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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가을을 맞이하는 길고양이의 자세

by 야옹서가 2009. 10. 30.
고양이는 가능한 한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갑니다. 도심 하늘에서 고양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맹금류가

활개를 칠 리 없기에, 고양이가 안심할 수 있는 쉼터는 인간이 따라오지 못하는 높은 담벼락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시선을 피해 멀리 달아나도, 계절의 손에서 달아날 수는 없습니다.

먼 산 가득 흐드러졌던 단풍이 찬바람에 하나둘 떨어지는 가을이 오면

길고양이의 마음도 초조해질 것만 같습니다.    


탐스럽게 익은 감나무 아래, 허물어져가는 담벼락에 오른 길고양이가 주변을 경계하며 이른 저녁을 먹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엉거주춤, 하던 일을 멈춥니다.


짧은 시간 길고양이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갑니다.

도망갈까, 말까. 일단 눈앞의 먹을 것은 먹고 가야지.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길고양이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이 녀석도 분홍색 코끝이 까지고 딱지가 붙었습니다.


길고양이가 고민하는 눈치일 때는,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있습니다.

'나는 투명인간이다, 투명인간' 하고 길고양이에게 암시를 겁니다.


혓바닥을 내밀어 메롱~도 해봅니다.

아직까지는 푸르른 배춧잎이 노랗게 시들어갈 무렵이 되면

한때 따스했던 공기도 싸늘한 회색 바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든지 상관없이, 길고양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고, 계절이 가져오는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눈앞의 인간이 별다른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았는지, 그대로 단잠에 빠져듭니다.


누군가는 아파트에 살고, 누군가는 빌라에 살고, 누군가는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살아가지만,

길고양이에게는 그나마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지붕, 하늘 지붕에 기대 살아가는 게 길고양이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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