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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인 문신이 선명한 길고양이 길고양이 중에 유독 성정이 강해 보이는 녀석들이 있다. 고양이가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눈을 맞춰보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왜 그런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보이는 고양이들은 대개 아이라인이 까맣고 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화장이 능숙하지 않은 나는 마스카라를 칠하거나 아이라인을 그리면 눈 주위가 까맣게 번져서 팬더눈이 되는 바람에 눈화장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간혹 전철에서 아이라인에 문신한 아주머니를 만나면 '헉, 아이라인이 너무 진해서 무섭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가늘게 해 넣으면 어색하지 않고 매일 따로 그릴 필요도 없으니 편하긴 하겠네' 싶었는데, 고양이라면 아이라인이 잘못 그려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라인에 천연 문신을.. 2010. 5. 7.
까치발을 한 길고양이, 쓸쓸한 뒷모습 골목을 걷다보면 문을 열어둔 집이 간혹 눈에 띈다. 이중 삼중으로 걸쇠를 걸고, 그것도 모자라 번호자물쇠며 현관 출입제어장치까지 갖춘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나,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문이란 집에 형식적으로 딸린 부속일 뿐이다. 그 문조차 활짝 열린 부엌 앞에, 종종걸음으로 갈 길을 가던 길고양이가 문득 멈춰선다. 열린 부엌 문 너머로 무엇을 본 것일까. 아마도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했을 것이다. 고양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계단 너머로 몸을 내민다. 안이 잘 보이지 않자,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쭉 내민다. 가벼운 섀시문 한짝 달린 문턱 너머로, 인간의 영역과 고양이의 영역이 그렇게 나뉜다. 한 걸음 안으로 내딛으면,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귀여워해주는 .. 2010. 5. 6.
길고양이 코점이, 코가 닮았네 디스크 파열 후유증으로 한동안 뻣뻣했던 허리도 좀 나아질 기미가 보여서, 슬슬 길고양이 마실을 다닌다. 병원에서는 걷기 운동을 많이 하라고 했는데, 고양이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동안 꽤 쏠쏠하게 운동이 된다. 반나절 걷고 나면 허리가 뻑뻑해지고 마는 저질 체력이 됐지만, 꾸준히 무리하지 않게 운동을 하다보면 허리 근력도 생기고 몸도 좋아질 거라는 기대로... 혼자 아무 일 없이 걸으면 심심하니까, 길고양이와 함께 하는 재활운동인 셈이다. 이날의 걷기운동 중에 만난 고양이는 콧잔등에 점이 2개 있어 '코점이'로 이름붙인 길고양이. 무심한 척하며 뒤따라가 본다. 뒤를 밟히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코점이가 홱 돌아보는데, 벽에 그려진 낙서와 코 모양이 똑같다. 코의 솜털이 벗겨져 빨갛게 변한 색깔까지도 같다. 다.. 2010. 5. 4.
겨울을 무사히 넘긴 새끼 길고양이, 어른되다 사고사와 병사로 짧게 끝나기 쉬운 길고양이의 삶이지만,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살아남은 모습을 보면 내가 키운 고양이는 아니어도 대견한 마음에 어쩐지 뿌듯하다. 작년 10월 초 처음 만난 어린 길고양이도 그랬다. 겨우내 드문드문 얼굴을 보았지만 제대로 찍을 수 없었는데, 그 사이에 부쩍 자라 어른이 다 됐다. 몸매는 여리여리하고 얼굴에는 약간 앳된 기운이 남았지만, 청소년 고양이의 단계는 넘어섰다. 보무도 당당히 걸음을 옮기는 모습.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쪽을 향해, 음식쓰레기 봉지로 다가간다. 고양이 은신처 근처에는 주기적으로 밥을 챙겨주는 어르신이 계신다. 3마리 일가족이 이 영역을 지키고 있는지라 먹을 것이 확보되지만, 다른 고양이들도 드나드는 터라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한 듯. 허기가 지면.. 2010. 5. 4.
호시탐탐 아버지 이불을 노리는 고양이 "빨리 좀 와 봐~" 웃음 섞인 어머니 목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뛰어가보니, 스밀라가 아버지 이부자리에 곤히 잠들었다. 스밀라가 사람 이불을 노리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모습에 웃을 수밖에 없었던 건, 이 자리가 평소 '스밀라 금지구역'으로 선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건이든 이불이든 비닐이든, 까실까실하거나 부셕부셕한 것, 넓고 폭신한 것이 깔린 곳이면 거침없이 올라가 드러눕는 스밀라지만, 다른 곳은 다 허락한 아버지도 "이부자리만은 내줄 수 없다"고 선포하셨는데 다 까닭이 있다. 처음 스밀라가 오고 몇 달 동안 아버지는 스밀라의 거실 출입조차 못마땅해 하셨다. 예전에는 개를 키우기도 했던지라 동물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어도, 아버지 세대 분들에게 동물이란 '마당에서 키우는 것'이란 인식.. 2010. 4. 26.
웃음을 불러오는 고양이의 묘한 표정들 평소 정색을 하고 있던 고양이에게서 뜻밖의 흐트러진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고양이가 그루밍을 할 때인데요, 털 끝을 까실까실한 혀로 열심히 핥아 몸단장을 하면서 온 힘을 다하기 때문에 종종 묘한 표정을 짓곤 합니다. 본인, 아니 본묘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 참 다양한 얼굴이 숨어있습니다. 혀를 낼름 내밀면서 웃음을 짓는 장난꾸러기 소녀의 얼굴도 되었다가 가끔 이렇게 칠뜩이 같은 표정도 짓곤 합니다. 가끔은 혀가 어디까지 올라오는지 재어보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정신을 번쩍 차리고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며 정신을 가다듬는 듯합니다. 물론 그루밍을 끝내면 내가 언제 저런 웃기는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새초롬한 얼굴로 돌아오지요. 그루밍을 마치고 촉촉해진 털옷을 고르며 잠시 숨을 가다듬는 스밀라를 보면서.. 2010.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