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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길고양이들의 까꿍놀이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밑 빈 공간에서 놀던 아기 길고양이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눈동자가 예쁜 호박색입니다. 갑작스런 방문에 화들짝 놀란 아기 길고양이는, 얼른 건너편 지붕으로 달아납니다. "노랑이 없~다!" 대담한 건지, 숨는 게 서투른 건지, 지붕 밑에 얼굴만 쏙 감추고 자기는 없답니다. "응? 아직 안 갔냥?" 나 없다고 하면 시시해서 가버릴 줄 알았는데, 머리 위 인간은 엉덩이가 무겁게도 버티고 있습니다. "뭐 재미있는 거라도...헉! 인간이닷!" 얼룩무늬 아기고양이가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다가 눈치만 보고 잽싸게 머리를 집어넣습니다. 노랑이는 제가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안심했는지, 이제 여유만만한 얼굴이 되어 지붕 모서리에 입술을 비비고 있습니다. 노랑이가 해맑은 눈으로 저를.. 2010. 5. 12.
민들레꽃의 유혹에 빠진 길고양이 호기심 많은 어린 길고양이의 눈에, 민들레 꽃봉오리가 들어옵니다. 나뭇가지든 손가락이든, 일단 길고 뾰족한 것만 발견하면 턱을 비비고 보는 습성 탓에, 아직 채 피지도 않은 봉오리에 자꾸만 눈이 갑니다. 고개를 한들한들 흔드는 꽃봉오리가 "어서 턱밑을 긁어보렴, 시원할거야" 하고 어린 길고양이를 유혹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닥에 뒹구는 흔한 풀들과 다른 향이 나는 듯도 합니다. 민들레의 유혹에 못이긴 고양이가 살며시 코를 들이밀어 봅니다. 힘차게 위로 불쑥 솟아오른 모양새와 달리 목에 힘이 없는지라, 민들레는 고양이가 코끝으로 밀면 밀리는대로, 그렇게 흔들거리기만 할 뿐입니다. 민들레 특유의 향기가 싫지 않았는지, 바로 옆 활짝 핀 꽃으로 가까이 다가가 다시 냄새를 맡아봅니다. 벌써 여름이 왔나.. 2010. 5. 11.
젖 먹이는 엄마 길고양이, 뭉클한 모정 살아남으려면 길에서 사는 고양이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홀몸을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하물며 새끼 딸린 엄마 고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엄마 고양이는 그저 젖만 물리는 게 아니라, 제 몸의 영양분을 있는 힘껏 짜내 새끼에게 먹인다. 새끼를 갖기 전에는 통통했던 고양이도, 얼마동안 새끼에게 젖을 먹이면 비쩍 말라버려 몰라보게 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젖 먹이는 엄마 길고양이를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건 예전에 일하던 잡지사 정원에서였는데, 엄마 고양이는 정원에 세운 조각상 좌대 밑의 빈 공간에 숨어서 새끼를 낳고 길렀다. 길고양이를 안쓰럽게 여긴 집 주인이 돼지고기며 계란을 빈 그릇에 담아주었는데도, 엄마 고양이는 젖 달라는 새끼들 성화에 몸이 바빠 먹을거리는 입조차 대지 못했다. 한두 마리도 .. 2010. 5. 7.
아이라인 문신이 선명한 길고양이 길고양이 중에 유독 성정이 강해 보이는 녀석들이 있다. 고양이가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눈을 맞춰보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왜 그런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보이는 고양이들은 대개 아이라인이 까맣고 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화장이 능숙하지 않은 나는 마스카라를 칠하거나 아이라인을 그리면 눈 주위가 까맣게 번져서 팬더눈이 되는 바람에 눈화장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간혹 전철에서 아이라인에 문신한 아주머니를 만나면 '헉, 아이라인이 너무 진해서 무섭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가늘게 해 넣으면 어색하지 않고 매일 따로 그릴 필요도 없으니 편하긴 하겠네' 싶었는데, 고양이라면 아이라인이 잘못 그려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라인에 천연 문신을.. 2010. 5. 7.
까치발을 한 길고양이, 쓸쓸한 뒷모습 골목을 걷다보면 문을 열어둔 집이 간혹 눈에 띈다. 이중 삼중으로 걸쇠를 걸고, 그것도 모자라 번호자물쇠며 현관 출입제어장치까지 갖춘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나,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문이란 집에 형식적으로 딸린 부속일 뿐이다. 그 문조차 활짝 열린 부엌 앞에, 종종걸음으로 갈 길을 가던 길고양이가 문득 멈춰선다. 열린 부엌 문 너머로 무엇을 본 것일까. 아마도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했을 것이다. 고양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계단 너머로 몸을 내민다. 안이 잘 보이지 않자,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쭉 내민다. 가벼운 섀시문 한짝 달린 문턱 너머로, 인간의 영역과 고양이의 영역이 그렇게 나뉜다. 한 걸음 안으로 내딛으면,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귀여워해주는 .. 2010. 5. 6.
길고양이 코점이, 코가 닮았네 디스크 파열 후유증으로 한동안 뻣뻣했던 허리도 좀 나아질 기미가 보여서, 슬슬 길고양이 마실을 다닌다. 병원에서는 걷기 운동을 많이 하라고 했는데, 고양이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동안 꽤 쏠쏠하게 운동이 된다. 반나절 걷고 나면 허리가 뻑뻑해지고 마는 저질 체력이 됐지만, 꾸준히 무리하지 않게 운동을 하다보면 허리 근력도 생기고 몸도 좋아질 거라는 기대로... 혼자 아무 일 없이 걸으면 심심하니까, 길고양이와 함께 하는 재활운동인 셈이다. 이날의 걷기운동 중에 만난 고양이는 콧잔등에 점이 2개 있어 '코점이'로 이름붙인 길고양이. 무심한 척하며 뒤따라가 본다. 뒤를 밟히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코점이가 홱 돌아보는데, 벽에 그려진 낙서와 코 모양이 똑같다. 코의 솜털이 벗겨져 빨갛게 변한 색깔까지도 같다. 다.. 2010.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