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이드북 작가 김동운씨는 요즘 아내의 모국인 일본으로 이주할 준비에 바쁘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면, 한국과 일본에서 번갈아 살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다. 그가 일본 이주를 준비하면서 가장 공들인 일의 하나는 반려견 쿠로를 데리고 비행기에 오르는 일이다. 한국에서 일본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쿠로가 비행기를 탈 자격을 얻기까지는 장장 8개월이 걸렸다.

반려견과 함께 외국 이주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건 비용과 시간이다. 일단 반려견의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칩 이식은 필수다. 또한 광견병 발생 국가인 한국에서 광견병 없는 일본에 반려견을 데려가려면, 한 달 간격으로 두 차례에 걸쳐 광견병 백신을 접종하고 검역기관에 혈액을 보내 항체 형성 여부를 검사해야 한다. 이 검사는 한국에서 할 수 없고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검역기관에서만 가능한데, 혈액검사비만 최소 50만원이다.

검사 후 항체가 확인된다 해도 바로 일본으로 떠날 수 없다. 채혈 시점으로부터 6개월 이상 한국에 머무르며 경과를 지켜본 뒤 이상이 없어야 비로소 일본 입국이 가능하다. 게다가 출국 40일 전까지 일본동물검역소에 수입예정 신고서를 보내야 한다.

검역 절차를 마친 개를 데리고 탈 항공사를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다. 국적기는 기내 탑승 가능한 반려견의 몸무게를 5㎏ 이내로 제한하고 있어, 김동운씨는 무게 제한이 없는 유나이티드 항공을 선택했다. 충무로 애견센터에서 ‘미니컵 강아지’인 줄 알고 속아서 산 쿠로가 6kg에 육박하는 성견으로 자랐기 때문. 단, 유나이티드 항공은 개와 함께 탈 수 있는 좌석이 3석뿐이라 일찌감치 예약해야 한다. 또한 사방으로 통풍이 잘되는 이동장에 넣어 데려가야만 탑승을 허가한다. 항공사마다 세부 조건이 다르므로 미리 알아보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단다.
 
 유학이나 이민은 어차피 장기적인 계획 아래 준비하므로, 이주 준비를 시작할 때 반려견을 데려갈 준비도 차근차근 병행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김동운씨의 생각이다. 그는 “반려동물의 마이크로칩 시술이 시급하다”고 설파했다. 그래야만 반려동물을 함부로 버릴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겠다는 약속은 결혼식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반려동물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야말로, 함께 사는 동안 소소한 기쁨을 주는 동물들에 대한 작은 보답일 것이다.


유나이티드항공 규격에 맞는 이동장에 쿠로를 태운 김동운 씨(왼쪽)와 부인 마키코 씨. 쿠로를 일본에 데려가기 위해 8개월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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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몸에서 가장 예쁜 곳을 꼽으라면 눈동자라고 말하겠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곳은 역시 입술이다. 만화 캐릭터처럼 선명한 ㅅ자 입술을 보노라면, 귀여워서 꺅꺅 소리를 지르고 만다. 살짝 입 꼬리를 올린 채 잠든 고양이 입술은 웃는 표정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

틈틈이 찍은 고양이 사진을 갈무리하다가, 나도 모르게 배실배실 웃는다. 변화무쌍한 고양이의 표정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어서다. 어찌 보면 단호해 보이고, 어떨 때는 심통 난 것 같고, 때로는 새침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표정들. 고양이가 뭔가 집중해서 바라볼 때, 망설이듯 살짝 벌린 입술은 금세라도 내게 말을 건넬 것만 같다. 입을 있는대로 힘껏 벌려 고양이 하품을 할 때면, 실은 웃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꼭 파안대소를 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만 따라 웃게 된다. ‘어쩜 저렇게 시원시원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표정을 지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스밀라의 호탕한 표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웃어본 적이 있었나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웃었던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이쯤 되면 “웃는 표정은 인간만 지을 수 있다던데?” 하고 지적할 사람도 있음직하다. 한데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면 그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감정을 감추지 않고 솔직히 드러내는 고양이 입술에는 인간 못지않은 다채로운 표정이 담겨 있다. 물론 과학의 힘으로는 그들의 표정을 식별하기 어렵겠지만, 함께 뒹굴며 살아온 세월의 힘을 빌리면 고양이 표정을 읽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스밀라의 웃는 얼굴에는 작은 결함이 있다. 고양이에게 발톱만큼 중요한 무기인 송곳니가 한 개 없기 때문이다. 입양되기 전 험한 거리 생활을 하다가 부러졌는지, 혹은 어딘가에서 빠졌는지 모르지만, 다시 자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를 상품 취급하는 동물가게에서라면 ‘하자 있는 고양이’로 분류되어 천덕꾸러기가 됐겠지만, 내겐 스밀라의 그런 모습도 소중하다. 그 결함이, 스밀라의 웃음을 특별하게 기억하도록 도와줄 테니까.

고양이가 곁에 없을 때, 내게 힘을 주는 고양이 웃음이 그리울 때면 (^ㅅ^) 이렇게 생긴 고양이 이모티콘을 그려 본다. 그럼 이모티콘 속에서 고양이 웃음의 활기찬 기운이 전해진다. 오늘 하루도 기운내서 씨익 웃어보자고, 이모티콘이 말을 건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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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 catsto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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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비수기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는 걸 깨닫고 새삼 놀랐다. 나는 언제나  떠나는 사람보다 머무르는 사람 쪽에 가까웠으니까. 사람들이 여행에서 기대하는 맛집 탐방이나 쇼핑도 관심이 없었고, 관광명소 앞에서 V자를 그리며 ‘나 여기 다녀왔소’ 하고 증명사진 찍는 건 더더욱 질색이었다.


게다가 모처럼 마음먹고 여행을 준비하려 해도,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가이드북을 사고, 약도를 인쇄하고, 인터넷 자료를 갈무리하고, 경험담을 읽다 지쳐서 여행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쉬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휴가가 주어져도 ‘세상에는 여행보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도 있는 법이지’ 하고 되뇌면서 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뒹굴뒹굴 놀곤 했다.


한데 날이 풀리고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갑자기 여행 병이 도지는 건 무슨 조화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싫었던 건 여행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의 여행이 아니었을까? 최단 시간에 여러 지역을 도장 찍듯 황급히 둘러보는 여행, 남들이 '여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봐야 한다'며 짜 준 코스를 그대로 답습하는 여행 말이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낮잠 자는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을 채워줄 ‘맞춤 여행 코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행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밥벌이 하는 틈틈이 그걸 다 준비하려다 보니 짐 싸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그렇게 만만찮은 여행 준비에 치를 떨면서도, 일년 중에 며칠은 동물을 찾아 떠나는 ‘이상한 여행자’로 지내고 싶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노는 야생동물도 매력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도시에서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동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한지 만나보고 싶다. 낯선 여행지에서 다음 장소까지 이동할 최단 루트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허둥지둥 걷는 대신, 동네 주민 산보하듯 느린 걸음으로 고양이가 있을 골목을 훑어나가면서.


물론 녀석들이 언제나 날 기다려주진 않을 테니,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한다 한들 여행지에서 언제나 그리워하던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불확실한 요소로 가득 찬 여행일수록 녀석들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더 커진다. 그게 바로 나만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에게, 여행이 주는 선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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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묵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구석구석 뜯어보면 성한 구석이 없다. 처음엔 황금빛이었다가 이젠 구릿빛으로 변한 손잡이는 헛돌기만 할 뿐 제대로 열리지 않고, 부엌 싱크대 서랍 레일이 망가져 툭 기울거나, 거실 천장의 형광등 커버가 느닷없이 추락하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겐 이렇게 낡은 집도 그저 새로워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내는 녀석이지만, 깨어 있을 때면 집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소일하느라 여념이 없다. 책꽂이 위로 폴짝 뛰어올라 꼭대기에 쌓인 먼지를 털고, 방문을 열겠다고 앞발로 문짝을 긁어 생채기를 남기면서.

가끔 스밀라가 문 앞에서 벅벅 긁는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나갈 때면,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문을 열고 드나드는 게 신기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냥 내버려두곤 했다. ‘저 녀석, 조그만 게 힘은 장사일세’ 하고 기특해하면서. 문짝 아래 사정없이 긁힌 자국을 제대로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루는 문 뒤에 숨어서 스밀라에게 장난감을 던져 슬슬 당기면서 유인하는 놀이를 하는데, 문짝 아래, 딱 고양이 키만한 높이에 어지럽게 긁힌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스밀라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마다 조금씩 생채기가 난 모양이다. 흰색 페인트 아래 숨어 있던 나무 속살이 다 드러날 지경이다. 스밀라와 함께 산 지도 2년이 다 되어 가니, 2년 동안 쌓인 세월의 흔적이 문짝에 새겨진 빗금으로 남은 셈이다.

긁힌 문을 보노라니 언제 이렇게 긁어 댔나 싶어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숫자를 셀 줄 모르지만, 스밀라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암호로 집 곳곳에 흔적을 남기면서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숫자가 없던 시절, 사람들이 나무나 뼈에 빗금을 그어 수를 헤아렸던 것처럼.

언젠가 문 뒤에 더이상 스밀라가 없을 때도, 문 아래 새겨진 빗금들을 보면 스밀라가 떠오르겠지. 좋아하는 사람이 땅콩 초코볼을 즐겨 먹는다는 말을 듣고선, 땅콩 초코볼만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처럼, 낡은 집의 문짝을 볼 때마다 문 아래를 유심히 보게 되겠지. 만약 언젠가 내 집을 갖게 된다면, 문짝 아래 고양이 전용 출입문을 뚫고 싶다. 힘들게 문을 긁지 않아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반평생 세입자로 살아온 마당에, 집 장만은 요원한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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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박 긁어놓은 문 뒤로 스밀라가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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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고양이 학대 동영상 한 편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샴고양이를 싱크대에 목매달거나 때리며 괴롭히는 내용이었다. 숨이 막혀 침을 질질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고양이를 본 사람들은 분노했고, “저 인간을 응징해야 한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한국 네티즌의 수사력은 놀라웠다. 이들의 집요한 추적과 제보에 힘입어 올해 3월 초 범인을 검거했으니 말이다. 한데 막상 잡고 보니 18살 청소년이어서, 결국 기소유예 처리되었다 한다.
사건의 전말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범인 검거는 통쾌했지만, 미성년자라서 죗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물 학대는 ‘재미’가 아니라 ‘죄’라는 것을 일깨우려면, 하다못해 동물단체 봉사 판결이라도 내렸어야 하지 않을까? 범인은 “죄가 되는 줄 모르고 생각 없이 한 일”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생명을 위협할 만큼 누군가를 학대했다면, 그 대상이 동물이어도 죄가 되는 게 당연하다.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과 공포를 느끼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동영상을 찍고 편집해 포털사이트나 동영상 공유사이트에 올린다. 자신이 만든 동영상이 화제가 될 때, 주목받고 싶은 인간 심리는 짜릿하게 충족된다. 그러나 문제는 재미를 위해 누군가의 고통이 개입될 때 일어난다. 언젠가 한 포털사이트에서 ‘고양이 체력장’이란 동영상을 본 뒤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빨랫줄을 앞발로 붙잡은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뒷발을 걸치며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찍었는데, “완전 실미도야, 실미도.” 하고 시시덕거리는 촬영자의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고양이는 공포에 질려 내내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도.

고양이를 목 조르고 때린 짓에 비하면 이건 학대도 아니라고, 그냥 재미로 한번 찍어본 건데 어떠냐고 누군가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물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만이 학대인 건 아니다. 이런 동영상이 위험하고 불쾌한 건, 재미를 위해서라면 동물을 아무렇게나 이용해도 된다는 통념을 대중에게 전파하기 때문이다. 몸에 박스 테이프를 붙이고 비틀비틀 게걸음을 걷는 고양이 동영상을 보며 웃거나, 햄스터를 몸에 던졌을 때 질겁하는 연예인을 보며 박장대소할 때, 이를 보는 사람 역시 동물 학대의 ‘소극적인 공범자’가 된다는 걸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 catsto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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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때리고 굶겨야만 학대일까? 한여름 햇볕에 달궈진 트럭에 쇠사슬로 묶인 코카스파니엘을 보며 '소극적 학대'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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