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써온 컴퓨터에 슬슬 사망 기미가 보인다. 하루에 한두 번씩 꼭 ‘치명적인 오류’ 운운하는 메시지가 뜨면서 다운된다. 파랗게 깜빡이는 화면은 내게 모종의 경고를 던지는 듯하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며 살다 보면, 네게도 곧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다고.

‘라모’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박활민씨에게도 한때 그런 ‘시스템 오류’ 메시지가 떴다. 대개 무시하기 마련인 그 메시지를 읽었을 때, 그는 마음의 균형을 회복할 장소를 찾아 떠났다. 2003년 한국을 떠나 티베트·인도·네팔을 떠돌았고, 북인도 다즐링에서 1년을 머물렀다. 박활민씨가 다즐링에서 한 일은 ‘인생의 방학’을 즐기는 일이었다. 하릴없이 산책하고,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찍거나 그림을 그렸다. 명상하듯 먼 곳을 응시하는 고양이를 보면 마음이 평온했다. 고양이를 그리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명상으로 이어졌다.

“다즐링에 아침 햇살이 비치면 고양이들이 지붕에 모여들어 일광욕을 하죠. 고양이를 그리면서 손으로 하는 일, 내면의 기쁨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요즘은 손의 가치가 많이 훼손되고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했지만, 이제 삶을 바라보는 가치의 전환이 필요해요.”

서울로 돌아온 박활민씨는 본업인 캐릭터 디자인뿐 아니라, 정신의 불균형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삶의 디자인’을 궁리한다. 이를 위해서 명상적인 글귀를 담은 그림 편지를 온라인 공간에 올린다. 자신의 마음을 위해 썼던 글이 같은 고민을 겪는 타인에게도 힘이 되길 바라면서. 한데 그는 왜 불특정 다수에게 그림편지를 띄울까?

“콘텐츠의 최고 기능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거예요.”

그의 답은 간결했으나,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를 논한 수많은 글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다. 나 역시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의 블로그에 실린 글과 사진들에 홀려 그곳으로 흘러들어갔으니. 심지어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그의 고양이 그림이 깔려 있다. 한가로이 누운 고양이 그림 밑에 이런 글귀가 씌어 있다. “직업이 너를 바꾸어 놓게 하지 말고, 너의 본성으로 직업을 완성하라.” 가장 좋은 건 직접 그리는 것이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그의 명상세계 속으로 스며든다. 그의 블로그 ‘라모의 편지’(buddhaboy.egloos.com)에서 그간의 그림 편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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