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후덕한 길고양이가 가을볕을 쬐며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돌보는 사람 하나 없어 잡초가 무성해진
폐가를 지키는 문지기라도 된 듯합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코 밑 얼룩무늬 때문에 면도 안 한 아저씨 같다 여겼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초록색 눈망울이 천진합니다.
몸은 피폐한 땅에 의지하고 있지만, 고양이의 마음은 아득히 먼 어딘가를 향해 있습니다.
고양이가 인도하듯 낡은 폐가 안으로 들어섭니다. 오래된 나무 문을 경계로 공기의 냄새가 달라집니다.
나달거리는 벽지에서 스며나오는 곰팡이 냄새가 스멀스멀 코끝을 찌릅니다.
이 집에 살던 이는 세탁기며 그릇이며 낡은 살림살이들을 그대로 두고 집을 떠났습니다.
낡은 집에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만큼 오래된 물건들입니다. 새 집으로 그 짐을 다 옮겨가는 것보다
살림살이를 새로 사는 것이 더 싸게 먹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옛 집에서의 기억을 상징하는 그 물건들을
모조리 버림으로써, 고단한 과거와 작별하기를 꿈꿨는지도.
사람이 살지 못할 폐가도, 길고양이에게는 아쉬운대로 바람을 피할 쉼터가 됩니다. 제 집인양 능숙하게
드나드는 모습으로 보아, 주인 잃은 이 집은 당분간 길고양이의 소유가 된 모양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길고양이는 어둠 속으로 몸을 날립니다. 따라가기에는 통로가 좁기도 하거니와,
스산한 기분이 들어 더이상 고양이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길고양이에게는 어둠보다 두려운 것이
곧 다가올 겨울입니다. 매서운 겨울을 대비해 지붕이 있는 잠자리를 구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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