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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고양이 스밀라

스밀라의 배꼽시계

by 야옹서가 2006. 8. 19.
1.
배꼽시계란 말이 있다. 굳이 시계를 안 봐도, 허기진 배가 알아서 시간을 알려준다는 '생체 시계'. 스밀라에게는 이 배꼽시계에 알람 기능까지 있다. 내가 아무리 늦게까지 일을 하다 잠들어도 스밀라의 알람 시계는 사정을 봐 주지 않고 울린다. 꿈인지 생시인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앵~'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스밀라가 앞발을 모으고 정좌한 채 울고 있다. 인간아, 어서 밥을 내놓아라, 하고.

저녁에 밥을 많이 주고 자면 되지 않느냐, 하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데 사료를 많이 부어 놓으면 잘 안 먹는다. 게다가 꼭 끝까지 먹지 않고 얼마 정도 남긴다. 유진과 함께 사는 업둥냥이 고래가 그런다고 해서 '고녀석, 생긴 것보다 입이 짧네' 하고 생각했는데 스밀라도 그런다. 예전에 <고양이에게>에서, 스노우캣도 나옹이 먹다 남긴 사료를 모았다가 길냥이들에게 준다는 글을 읽었는데, 사료를 애매하게 먹다 남기는 건 고양이의 공통적인 습성일까? 설문조사라도 해봐야 하나. 어쨌든 한번에 많이 주면 안 먹고, 새 사료를 부어 주지 않으면 또 안 먹으니, 천상 스밀라가 깨우는대로 일어나서 밥을 줄 수밖에. 조금 먹고, 한참 지난 다음에 그제서야 기억난 듯이 다시 와서 또 조금 먹고. 정말 깨작대마왕이다.


2.
글 쓰는 도중에 스밀라가 7단 서랍장에서 한 단계 발전해 책꽂이 위까지 진출했다. 스밀라에게 7단 서랍장이 남산 타워라면, 책꽂이 위는 63빌딩이다. 보통 1미터 정도는 훌쩍 뛰어넘지만, 발 딛을 곳이 애매해서 올라가지 못할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제발로 훌쩍 뛰어 올라오고서도 스스로 놀랐는지 '우옷~ 내가 여기에 올라왔어?' 하는 얼굴로 눈이 동그래져서 막 두리번거린다. 그러다가 미친듯이 그루밍을 한다. 갑자기 공황상태에 빠졌나?^^; 그나저나 책꽂이 맨 위는 먼지 투성이인데 온몸으로 빗자루 노릇을 하고 있으니, 다음번 목욕이 기대되는구만-_- 지금은 아주 여유로운 자세로 드러누워 창 밖을 바라본다. 남쪽에서는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지만, 하늘은 아직까지 평화롭다. 그 하늘 위에 둥실 뜬 것처럼, 스밀라가 누워 있다. 올라가는 건 좋은데, 먼지는 먹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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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스밀라의 최고 등반 기록은 7단 서랍장. 스밀라 옆에 있는 고동색 벽이 문제의 책꽂이다. 사진에서는 잘려서 보이지 않는 곳에 또 조그만 상자가 놓여 있어서, 7단 서랍장에서부터 책꽂이 끝까지의 높이는 1미터 가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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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드디어 기록을 갱신했다. 책꽂이 위에 얹어놓았던 빈 상자가 받침대로는 불안하게 덜렁덜렁해 보였는데, 어찌어찌 이걸 딛고 뛰어올라갔다. 책꽂이 첫 번째 칸에는 그동안 모은 자잘한 인형들을 올려뒀었는데, 이것도 스밀라가 한 번 들쑤셔 놔서 앞줄은 다 쓰러진 상태. 주로 심슨 가족의 피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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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편한지 아예 내려올 생각을 않네-_- 온몸으로 먼지를 청소하고 있는 스밀라. 아무래도 고양이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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