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고양이로 사는 집고양이와 길고양이가 한밤중에 만났습니다. 집고양이는

"너 황소? 나 최영의야!" 하고 대사를 치는 송강호의 기세로 뚜벅뚜벅 걸어옵니다.

아직 어린 노랑둥이 길고양이는 뒷모습만 보여서 얼굴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긴장과 호기심이 교차하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집고양이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도망은 가지 않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는지 꼬리가 너구리 꼬리처럼

두껍고 크게 부풀어올랐습니다. 그 사이에 집고양이는 어느새 코앞까지 뚜벅뚜벅

다가와 있습니다. 혹시 싸움이라도 한 판 벌이려는 걸까요. 궁금합니다.


그런데 집고양이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귀를 납작하게 내리고

눈매를 반달눈으로 뜨고는, 뭔가 설득하는 듯한 표정으로 어린 길고양이와

무언의 대화를 나눕니다. 나를 따라오면 맛있는 밥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영역 다툼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진 뭔가를 자랑도 하고 싶고, 나누기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어쩐지 묘하게 설득력 있는 표정에 넘어간 길고양이는 쭐레쭐레 

집고양이의 뒤를 따릅니다. 아직 어린 노랑둥이가 혼이나 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저기로 따라가면 뭔가 맛있는 거라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낯선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호감만 있다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어쩌면 남에게 빼앗길 

영역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에, 집고양이는 길고양이에게 조금 더 너그러울 수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타박타박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른쪽 길도, 왼쪽 길도 색깔만 다를 뿐 똑같아보여서

무심코 발길을 오른쪽 길로 돌려 봅니다.

 
오른쪽 길로 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왼쪽 길은 어떨까?'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쩐지 가보지 못한 왼쪽 길에는 더 재미난 삶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관성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대개 가던 방향대로 가게 됩니다.

한번 내린 결정을 바꾸기도 그렇고, 되돌아가자면 다리도 아플 테고

지금까지 걸은 거리를 생각하면, 맨 처음 갈림길로 다시 가긴 귀찮거든요.



그러나 호기심도 모험심도 다 수그러들고, 돌아가기엔 너무 오랜 시간을

길에서 허비한 후에야, 가보지 못한 길을 생각하며 쓰러져 후회합니다.

'그때 그 길로 다시 가야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너무 늦었겠지.'

 
그래도 고양이에게 '좌절금지'라고 말해주고 싶은 건,
 
이쪽 길이 아니다 생각될 때, 그때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나오면 된다는 것. 아니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있다는 증거이니 다행이라는 것.


익숙하지 않은 길이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가보려는 사람,

원하던 길이 아니라 생각될 때 용기 내어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

그런 모든 사람을 응원하게 되는 12월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괴로워하는 대신,

후회없는 시간으로 채워나갈 내년이 머지 않았음을 기뻐하는

그런 연말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둥글게 움츠린 고양이의 등짝이 어쩐지 추워보이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단풍이라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의 희미한 붉은색으로만 느낄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한때 붉게 물들었다

잿빛을 띤 분홍색으로 변하는 단풍잎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있는 힘껏 불태우고

아무 미련 없이 이 세상과 작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머물렀던 시간을 '소풍'이라고 표현했던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소풍 가던 날의 들뜬 마음을 접고 가만히 이 땅으로 내려앉은 낙엽들이

마른 땅에 따스한 융단을 만들어줍니다. 그 융단을 즐거이 이용해 주는 것은 

동네 고양이입니다. 노란 치즈 얼룩무늬가 예쁜, 통통한 겨울 고양이입니다.
 


등산객의 인기척이 들려도 한번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담담한 표정으로 단풍잎 융단을

만끽합니다. 융단 위에서의 시간은 고양이에겐 빼앗기고 싶지 않은 평화로운 순간인가

봅니다. 가만히 식빵을 굽고 있을 뿐입니다. 꼭 불판 위에 놓인 치즈 식빵 같다고나 할까요. 
 
이제 두어 살쯤 되었을까요? 달아나지도 않고 저와 가만히 눈 맞추는 모습이 당당합니다.

단풍잎 융단 아래 노란 고양이, 은행잎처럼 잘 어울립니다.


올해는 단풍 구경을 해볼 겨를도 없이, 짧은 가을이 지나가버렸네요. 고양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올 겨울은 고양이들에게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길고양이는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슬며시 나오곤 합니다.

사진 속 고양이가 숨어있다 슬며시 걸어나온 저 곳도, 너비는

10cm가 채 못 되어 보이지만 고양이는 스르르 빠져나왔습니다. 

보통 머리뼈만 통과할 수 있는 너비만 확보되면 별 어려움

없이 나올 수 있다고 하는데, 수염으로 통과할 곳의 폭을 재어

가능하다 싶으면 그리로 나오는 거죠.



아무도 없겠거니 하고 슬며시 빈 틈을 찾아 나오다가, 그만

저와 딱 마주치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고양이. 금방이라도

직립보행을 할 것 같은 자세여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인기척에 놀란 것 같기도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난간에 두 발을 딛고 오르려다 움찔 하는 모습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땡땡이치고 몰래 학교 담을 넘다가 담임선생님께 들킨 학생처럼

긴장해 있습니다. 길고양이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길고양이를 움츠러들게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현행범 아닌

현행범의 마음이 되어, 그 자리에 얼어붙은 고양이를 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 이번  글부터는 사진에 넣는 낙관의 모양을 바꿔봤습니다.

손글씨라서 가독성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예전 것은

너무 딱딱한
감이 있어 바꿔봤는데 보기엔 어떠신가요?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지친 마음을 쉬러 갔던 북유럽 고양이 여행에서 만난 고양이들 중에

아직 소개하지 못한 고양이 가족이 있습니다. 식객 고양이 캅텐인데요,

스웨덴어로 '캡틴'을 뜻한다고 합니다. 캅텐은 집고양이가 아니지만

아저씨 댁에서 매일같이 밥을 먹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출출하면 슬그머니 현관 난간에 둔 밥을 먹고, 집고양이와
 
놀다가 가곤 합니다. 한국에서도 반 정착 형태로 살아가는 길고양이가

있는데, 캅텐도 그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밥은 얻어먹지만, 고양이의 자존심은 버리지 않는다."

당당한 자세로 식객 고양이의 자존심을 이야기합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캅텐을 위한 밥그릇과 물그릇은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주변이 초록 들판과 커다란 나무로 가득하고, 인가가 서로 떨어져 있어

사람들 눈에 밟힐 염려도 없는 시골 마을은, 식객 고양이 캅텐에게

더없이 좋은 삶터가 되어줍니다. 가끔은 어린 고양이들에게 나무타기

시범을 보이기도 하는군요. 


고양이 중에서도 검은 고양이에게 마음이 끌리는 건, 흑표범을 닮아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나무 위로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캅텐의 모습이 듬직하고 멋집니다. 고양이처럼 날랜 몸으로

저도 따라서 나무를 타고 싶어집니다.


끔 멋모르는 어린 고양이가 캅텐의 등 뒤를 급습하기도 하지만, 

'캡틴'이라는 뜻의 이름이 달리 붙은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노련한 솜씨로

순식간에 상황을 종료하고 포효하는 캅텐입니다.



흑표범 같은 얼굴로 포효하지만, 군살이 붙어 전성기는 살짝 지난 중년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성숙한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의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은

왠지 모를 충만함을 안겨주네요. 식객 고양이 캅텐,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저씨네 집을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