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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갤러리 속으로 파고든 예술가게―2001풀마트 쌈지店전

by 야옹서가 2001. 8. 31.

 Aug. 31. 2001
| 젊은 작가 7명이 전시장에 독특한 예술품 가게를 차렸다. 신촌 쌈지스페이스 전관에서 8월 25일부터 9월 5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이 가게는 ‘2001풀마트 쌈지店’이다. 참가작가들은 소각장으로 보내지기 전의 가죽이나 천, 유통기한이 지난 뻥튀기, 협찬받은 필름, 포스트잇 등으로 기발한 작품을 만들고 판매와 홍보에 나섰다. 작년 3월 대안공간풀에서 열린 ‘풀마트’전에 이은 두 번째 전시인 만큼, 쌈지스페이스에 자리를 편 ‘2001풀마트 쌈지店’은 ‘2호점 개점’인 셈이다.

뻥튀기로 만든 예수상, 포스트잇으로 그린 모나리자
‘2001풀마트 쌈지店’전의 참가작가들은 생산자, 판매자, 홍보자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무슨 물건이든 몽땅 다 판다’는 풀마트(Fullmart)란 그룹명 속에 전시장을 창작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는 판로로 개척하려는 뜻이 담겼다. ‘상품으로서의 예술’ 측면을 부각시킨 이번 전시는 무명의 젊은 작가들이 생계 유지와 창작 활동 사이에서 겪는 현실적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참여작가들은 작품의 아우라가 브랜드 가치처럼 여겨지는 현대미술시장에 대응해 자신들의 작품에 브랜드를 붙이거나 기성품을 이용하고, 전혀 작품의 재료일 것 같지 않은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응용해 예술상품을 만들었다. 

예컨대 디자인에 심리테스트적 요소를 부여한 강소영의 ‘Fakefur’가방이나 비만한 여성의 몸을 열쇠고리로 만든 이지현의 ‘어글리 챔피언’은 작품 주제와의 브랜드 네이밍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해 만든 브랜드다. 윤석만은 기성품을 오브제로 사용해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해소하는 ‘투명인간 팬티’와 ‘신데렐라 양말’을 선보였다. 뻥튀기 과자로 만든 이욥의 예수상이나, 책갈피로 쓰는 포스트잇을 픽셀 삼아 모나리자와 마릴린 먼로를 그려낸 이정승원 역시 그 기발함과 풍자성이 돋보인다. 복, 행운, 사랑 등을 의미하는 도상을 네온사인으로 만든 추지연이나 최정희의 수공예 장난감 ‘드림박스’는 장식용으로 구입하고 싶을 만큼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에서 전업작가로 살아가기’에 대한 문제 제기
참가작가 강소영씨는 “가격을 써 붙이고 작품을 판매하는 것은 아트샵이나 아트페어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라 사람들이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친근해했다”고 관람자들의 반응을 소개했다. 강씨는 “그림을 파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림이 작가의 생존수단이 되는 건 당연하다”며 “작가들이 스스로 뛰어다니며 협찬을 따내고, 적극적으로 제작과 판매에 참여하면서 ‘어려워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전시는 독특한 기획력을 인정받아 올해 문화예술진흥원의 전시 후원을 받았다.

이미 신화가 돼버린 작고작가와 소수의 중견작가들이 미술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파는 일은 쉽지 않다. 판매를 한다 해도 가족이나 친구 등이 대부분인 ‘가족 잔치’로 끝나고 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작품’의 형태가 아닌 개념미술이나 설치미술 작가의 경우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풀마트 작가들이 선보인 예술상품들은 아트샵에서 판매하는 ‘진짜 예술상품’처럼 매끈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제기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2001풀마트 쌈지店’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미술인의 생계 문제와 작품 판매에 대한 설문조사 내용도 볼 수 있다. 문의전화 02-3142-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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