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 비난하기'가 무슨 유행처럼 된 듯하다. 20대는 취업난에 몰려 사회참여에 대한 관심도 없고, 제 앞가림만 생각해 오히려 노인층보다도 더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이 제 앞가림을 우선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20대가 목숨 걸고 '생존'에 전념해야하는 현실은 왜 생겨난 것인지, 그렇다면 이 시궁창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꿔나갸야할지에 대해 조망하는 시각이 필요할 텐데, 나라에서는 영양가 없는 인턴사원제와 비정규직 기간연장이나 내세우고 있으니 갑갑한 노릇이다.
허지웅의《대한민국 표류기》는 어느 '보통청년'이 20대를 살아낸 기록이다. 블로그(ozzyz.egloos.com)에 연재된 글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책은, 배에 구멍을 뚫어야만 누울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기둥이 방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15만원짜리 고시원 방 이야기로 시작한다. 가진 것 없는 20대가 독립하면서 처음 얻는 주거공간은 대개 고시원이나 자취방 한 구석이기 일쑤다.
대개 표류기는 고생담을 강조하며 눈물샘을 자극하는 식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그 고단함이 비루하지 않게 전달되는 건, 허지웅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거리감은 때론 엉뚱하거나 시니컬한 유머로 등장하고, 때론 담담한 고백으로 표현된다. 그 시절의 이야기가 단지 흘러간 고생담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아직도 그의 표류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고시원에서 반지하 전세집으로 거처가 바뀌었지만, 고단한 삶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런 고단함은 20대를 지나 30대가 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 없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유보하며 인생을 좀먹듯 늙어가는 대신, 허지웅은 '덜 소유하여 행복해지기'를 선택한다. 제 몸 하나 더 잘 살려고 바둥댈 힘을 아껴, 세상에 좀 더 관심을 돌리고 참여하는 게 세상을 바꾸는 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인처럼 '무욕'과 '무소유'를 설파하진 않는다. 나열된 에피소드들을 보면 오히려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촛불시위에 나가 전경들에게 흠씬 맞고는 '난 간지남인데..'하고 되뇌며 옷매무새를 고치고 꽁지머리를 묶었던 고무줄을 찾는 모습은 글쓴이의 자기현시욕을 민망할만큼 솔직하게 보여준다. 다만 그 욕망은 자기 자신만을 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여느 '보통청년'이 삶의 목표로 삼는 '상류사회를 향한 치열함'과는 다른 종류의 치열함이란 느낌이다.
20대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참아야 행복해질까?
허지웅의 말투는 직설적이지만, 툭툭 명쾌하게 끊어쓰는 글맛이 좋아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가끔 자의식이 과하다 싶은 부분도 있지만 아마 그런 자의식이 그를 지금껏 쓰러지지 않게 지켜준 힘이 아닐까 싶다.
블로그에 있는 글을 굳이 사서 보아야 하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 사람의 정신이 ‘책’이라는 물질로 묶여 나온 모습이 좋다. 한 가지, 저자의 직업이 영화기자다 보니 영화 이야기는 빼기가 애매했겠지만, 이번 책에는 실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조금 더 아껴두었다가, 다른 영화 이야기와 묶어내면 어땠을까 싶다. 후반부의 영화 이야기 때문에 책이 다소 산만해 보인다는 점은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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