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귀 끝부터 꼬리까지 흐르는 매끄러운 곡선은 그 자체만으로 유혹적이다. 도예가 김여옥 씨는 고양이 몸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선에 반해 고양이의 모습을 흙으로 빚기 시작했다. 유혹을 상징하는 화려한 양귀비꽃을 곁들여서. 그래서 그의 작업실 이름도 파피캣(poppycat)이다.

종로구 계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김여옥 씨의 전시를 찾아가자, 한옥을 개조해 만든 아담한 전시 공간 안팎으로 검은 고양이들이 와글와글하다. 기와를 얹은 담벼락에 몸을 누이고 낮잠 자는 녀석, 나비를 잡느라 까치발로 뛰는 녀석, 창 너머를 고요히 바라보는 녀석. 고양이 털빛은 하나같이 검은 듯 푸르고, 잿빛인가 싶다가도 은빛을 띤다. 따스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도는, 딱 잘라 무엇이라 규정하기 힘든 색이다.  

잿빛인 듯, 은빛인 듯 은은한 러시안 블루
“고양이 작업의 첫 모델이 된 아이가 러시안 블루 고양이였어요. 처음 봤을 때 몸의 선이나 빛깔이 너무 예쁜 거예요. 감자떡 빛깔 아시죠? 딱 그 색이었어요. 그래서 고양이 이름도 감자떡을 줄여서 ‘감자’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감자와 함께 살기 전에는 얼룩무늬 고양이 ‘땅콩’과 ‘오이’를 키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를 모델로 작품을 만들 생각은 못했다. 그러나 5년 전쯤 집에 들인 셋째 고양이 감자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소중한 모델이 됐다.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빚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대학원 재학 시절 그는 라꾸(raku)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가마에서 기물을 구워 약 1000℃가 될락 말락 할 무렵, 뜨거운 상태의 기물에 톱밥을 뿌리고 연기가 스며들게 하는데, 이런 과정을 ‘연(煙)을 먹인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와도 ‘꺼먹이 소성’이라고 해서 라꾸와 비슷하게 연을 먹이는 건데요. 라꾸와 꺼먹이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연을 완전히 흡착시키는 방식이에요. 그러려면 기물의 기공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뜨거울 때 꺼내야 해서 연기가 굉장히 많이 나요. 그래서 서울 시내에서, 그것도 지하 작업실에서 라꾸 작업을 하기는 어렵죠. 대학원 졸업 후에 라꾸와 비슷한 느낌을 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온 소성이 가능하면서도 원하는 색을 낼 수 있는 산화물을 찾았어요.”

 

이렇게 신비로운 빛깔의 검은 고양이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태어날까. 상수동에 위치한 작업실로 자리를 옮긴 김여옥 씨가 시범을 보인다. 습기가 마르지 않게 비닐봉투에 담아둔 흙을 돌판 위에 펼쳐 여러 번 치대고 밀대로 밀어 일정한 두께로 편 다음, 모눈종이에 그린 기본 도안을 흙반죽 위에 얹고 고양이의 실루엣대로 윤곽을 도려내어 손으로 가장자리를 매끈하게 다듬는다. 고양이의 근육과 표정을 생각하며 조형하는 이 과정을 작가는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가마에 굽는 소성 작업이 남아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큰 가마와 작은 가마가 각각 하나씩 있다. 큰 가마에는 본 작품을 굽고, 작은 가마는 ‘시편(試片) 가마’라고 해서 구워진 흙의 빛깔이나 유약 색을 시험할 때 쓴다. 작업실 개수대 위로 나란히 걸린 알록달록한 시편들은 다양한 유약 시험의 결과물이다. 그는 기물 원형에 금이 가거나 휘어지지 않는 한, 10번이건 20번이건 유약을 다시 칠해서 원하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굽는다고 한다. 유약이 겹쳐지면서 밑에서 색이 올라오는 효과 때문에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묵직한 뚜껑을 위로 들어 올리니, 우물처럼 깊고 넓은 가마 속에 살구색 피부의 고양이가 한 쌍 잠들어 있다. 초벌구이여서 아직 색이 입혀지지 않은 상태다. 반죽 상태의 거무죽죽한 흙이 구워지면 이렇게 산뜻한 빛깔로 변한다.

언제나 꿈꾸는 고양이
김여옥 씨가 만든 고양이에게서는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뒷모습이거나, 정면에서 본 모습이 있어도 꿈꾸는 듯 눈을 감고 있다. 그가 고양이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눈동자를 묘사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눈이래요. 반짝이는 고양이의 눈을 보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사악해 보인다고까지 말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친근감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고양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바람 냄새를 맡을 때의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럴 때의 고양이는 바람 속에서 뭔가 정보를 얻는 것 같기도 하고, 사색하는 느낌도 들잖아요. 굳이 눈을 표현하지 않아도 고양이의 몸 자체가 워낙 선이 아름다워서, 그런 실루엣을 강조한 작품을 만들었죠.”
 
다섯 마리 고양이가 가르쳐 준 가족의 의미
김여옥 씨는 땅콩, 감자, 오이를 떠나보내고 현재 고구마, 누룽지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작품의 모델로까지 삼게 된 작가는,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살았던 다섯 마리 고양이들이 전해준 깨우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시어머니가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을 담으라며 선물해준 ‘육묘앨범’에는, 그와 함께 부대끼던 고양이들의 성장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뭉클하다. 김여옥 씨는 고양이에게서 빠진 젖니까지도 고이 앨범 속에 붙여두었다.  
  
“책임져야 할 대상이 생길 때 사람들은 좀 더 힘을 내서 살잖아요. 그전까지는 고양이에게 짜증도 내고 화낼 때도 있었는데, 새로운 아이를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후회도 많았고 많은 것을 배웠어요. 오이, 땅콩, 감자를 보내고 나서 저도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내가 애정을 쏟고 관심을 주는 만큼, 그들도 그만큼 내게 사랑을 주고 웃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았어요.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게 가족이잖아요. 가족은 인연인데, 그런 가족을 만들어준 인연이 참 소중하죠.”

고양이에게 날개를, 고양이에게 자유를
흙으로 고양이의 실루엣을 빚어내는 작업을 계속하는 동안, 작품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양이 홀로 있던 작품에 ‘창’이 추가된 것이다. 창밖의 세계를 그리운 듯 바라보는 고양이를 만드는 작가에게, 창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선인 동시에 다른 세상과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과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네모난 창 하나에 고스란히 담긴다.

또 다른 변화는 먼 곳을 그리운 듯 바라보기만 하던 고양이의 등에 날개가 솟아났다는 점이다. 꿈꾸는 고양이의 몸에서 둥실 솟아나는 상상 속의 날개는, 깃털이 아닌 양귀비 꽃잎으로 만들어진 금빛 날개다.  

“양귀비도 야생화이기 때문에 길고양이 같은 야생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면도 있고요. 또 호기심 많은 고양이에게 날개가 생기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나 싶기도 해요. 가고 싶은 곳도 자유롭게 갈 수 있고, 위험하면 빨리 숨을 수도 있고. 그런 고양이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요.”



도예가 조은정의 작업실은 2곳이다. 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작업실이 2곳이라니. 한데 그가 작업을 두 군데서 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여느 도예가들과 달리, 조은정의 작업실에는 가마가 없다. 대신 집에 가마를 뒀다. 지금 쓰는 작업실 공간이 협소한 편이라, 공방 겸 작업실로 쓰는 곳에선 수강생을 가르치거나 초벌구이한 기물에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하고, 가마에 굽는 마무리 작업만 집으로 가져가서 한다. 가마에 불을 때지 않을 때면, 고양이들이 전망대 삼아 창밖을 보는 캣타워로도 쓴다. 가마를 보호하는 철제 앵글에 마끈을 감아 발톱긁개를 만든 모습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도예가의 작업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조은정은 고양이를 키울 수 없던 10대 시절 때부터 차근차근 ‘고양이 가족계획’을 세웠다.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검은 줄무늬 고양이, 노란 고양이. 이렇게 4마리로 1세대 구성이 끝나면 5~6년 터울을 두고 2세대 고양이를 그만큼 데려올 계획이었다. 나이 든 고양이들이 언젠가 떠나도 쓸쓸하지 않게, 마음의 보험 같은 의미로. 하지만 가족계획이란 게 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1997년부터 한 마리씩 데려온 고양이가 11마리로 늘었다.

어떤 이는 조각보를 만들거나 십자수를 놓으면서 마음을 비운다는데, 그는 고양이를 돌보며 시름을 잊은 모양이다. 1997년 첫 고양이 양양을 들일 무렵이 그에게는 가장 힘겨운 때였다. IMF로 아버지 사업이 잘못되면서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고, 집도 없이 언니와 단둘이 서울에 남겨졌다. 일주일을 남의 집 신세를 지다 간신히 머물 곳을 구했지만, 살 이유를 잃은 사람처럼 멍하기만 했다. 그 무렵 데려온 고양이가 양양이다.

“언니 친구 아버지가 대문 옆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몰래 꺼내오셨대요. 가족이 다 반대하는데, 마침 딸 친구 동생인 제가 고양이를 좋아하니 이리로 보낸 거죠. 그렇게 양양과 처음 만났어요. 근데 고양이가 생기니까 밥이랑 모래를 사야 되잖아요. 그제야 회사에 나가고 일을 하는 의미가 생겼어요.” 

원하는 색깔과 무늬별로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가족계획도, 양양의 입양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1998년 2월 모란장에서 사온 둘째 고양이 메이, 역시 모란장 약고양이 장에서 “산 채로는 안 판다”는 걸 우겨서 사온 셋째 나오미, 하이텔 고양이 소모임의 입양란 담당자로 있던 시절 인연이 닿아 입양한 넷째 야로까지 4마리로 1세대 구성을 마치려던 무렵, 예기치 않은 업둥이가 들어왔다. 젖소무늬 고양이 잭, 일명 재구다.

철저히 가족계획에 입각해 고양이를 들였던 만큼, 예정에 없던 잭은 구조 후에 바로 입양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검진해보니 시신경이 거의 망가졌다는 말에 결국 다섯째로 떠안았다. 잭은 녹내장이 심해져 1년도 지나기 전에 오른쪽 안구를 적출했고, 시력이 없던 왼쪽 눈도 10살 무렵 적출 수술을 받았다.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잭은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사고를 겪거나 장애가 있는 고양이라고 해서 모두 트라우마에 시달리진 않아요. 잭은 스스로를 불쌍하다 여기거나, 앞을 못 본다고 괴로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정도 큰일도 겪었는데, 그보다 가벼운 일에는 타격을 받지 않아’ 하는 고양이로 자라줬거든요.” 

양양부터 잭까지 5마리가 1세대 고양이였다면, 6년의 터울을 두고 얻은 2세대 고양이는 6마리다. 나오미가 6살 때 낳아준 동고비와 싱그람, 들고양이였던 노랑둥이 소목과 턱시도 무늬의 ‘개냥이’ 브즈, 여신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호리호리한 2대 야호,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동안을 자랑하는 오동이까지. 가족에게서 독립한 지 오래지만, 집에 들어서면 반겨주는 고양이 가족 덕분에 쓸쓸하지 않다.  
 

그가 만든 작품 중에는 화려한 채색 작품도 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검은 고양이 그림이다. 어둠 속에 고양이 실루엣만 보일 때도 함께 사는 사람은 어떤 고양이인지 단번에 알아차리는 것처럼, 검은색만으로 11마리 고양이의 기억을 풀어낸 모습이 흥미로웠다. 유독 검은 고양이 그림이 많은 것을 보면, 까만 얼굴 한가운데 장난스런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는 고양이는 작가의 분신 같기도 하다. 호리호리한 몸에 강인함을 숨긴 흑표범 여인, 또는 사람의 모습을 한 대장 고양이-조은정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느낌이 그랬으니까.

고양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땐, 동그라미 두어 개로 머리와 몸통 위치를 표시할 뿐 밑그림 없이 즉흥적인 붓놀림으로 완성한다. 언뜻 보아 수묵화와 흡사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먹의 농담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한 붓에 그려내는 수묵화와 달리, 초벌구이를 한 기물은 습기를 잘 빨아들여 붓의 움직임이 뚝뚝 끊기기 일쑤다. 때문에 속도감 있게 그려내기도 어렵고, 채색에 쓰는 안료도 주성분이 돌가루인지라 일반 물감처럼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느 붓과는 달리, 그림을 그릴 때 단청 붓을 사용한다. 혹시 잘못 그렸을 때는 스크래퍼로 살살 긁어내면 된다.


한데 그가 처음부터 도예 공방을 연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가 들어가는 물건에 관심이 많았고, 취미로 시작한 만들기가 어느새 직업이 된 것이다. 2000년경엔 고양이 쇼핑몰을 열고 쇼핑몰 창고 한쪽에 고양이 카페도 운영했지만, 당시만 해도 고양이 카페란 개념이 생소해 유지가 어려웠고, 쇼핑몰과 카페를 함께 닫아야 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도예 작업이었다.

“카페 손님 중에 혜화동에서 도예 작업실을 하는 분이 계셨어요. 저야 늘 이런저런 고양이 물건을 만들고 싶어 했으니까, 고양이 밥그릇을 만들고 싶어서 공방에 갔죠. 근데 흙으로 빚어 만드는 작업은 당일엔 안 된다고,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는 거예요. 도자 안료가 참 재밌더라고요. 어린애들 쓰는 12색 크레파스로 정물화 그리는 기분이었어요.” 
 

생활자기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인 그는 한동안 사용료를 내고 혜화동 작업실을 함께 쓰다가 2005년 독립해 공방 ‘고양이 요람’을 열었다. 몇 차례 작업실을 이전한 끝에, 최근 새로 옮긴 작업실에서는 그릇에 그림도 그리고, 고양이 그림이 담긴 가방 등 생활용품도 만든다. ‘야호메이’라는 브랜드 네임으로 꾸준히 고양이 아트상품을 만들 생각이다. 이 브랜드명은 그가 키웠던 고양이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PC통신 시절부터 온라인상에서 써온 야호메이, 혹은 메이라는 닉네임이 이젠 본명보다 더 친숙하다.  
 
“제가 만드는 게 생활자기잖아요. 그러니 작품으로 인정을 못 받을 때가 많아요. 아무리 멋지게 만들어도 머그컵 하나에 3, 4만원 쓰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다고 가격을 비싸게 붙이지도 못하죠. 너무너무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는 그 마음을 알거든요. 나부터 ‘됐어, 살 수 없으면 만들지 뭐’ 하는 마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건데, 비싸게 받을 수 없더라고요.”

고양이와 관련된 작업이라면 뭐든 신나게 몰입하는 그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업이 있다. 아는 사람에게서 고양이 유골함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다. 오래 전 고양이 모임에서 친해졌다가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가 갑자기 연락해올 때면, 혹시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온 것도 벌써 13년째니, 그 무렵 알게 된 친구들의 고양이가 노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둘 세상을 뜨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인지 모른다.


문득 듣는 ‘아는 고양이’의 부고는, 조은정의 1세대 고양이들 역시 점점 나이 먹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 친구의 고양이를 위한 유골함을 만들면서, 조은정도 언젠가 고양이들에게 찾아올 죽음을 수없이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만성 신부전으로 앓아온 양양이 2009년 6월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같은 해 12월 재구가 양양 곁으로 갔을 때도 그들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고로 고양이가 죽거나, 고양이를 잃어버려서 생이별한 친구도 있거든요. 그때 느낄 감정이 어떤 건지 아니까…. 차라리 나이 먹어서 노환으로 죽은 게 어쩌면 축복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슬픔 속에서도 기쁨이 있다면 그런 거겠죠. 그거라도 있어야지, 그것도 없으면 어떻게 버텨요.”

태어날 때 함께하진 못했더라도, 마지막 순간은 최선을 다해 함께했다는 확신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만큼이나, 죽음을 애도하고 극복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사별은 누구에게나 깊은 슬픔을 남기지만, 함께 사는 고양이의 죽음이란 그에게 ‘상실’보다 ‘완성’에 가까운 의미가 아닐까 싶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삶의 정점”이라 했던 로버트 풀검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목사였던 로버트 풀검은 <내 인생의 여섯 가지 신조>라는 글에서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웃음이며,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나는 믿는다”고 썼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믿는다.



‘고양이 삼촌’ 유재선의 작업실은 내가 꿈꾸던 이상향과 꼭 닮았다. 한적한 주택가라 소음에 시달릴 염려가 없고, 정오께 작업실로 출근해 셔터를 올리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곤 밥을 졸라대는 길고양이까지 있으니, 고양이 작가의 작업실로는 더 바랄 게 없다. 여섯 살배기 고양이 제이와 단둘이 사는 작가는 고즈넉한 작업실 한켠에서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 쿠션도 만든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생업으로 삼고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를 일러스트레이터로만 규정하기엔 좀 서운하다. 그는 유리창에 마커로 그림을 그리는 윈도우 페인팅 작가로도 유명하고, 빈티지 인형을 파는 인형가게 사장님이자, 그림동화책과 잡지를 수집하는 고서점 주인이기도 하다. 그간의 작품을 모은 포트폴리오 격인 《고양이 삼촌》(레프트로드)도 펴냈다. 하드보드 표지를 손으로 일일이 붙여 만든 수작업 소량생산 책이다. 그렇듯 다양한 작가의 관심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 일과 재미가 하나로 된 공간이 바로 유재선의 작업실이다. 

유재선은 작업실을 반으로 나눠, 수집품 전시 공간 겸 작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통유리창 너머로 언뜻 보이는 방이 전시 공간 쪽이다. 손때 묻은 빈티지 인형, 장정이 예쁜 그림책, 오래된 영화 속에서 슬쩍 꺼내온 듯한 빈티지 소품들…. 그동안 정성껏 모아온 오래된 보물들이 가득하다. 처음 작업실을 열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웬 총각이 인형 가게를 차렸나’ 했단다. 심지어 골동품 가게인가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남들 눈에는 유행 지난 구닥다리로 보이거나 특이한 물건으로 치부될지라도, 그에게 소중한 이유가 있다. 그가 만드는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작업하기 전에는 항상 모아뒀던 옛날 잡지를 펼쳐본다. 특히 《라이프》지에는 지금 시각으로 봐도 신선한 광고들이 많아서 좋아한다. 몇 십 년 전에 나온 그림책이랑 동화책도 자주 본다. 오래된 것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유재선이 좋아하는 고양이에 빈티지 인형의 요소가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고양이 쿠션이다. 고양이를 의인화한 복고풍 캐릭터를 그리고, 그들의 손에 빈티지 인형과 소품을 쥐어줬다. 오뚜기 인형을 안은 고양이 소녀, 복고풍 뿔테안경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1970년대 올드스쿨 스타일의 고양이 소년이 하나둘 만들어졌다.


고양이 쿠션은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스캔을 받아서 타블렛으로 작업하고, 필름을 떠서 실크스크린 판을 만든 다음 수작업으로 찍어낸다. 타블렛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뿐 아니라,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천을 재단한 다음 쿠션 솜을 채워 넣는 작업까지 이 방에서 모두 이뤄진다. 일손이 바쁠 때면, 가끔은 누나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고양이 쿠션은 1차 10종 세트로 완성됐다. 앞으로도 새로운 버전의 고양이 쿠션을 꾸준히 만들어갈 예정이다.


작업대 앞에 놓인 붓과 그림 도구들 사이로 함께 사는 고양이 제이의 그림이 보인다. 작가 이름인 ‘재선’에서 영문 맨 첫 글자인 J를 따서 지어준 이름이다. 대학교 4학년 졸업 시즌인 2003년, 수원에서 자취하면서 10평짜리 오피스텔에 살던 무렵 처음 제이를 데려왔다.

“제이가 처음 저에게 왔을 때는 3개월 된 아기 고양이였어요. 졸업 시즌에 맞춰서 서울로 오려고 방을 내놓았는데, 제가 없을 때 복덕방에서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려고 문을 열었다가 고양이를 보고 놀란 거죠. 고양이가 있어서 집이 싫다는 사람, 문 열어보고 무섭다며 바로 나간 사람도 있었대요. 복덕방에서 ‘고양이 때문에 집이 안 나가는데 어쩔 거냐’고 저희 집에 전화하는 바람에, 고양이 버리라고 난리가 났어요. 지금은 이사를 자주 안하니까 그럴 일은 없는데, 그때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 때문에 집에서 반대가 컸죠. ”


한번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니, 유럽 여행을 가서도 다른 사람이 풍경 사진 찍을 때 그는 길고양이에게만 눈길이 갔다. 그래서 찍어온 사진들을 뒤져 보면 온통 고양이 사진뿐이다. 이른바 ‘유럽 고양이 여행’을 하고 온 셈이다. 어린 조카는 고양이를 유달리 좋아하는 삼촌에게 ‘고양이 삼촌’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제가 유전적으로 천식이 있는데, 그래도 견딜 만해요. 털만 날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제이는 친칠라 종이라 털 색깔이 참 예뻐요. 저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고 까칠하게 대하는데, 친구들이 안아보고 싶어 해도 너무 낯을 가려서 안타깝죠. 하지만 저는 제이가 저만 알아봐주고 다정하게 대하는 게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져요.” 


작가만 유독 따르는 고양이라서, 2009년 5월경 이곳에 작업실을 얻고 나서 제일 신경이 쓰였던 것도 제이였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하루 종일 함께 있곤 했는데, 이젠 오전 11시~정오 사이에 집을 나와 자정께 들어가니 반나절을 혼자 있을 제이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집도 일부러 작업실과 가까운 곳으로 구했다. 걸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여서, 짬짬이 제이랑 놀아주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온다. 


고양이가 없는 동안의 아쉬움은 작업실 근처 길고양이가 채워준다. 작업실로 놀러오는 길고양이는 모두 3마리. 작년 겨울부터 하얀 고양이가 안 보이기 시작해 걱정이란다. 나머지 2마리 중에 1마리는 매일 출근도장을 찍다하다시피 한다. 그 고양이에겐 ‘나비’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중성화 수술을 했다는 표시로 한쪽 귀가 살짝 커팅된 것을 보면, 누군가 근처에 돌보는 사람이 있는 길고양이인 모양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고양이 문구를 구상 중인 유재선의 또 다른 꿈이 있다. 대중적인 디자인문구 작업과 더불어, 마음대로 그려나갈 수 있는 순수회화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다.


“제가 그린 고양이 캐릭터도 지금처럼 선적인 요소만 있으면 그냥 일러스트지만, 이걸 회화적으로 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 종류에 고양이 그림을 접목시킬 건데, 이를테면 오뚜기 인형과 고양이를 100호짜리 캔버스에 그리는 거죠. 그림에 들어가는 소품이나 패턴에 빈티지 요소를 접목시켜서 재미있는 회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날, 유재선의 작업실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미키마우스처럼 귀가 둥그런 모자를 쓴 고양이 쿠션이다. 작가가 정성스레 포장해준 비닐을 벗기고, 쿠션을 품에 안아본다. 볕이 잘 드는 작업실 창가를 오래 지키느라 쌓인 먼지 냄새, 햇빛 냄새가 난다. 꼭 고양이 한 마리만큼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진짜 고양이를 품에 안은 것 같았다. 그 쿠션이 현실의 고양이와 비슷한 부피를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한 남자가 고양이와 함께 해온 6년의 시간이 스며 있으니까. 나는 그 추억의 따스함을 포옹한 것이다.

* 작가 홈페이지(www.jaesun-shop.com)를 궁금해하는 분이 계서서 정보를 추가합니다.
  쿠션은 수작업으로 그때그때 만드는 거라,  주문하시고 며칠 뒤에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양이와 관련된 작가분의 인터뷰를 갔다가, 고양이 초상화가


있다고 해서 보여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마침 책상 위로

폴짝 뛰어올라온 녀석이 있어서, 초상화를 슬쩍 디밀어 봅니다.

바닥에 놓으면 보기 불편할 것 같아서 세워줬더니 물끄러미 봅니다.

고양이가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주변 모습을 인식하는 것을 본

경험이 있는지라, 초상화를 보는 고양이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림 속 자기 얼굴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는데 거울 보듯 가만히 보고만 있네요.
 
 
'다른 고양이들의 초상화는 모델과 많이 닮았지만 그 그림은

모델과 조금 안 닮았다'고 하는 작가분의 그림 설명을 듣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아니, 그럼 나만 안 닮게 그려줬다는 거야?' 하고

삐친 것 같아 귀여웠어요. 제 눈에는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지금보다 약간 더 어릴 때 그린 그림이라, 그때의 모습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요.


인터뷰한 고양이의 인상착의와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마지막에

모아놓고 찍은 사진인데, 각각의 고양이 특성이
잘 드러나 재미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스밀라의 초상사진은 수없이 찍어줬어도, 정작

초상화는 그려주지 않았네요. 미대생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초상화 그려달라는 말이라는데^^; 학생 시절엔 그런 부탁을 받으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멋쩍기만 했는데, 그림을 놓은 지 오래됐지만

이렇게 고양이 초상화를 보니 갑자기 스밀라 그림이 그리고 싶어집니다. 

'그리다'의 어원이 '그리워하다'에서 온 거라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그리는 그림이라면 흡족하게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소심한 길고양이와 눈을 맞출 기회란 드물다. 한밤중에 짝을 찾아 헤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거나,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진 쓰레기 봉투를 목격하고서야 그들이 가까이 있음을 알 뿐이다. 이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살고 있을까? 인간을 피해 숨던 길고양이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선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상상으로만 그려보았던 순간을, 김경화는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구현해낸다. 전시장 바닥에 머무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지 계단, 담벼락, 심지어 뒤뜰까지 차지한 길고양이와 비둘기의 기세는 압도적이다. 혹시 발로 건드릴까 싶어 조심조심 아래를 살피며 걷다 보면, 조각 사이로 지뢰처럼 촘촘히 심어둔 작가의 의중이 밟힌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동물들과 가까이 마주할 때,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인간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는 작가가 수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우리 곁으로 불러낼 때 의도했던 효과이기도 하다.

한번 전시를 열 때마다 적게는 수십 마리, 많게는 수백 마리의 동물 조각을 선보이지만,  극적인 효과를 낼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선보이고 싶다. 2008년 대안공간 반디에서 열린 개인전 <굿모닝>에서는 전시장 뒤뜰에 무려 길고양이 100마리와 비둘기 200마리를 설치했다. 김경화의 조각은 좌대에 올라 있을 때보다 바닥에 놓일 때, 전시장 안에 있을 때보다 거리로 우르르 몰려나왔을 때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다.
 
김경화는 부산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의 1기 입주 작가로 있다. 여러 작가와 한 건물을 쓰지만, 2층 창가에 놓인 길고양이와 비둘기 덕분에 그의 작업공간이 어딘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사람이 도시를 점령했지만, 원래는 동물들이 먼저 여기 살고 있었잖아요. 숨어서 안 보이는 것뿐이지. 만약 그들이 다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정말 많을 것 같아요. 그런 존재감을 전할 수 있게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어요.” 

모든 것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해버린다. 보이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고,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애써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김경화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끔 한다. 웅성웅성 모여든 동물들을 보며 “어, 쟤들이 왜 저기 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하고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일, 무심코 지나치던 일에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므로. 


“시멘트를 굳혀 보면 표면이 거칠게도 나왔다가, 어떤 때는 되게 매끈하게도 나오고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런 흔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한 건 아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고양이의 상처 많은 모습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작가는 자신이 만든 시멘트 고양이가 예쁘장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기보다는, 거리에서 마주친 길고양이처럼 오랜 시간을 견디며 세월의 때가 묻은 모습이길 바랐다. 그러나 속성 건축자재인 시멘트로는 아무리 오래 비바람을 맞히고 햇빛에 노출시켜도 새 것에서 느껴지는 ‘쌩한 느낌’이 났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재개발 지역의 허물어진 건물에서 나온 폐콘크리트를 넣기 시작했어요. 버려진 콘크리트에는 그 건물이 견뎌 온 몇 십 년이란 시간이 들어 있잖아요. 제가 인위적으로 조각에 담으려 했던 몇 개월 혹은 1년, 이런 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긴 시간이죠. 그걸 넣어 만들면 자연스럽게 시간이란 요소가 들어갈 거라 생각했어요.”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리어카 끌고 공사장을 다니면서 버려진 콘크리트 조각을 모았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공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악구에는 그가 찾던 시간의 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와 작업할 때는 집 근처 연지동 재개발 지역에서 콘크리트 조각을 주워 담았다. 덕분에 시멘트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시간을 담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김경화의 작품 속에서 낡고 오래된 건물의 파편은 더 이상 폐자재가 아니다. 조각 하나하나마다 생명을 불어넣어줄, 돌로 만든 심장이다. 재개발로 부서지기 전에 그 건물에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 한 조각, 오래된 기억이 그 심장 속에 잠들어 있다. 작가가 시멘트 동물들에게 불어넣길 바랐던 시간이, 몰드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시멘트와 함께 스며든다.

햇볕과 얼음,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낸 얼룩이 딱딱하게 굳은 시멘트 살갗 위로 켜켜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긴 시간을 견뎌낸 길고양이와 비둘기가 무리지어 선 사이로 걸어보는 일은,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체험이다.


인간에겐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건 당연하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길고양이와 비둘기에겐 내일이란 ‘영영 오지 않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매일 아침 무심코 던지는 “굿모닝!”이란 인사가, 거리의 동물들에겐 절박한 생존 확인이다. 그래서 김경화는 거리의 동물들이 무사히 내일을 맞이하도록, 작품을 통해 염원 섞인 인사를 건넨다.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또한 자신의 자소상이기도 한 그들을 향해서. 굿모닝! 부디, 매일 아침 당신들이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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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주말에 글을 못 올렸네요. 마음 추스르고 새롭게 시작합니다. 걱정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