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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머리 받치고 자는 고양이, 귀여워 요즘 스밀라의 지정석은 책상 위에 놓아둔 등산가방입니다. 가방을 방석 삼아 껌딱지처럼 떨어지지 않고 하루종일 자는 걸 보면 고양이의 나른한 하루가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햇빛이 들어오는 게 싫은 건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그러는 건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둥그렇게 만 채 잠든 스밀라가 귀여워서 살며시 손을 얹어봅니다. '잘도 자네..'하면서 살살 배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눈을 번쩍! 뜹니다. "왜 잠자는 고양이의 뱃털을 건드리냐!" 하는 매서운 눈빛입니다. 고양이가 잠자는 자세 중에서도 저렇게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잠자는 모습은 어쩐지 선생님께 혼나서 손을 든 아이 같고, 울고 있다 들킨 모습 같기도 해서 귀여우면서도 짠한 마음이 드는데요. 종종 저 자세로 자는 걸 보면 고양이에게는 편한가 봅니다.. 2010. 6. 1.
[폴라로이드 고양이] 004. 등받이 길고양이 두 마리가 햇빛 아래 몸을 옹송그리고 잠을 청합니다. 은신처에 숨어 편히 누워서 자면 될 텐데, 마침 따끈하게 데워진 돌방석 위를 떠나기가 싫었던 모양입니다. 엉덩이는 엉거주춤 붙이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어디에든 머리를 좀 기댔으면 하는 눈치입니다. "웅...졸리긴 한데... 그냥 자긴 불안하고...." "나한테 기대면 되잖아. 얼른 코 자" "정말? 그럼 너만 믿고 잔다." "..." 말은 그렇게 해 놓고 둘 다 곤히 잠들어 버렸습니다. 서로 기대니 편안했나 봅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았을 때 오래 앉아 얘기할 일이 생기면, 등받이 의자가 있는 곳인지 아닌지부터 먼저 살피게 됩니다. 척추디스크 진단을 받은 뒤로, 등을 기대지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뻑뻑해지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습.. 2010. 6. 1.
길고양이, 세파에 시달린 중년의 눈빛 흰색 물감에 퐁 담갔다 꺼낸 것처럼 꼬리 끝만 하얀 길고양이를 만났습니다. 강한 아이라인 속에 금빛 눈동자가 번뜩이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입니다. 먹이를 찾다 저와 눈이 딱 마주친 고양이의 눈에 경계심이 가득합니다. 세상 물정 다 알아버린 중년의 눈빛. 저 고양이도 어느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우리 고등어, 아이라인도 참 예쁘다"는 칭찬에 내심 우쭐대며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 위에서의 거친 삶은 고양이의 얼굴을 세파에 찌든 아저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길고양이는 경계심을 풀지 못할 때 낮은 포복으로 이동합니다. 잔뜩 수그린 상체와 힘껏 모아쥔 앞발에는 금방이라도 달아날 수 있도록 발가락 하나하나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이 꼭, 주눅들어 어깨 펴지 못하고 걷는 아저씨 같습니다.. 2010. 5. 31.
고양이 입양과 연애결혼의 공통점 스밀라가 우리집 식구가 되기 전에, 만약 나의 첫 고양이를 선택한다면 어떤 고양이일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예쁜 고양이는 많지만, 누구나 바라던 이상형은 있는 거잖아요. 다른 집의 고양이들을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생각한 이상형이 있다면 '분홍 입술에 분홍 발바닥을 가진 고양이였으면...' 하는 거였습니다. 특히 웃는 것처럼 분홍색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고 잠든 노랑둥이들 사진은 코피가 날 만큼 예뻐 보였죠. 딸기젤리 같은 앙증맞은 발바닥은 또 어떻구요. 그런데 인생이 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저의 첫 고양이는 까만 입술, 까만 발바닥을 가진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스밀라가 다크서클 낀 눈을 부릅뜨고 한쪽 입술을 일그러뜨린 채 저를 볼 때면, 그 얼굴이 왜 그리 귀여워 보이는지. 제일 .. 2010. 5. 30.
쓰다듬어 달라는 '고양이 침묵시위' 가끔 스밀라가 뒤에서 폴짝 뛰어서 책상 위로 올라오곤 합니다. 저는 주로 컴퓨터책상에 앉아서 일하지만 왼편에 식탁을 개조해 만든 책상을 두고 자료를 보는 용도로 쓰는데, 스밀라가 즐겨 앉는 곳도 이곳입니다. 평소에 출입문을 등지고 일하는데다가, 스밀라는 워낙 살금살금 움직이는터라 기척도 내지 않아서, 집중해서 일하다 보면 갑작스런 스밀라의 습격에 화들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날도 책상에 뭔가 올려져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털썩 주저앉아 엉덩이를 동그랗게 해 가지고 식빵을 굽습니다. "내가 할 일 없이 여기 올라온 건 아닐 텐데?" 하는 눈초리로 저를 빤히 올려다봅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인지... 눈동자를 쏟아질 듯 크게 뜨고, 침묵시위를 합니다. 우엥우엥 졸라댈 때보다, 말없이 응시.. 2010. 5. 29.
[폴라로이드 고양이] 003. 고양이 같은 친구 맨몸으로 차가운 바다에 내던져진 것처럼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 숨쉴 수 없을 만큼 힘겨운 날, 고양이처럼 말없이 다가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와 많이 다른 사람, 때론 '쟤 참 이상하다' 여겼던 사람, 내가 울적할 때마다 썰렁한 농담 시리즈를 이것저것 주워섬기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면 드디어 웃겼다며 뿌듯해하는 사람. 마음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일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 더 이상 일어나 싸우기가 힘들어서 차라리 그대로 잠들어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때도, 묵묵히 어깨 두들기며 위로해주는 사람. 슬픔의 무게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눠지는 사람, 함께 있는 순간의 침묵을 불편히 여기지 않고 즐.. 2010.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