 속의 예술을 표방했던 ‘신전’동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1967년의 그룹전 ‘청년작가연립전’은 이들을 규합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이 전시에서 열린 한국 최초의 해프닝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은 비닐우산을 들고 의자에 앉은 여성의 주위를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합창하며 촛불을 들고 맴돌다가 비닐우산을 찢어버리는 것으로, 6월 20일 전시 오픈날 재연됐다. 순수예술의 도식적 형식을 해체하고 관람객을 작품의 등장인물로 포함시켜 소통과 참여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1960∼70년대 대안적 미술의 두 형태: 기하학적 추상회화와 실험적 전위예술
이처럼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전위예술은 1970년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창립과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들이 당시 내세운 선언문을 읽어보면 “전위예술의 강한 의식을 전제로 비전 빈곤의 한국 화단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모색 창조하여 한국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되어있는데, 이처럼 한국미술계를 공식적으로 비판하는 흐름도 선구적인 것이었다. 미술평론가 김인환, 이일, 오광수의 이론적 지원 아래 총 4회의 회지를 발간하며 1974년 전위예술축제인‘서울비엔날레’를 주최한 것도 이들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전시된 작품 중에서는 현재 앵포르멜 회화의 수장격인 박서보의 초기 작품이 눈길을 끈다. 기하학적 추상인 ‘NO.1-68’, 설치미술인 ‘허상’,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담은 ‘NO.7-69-70’ 등 여러 장르를 오간 그의 초기작품을 보면 다양한 형식 실험에 긍정적이었던 당시 젊은 작가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정적인 추상회화로 유명한 이강소의 초기작 역시 현재의 작품과 연결시키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운 모습을 띤다. 전시장에 닭을 풀어놓고 밀가루 위를 걷게 해 그 궤적을 사진으로 남긴 작품이나, 명동갤러리 내부를 주막집으로 변신시켜 미술과 일상의 구분을 없애려 한 1973년 작‘화랑 내 술집’은 오늘날 재연해 놓은 것을 보아도 신선하다.

갤러리가 주막집으로 변신하고, 편지가 예술이 된다
 당시 작품을 재연한 이벤트 중 특이한 것은 한국 최초의 메일아트로 꼽히는 김구림·김차섭의 1969년 작품 ‘매스미디어의 유물’이다. 두 작가는 언론 및 미술계 인사들에게 전시기간 중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 동안 1백여 통의 편지를 총 3차례 발송했다. 16절지 종이의 위와 아래 부분에 두 작가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함께 찍은 후 이 종이를 이등분해 찢은 종이를 두 차례에 나눠 보내는데, 발신자도 없이 오직 지문이 찍힌 종이 반쪽만 들어 있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귀하는 매스미디어의 유물을 하루 전에 감상하였습니다”라는 글이 담긴 세 번째 우편물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앞의 두 편지가 이벤트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2년만에 재연된 이 작품은 일상의 행위 속에서 발견되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측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이들 작가의 작업에 대해 “특별한 주류 양식이 없었으며 동문을 중심으로 한 일시적 소그룹 활동이 다수였다. 또 해외미술 동향을 받아들이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치부되기도 했다”고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당시 국외 미술상황을 동시대적으로 수용하고 실험했으며, 기존 미술양식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새로운 양식으로 전망을 제시하고자 했던 점, 미술계와 사회에 대한 비평적 발언을 시도한 점은 큰 성과”라고 밝혔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과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20세기 추상미술의 빛과 움직임’전의 기하학적 추상회화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가며 감상하면 좋을듯하다. 입장료 성인 700원, 학생 300원. 02-2188-6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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