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다음/ 1. 29] 예부터 정월 초하루가 되면 가정의 화목과 복을 기원하는 길상 문양이나 글귀를 써넣은 종이를 집에 붙이던 풍습이 있었다. 2006년 병술년 새해를 맞아 이처럼 유례 깊은 길상 그림을 돌에 새겨 재해석한 전시가 열린다. 갤러리진선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리는 고암 정병례 전각전을 찾아가 본다.

이번 전시는 크게 장수, 부귀, 화목 등을 기원하는 ‘길상 문양’을 담은 전각과, 길상의 뜻을 담은 한자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길상 어문’ 전각으로 나뉜다. 특히 그림을 찍어낸 전각 원본도 함께 전시해, 전각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전각은 글, 그림, 조각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종합예술이다. 대개 한 뼘도 되지 않는 돌 위에 형상을 칼로 새기고, 돌의 모서리를 조심조심 불규칙하게 쳐내어 마치 세월이 훑고 지나간 듯 파각(破却)한다. 그리고 이를 판화처럼 찍어내 감상한다.

전각의 전통은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올라갈 만큼 오래되었으나 그 결과물은 동시대의 눈으로 보아도 고루함이 없다. 오히려 디자인을 하는 이들이 새겨 보아야 할 만큼 현대적인 감각의 조형미가 물씬 풍겨난다. 제한된 공간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해야 하는 만큼, 군더더기는 쳐내고 고갱이만 오롯이 남기는 절제의 예술이 바로 전각이기 때문이다.

고암 정병례는 글씨를 쓰는 법〔字法〕, 화면을 구성하고 그리는 법〔章法〕, 칼과 끌을 다루는 법〔刀法〕 어느 하나에도 치우침이 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해 국내 전각예술의 1인자로 손꼽히는 작가다. 그의 전각은 갤러리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대중을 향해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감동적인 일화를 담은 ‘지하철 편지’나 ‘풍경소리’ 글모음에 등장하는 ‘네모난 그림’들이 바로 정병례의 전각 그림들이다. 또한 ‘대망’과 ‘왕과 비’ 등 사극 드라마의 힘찬 타이틀에도 그의 전각이 사용된 바 있다.




 
 


대길(大吉)’이라는 문자를 아래위로 배치해, 사람 얼굴처럼 익살스럽게 형상화한 길상 어문. 얕게 파낸 부분과 끌로 시원시원하게 툭툭 쳐낸 면의 대조가 도드라진다.
 
 
새해를 맞이하여 기쁜 일만 오라는 뜻을 담은 민화 속 까치와 호랑이를 표현했다. 두 개의 길쭉한 돌을 이어 넓은 화면을 표현했다.

 

앞의 전각을 종이에 찍은 모습. 그림이 도장처럼 거꾸로 찍히므로, 반대로 그림을 새겨 넣어야 원하던 모습을 얻을 수 있다.
 
 

우주의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내는 요소, 즉 원방각(元方角)의 구성으로 천지의 모든 요소가 하나되는 조화로움이 곧 복을 불러오는 것임을 표현한 작품 ‘길상(吉祥)’.
 

전각의 원본과 드러난 이미지가 좌우반전 됨으로써, 원본과는 또 다른 느낌이 된다.
 
 


전 세계가 평화를 외치지만 계층 간의 반목, 전쟁, 공포 등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화합을 기원하는 작품 ‘화(和)’. 전각의 옆면에는 ‘미국과 이락이 전쟁하고 있다. 제발’이란 글귀가, 윗면에는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이락의 석유가 탐이 났나. 그것 때문에 서민과 어린이가 희생이 되다니!’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의 붉은 색 상형문자는 화기애애함을 뜻하는 길상 문자이다. 붉은 색은 따뜻한 온기를 의미한다.


물질을 취함을 상징하는 문자 패(貝)를 새겨 보다 많은 생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작품 <得>.
다양한 전각 원본이 선반에 나란히 전시되어 전각 애호가들의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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