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나/ 2008년 겨울호]

 

수도승처럼 파르라니 깎은 머리, 죄수복 같기도 하고 어릿광대의 무대복 같기도 한 줄무늬 셔츠를 걸친 사내들이 어두운 작업실에 줄지어 섰다. 조각가 천성명은 자신의 페르소나인 그들을 몽환적인 잔혹극 속으로 불러낸다. 누군가는 천성명의 연극적인 조각에서 상처를 읽어내고, 누군가는 어두운 내면의 투쟁을 본다. 그러나 두려워 눈을 가리고 달아나면서도 기어이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그의 작품 속에 있다.

천성명은 경기 화성시 동탄면 목리창작촌의 컨테이너 작업실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창작에 전념한다. 정오께 작업실로 왔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수원 집으로 향하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다. 2001년 무렵, 동료 작가들과 함께 맨땅에 터를 닦아 목리창작촌을 만들었고, 그의 주요 작품 대부분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내년이면 이 작업실도 철수해야 한다. 시설이 낙후되고 공간도 부족한 데다, 동탄 신도시 개발의 여파가 이곳까지 미친 까닭이다. 녹슨 컨테이너 지붕에는 2007년 개인전 때 전시했던 거인상이 올려져 있다. 워낙 덩치가 큰 작품이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지붕 위에 뒀다고 한다.


이렇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가 만든 자소상들은 대개 1미터 내외의 높이다. 등신대보다는 조금 작고, 인형보다는 조금 큰 크기다. 인간과 인형의 경계선에 있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찾아낸 적정 높이가 1미터인 셈이다. 물론 모든 작품을 처음부터 이런 크기로 제작한 것은 아니다.


“원래는 등신대였는데, 점점 머리 부분만 가면을 쓴 것처럼 커졌어요. 그러다가 머리는 그대로고 몸만 작아진 형태로 바뀌었어요. 현실 공간에 놓았을 때 아이처럼 보이지만, 얼굴은 어른의 모습으로 보이죠.”


천성명은 예술품의 권위를 상징하는 좌대를 버리고 맨바닥에 조각을 세운다. 좌대의 도움 없이 두 발로 직립한 조각들이 전시장에 들어설 때, 공간에 긴장감이 감돌고 맨바닥은 어느새 연극적인 무대로 변신한다.


경계에 갇히다

천성명의 페르소나들은 이곳과 저곳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를 맴도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끝날 줄 모르는 갈등 상황을 벗어나려 애쓰지만, 이동수단으로 선택한 탈것들은 하나같이 무용지물이다. 앞뒤로 흔들리는 요람, 빙글빙글 맴도는 회전목마, 발을 굴러야만 겨우 움직이는 장난감 말…. 잃어버린 유년기를 상징하는 이 물건들은 모두 멈춰 있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원래 있던 곳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구원을 위한 날개조차 무용지물이 되거나, 흉기로 돌변한다.


갤러리 상에서 열린 다섯 번째 개인전 《달빛 아래 서성이다》(2005)에서, 달을 향해 날아오르던 남자가 결국 좌절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두운 하늘 한가운데 뚫린 구멍처럼 빛나는 달은 상징적인 탈출구로 기능하지만, 남자는 달을 향해 날아오르다 몸을 짓누르는 날개의 무게 때문에 추락하고 만다. 언뜻 보기엔 환상동화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인형들은 좌절과 상처로 얼룩져 있다.


천성명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의 어두움은 어디까지냐고. 그는 답한다. 20대, 30대에 학교를 갓 졸업해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에겐, 밝은 일보다 어두운 일들이 더 많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내겐 어두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그런데도, 그 어둠 속에서 치유의 빛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천성명이 만든 자소상은 그가 유독 애착을 갖는 검은 거울의 상징성과 닮았다. 은빛 거울이 빛의 세계에 속한다면, 검은 거울은 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은 어둠의 세계를 비춘다. 전시를 보러온 사람들은 내면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검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조심스레 마음을 열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조각들

“처음에는 저도 그런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는 과정에서 작업하는 자체가 저에게 일종의 치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인식을 갖기 시작한 게 2005년 무렵이었어요. 흥미로운 건 제가 제 얼굴을 빚은 작품으로 제 얘기를 하듯, 타인들도 제 작품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전시회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기사를 오려내 전시장까지 찾아와서는, 작품을 보니 억눌린 자기 인생을 보는 것 같다면서 저를 붙잡고 감정을 토해내는 아주머니도 계셨어요.”


여섯 번째 개인전부터는 이전 작품보다 한층 더 직설적인 세계로 접어들었다. 이전 전시에서 자기검열을 거쳤던 장면들도 스스럼없이 묘사했다. 손목을 그은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조차 푸른 눈물로 처리했던 전작과 달리, 최근 작품에서는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스며 나온 피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서정적인 동화 같은 면을 지녔던 그의 전작에 열광한 사람들 중 일부는, 갑자기 격하게 상처를 토해내는 천성명의 조각에 낯설어했다. 하지만 그런 변화의 배경에는 ‘나를 찾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제가 원래 모델링 작업을 잘 안 해요. 자소상을 만들어오긴 했어도, 동양화로 치면 실경산수보다 관념산수에 가까웠죠. 그러다 ‘그림자를 삼키다’ 작업을 하면서 오래간만에 작은 거울을 사서 계속 보면서 제 얼굴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얼굴이 매일 달라지는 거예요. 그때마다 고치기를 한 달 동안 매일같이 했어요. 전날 술을 마셨거나 약을 먹고 자서 얼굴이 부으면 또 다르게 보여서, 고치고 또 고치고. 결국 나중엔 거울에 비친 내 형상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나는 이렇게 생겼어’ 하고 아는 것과, 남들이 아는 나는 굉장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이야기가 구체화된 것이 ‘그림자를 삼키다’의 1부 얘기죠.”


내 안의 그림자를 만나는 여정

갤러리 선컨템포러리에서 열린 여섯 번째 개인전 《그림자를 삼키다》 1부(2007)에서는 천성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작에서 그가 우회적으로 상처를 이야기했다면, 이제 천성명의 페르소나들은 피로 물든 사이코드라마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서도 상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절대 상처를 내보이며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두려움은 거세게 충돌한다. 한 몸에서 갈라져 나온 상반된 욕망은 인질극을 벌이는 샴쌍둥이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두 욕망의 근원은 하나이니, 서로를 찌르고 베는 일은 결국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일 뿐이다. 눈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거인, 물고기 가면을 뒤집어쓴 소년, 풍경을 손에 든 소녀 등 그의 전시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자아를 반영하며, 서로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도록 치밀하게 계획되어 전시된다.


몸은 여럿이나 실체는 하나인 자소상들이 피를 흘리며 상처를 드러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들은 작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실체인 동시에, 그의 삶을 지배하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속의 그림자를 직시해야만, 비로소 그림자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질 힘이 생겨난다. 그런 뜻에서 줄무늬 셔츠의 아이가 뒤집어쓴 물고기 가면은 의미심장하다. 이 가면에는 눈을 부릅뜬 채 수도에 정진하기를 독려하는 사찰의 목어처럼, 내면의 각성을 향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초기에는 모터를 달아 장난감처럼 단순동작을 반복하는 기계인형을 만들거나 음향 효과를 덧붙이면서 순간적인 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집착했어요. 하지만 이젠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내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려 해요. 초기 작업이 한 장면의 연출이었다면, 이젠 장면과 장면을 이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단계인 거죠.”


이야기로 소통하고 싶은 욕망

오는 10월 헤이리 터치아트 갤러리에서 열릴 일곱 번째 개인전 《그림자를 삼키다》 2부 전시에서는, 그가 보여주고픈 이야기의 윤곽이 좀 더 뚜렷해질 듯하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받는 상처에 대한 얘기가 1부의 주된 내용이었다면, 2부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욕망, 그로인해 입은 상처까지도 받아들이고 해소하는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에는 학습화된 인간을 상징하는 아홉 명의 늑대 인간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해 이야기를 매듭짓게 된다. 전시가 끝나면 다시 보기 힘든 설치작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진 작업과 미니어처 작업, 전시 내용을 담은 단행본도 함께 구상 중이다.


천성명은 자신의 상태가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에 두 발을 한 쪽씩 걸치고 선 느낌’ 같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규정짓는 경계뿐 아니라 미술계의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다. 이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품만 하는 게 아니라, 전시 외의 다른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해온 그의 행보와 이어진다. 천성명은 한때 자신의 이름을 건 아트숍 ‘천성명인(人)’을 열었다. 일회적 전시로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작품도 보고,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소장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소식도 접할 수 있는 아트숍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작업실과 전시장의 중간 단계인 이 공간이 정착되기엔 시기적으로 일렀다. ‘천성명인’은 임대료가 턱없이 비싼 인사동에서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내년에 목리 창작촌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작업실을 꾸리게 되면,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생적인 작업 공간을 만들고, 작품을 통해 사회 환원에 참여하는 게 그의 또 다른 꿈이다. 2008년 2월 오픈한 홈페이지(http://chunsungmyung.com)는 타인과의 교감을 꿈꾸는 그가 묵묵하게, 그러나 꾸준히 시도해 온 시도 중 하나다. 사이트 역시 그의 이원화된 세계관이 잘 드러난다. ‘천성명’을 클릭하면 작가로서의 그를 만날 수 있고, ‘人’을 클릭하면 인간 천성명을 만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이채롭다.


천성명 | 조각가. 1971년생. 수원대학교 조소과(1999)와 동 대학원(2001)을 졸업했다. 김세중 청년조각상(2007), 벨그라드-Micro-narratives 3등상(2007), 동아미술제 대상(2000), 경기미술대전 우수상(1998)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대학원과 추계예술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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