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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고양이의 금빛 날개-도예가 김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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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계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김여옥 씨의 전시를 찾아가자, 한옥을 개조해 만든 아담한 전시 공간 안팎으로 검은 고양이들이 와글와글하다. 기와를 얹은 담벼락에 몸을 누이고 낮잠 자는 녀석, 나비를 잡느라 까치발로 뛰는 녀석, 창 너머를 고요히 바라보는 녀석. 고양이 털빛은 하나같이 검은 듯 푸르고, 잿빛인가 싶다가도 은빛을 띤다. 따스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도는, 딱 잘라 무엇이라 규정하기 힘든 색이다.
잿빛인 듯, 은빛인 듯 은은한 러시안 블루
“고양이 작업의 첫 모델이 된 아이가 러시안 블루 고양이였어요. 처음 봤을 때 몸의 선이나 빛깔이 너무 예쁜 거예요. 감자떡 빛깔 아시죠? 딱 그 색이었어요. 그래서 고양이 이름도 감자떡을 줄여서 ‘감자’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감자와 함께 살기 전에는 얼룩무늬 고양이 ‘땅콩’과 ‘오이’를 키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를 모델로 작품을 만들 생각은 못했다. 그러나 5년 전쯤 집에 들인 셋째 고양이 감자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소중한 모델이 됐다.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빚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대학원 재학 시절 그는 라꾸(raku)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가마에서 기물을 구워 약 1000℃가 될락 말락 할 무렵, 뜨거운 상태의 기물에 톱밥을 뿌리고 연기가 스며들게 하는데, 이런 과정을 ‘연(煙)을 먹인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와도 ‘꺼먹이 소성’이라고 해서 라꾸와 비슷하게 연을 먹이는 건데요. 라꾸와 꺼먹이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연을 완전히 흡착시키는 방식이에요. 그러려면 기물의 기공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뜨거울 때 꺼내야 해서 연기가 굉장히 많이 나요. 그래서 서울 시내에서, 그것도 지하 작업실에서 라꾸 작업을 하기는 어렵죠. 대학원 졸업 후에 라꾸와 비슷한 느낌을 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온 소성이 가능하면서도 원하는 색을 낼 수 있는 산화물을 찾았어요.”
그의 작업실에는 큰 가마와 작은 가마가 각각 하나씩 있다. 큰 가마에는 본 작품을 굽고, 작은 가마는 ‘시편(試片) 가마’라고 해서 구워진 흙의 빛깔이나 유약 색을 시험할 때 쓴다. 작업실 개수대 위로 나란히 걸린 알록달록한 시편들은 다양한 유약 시험의 결과물이다. 그는 기물 원형에 금이 가거나 휘어지지 않는 한, 10번이건 20번이건 유약을 다시 칠해서 원하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굽는다고 한다. 유약이 겹쳐지면서 밑에서 색이 올라오는 효과 때문에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꿈꾸는 고양이
김여옥 씨가 만든 고양이에게서는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뒷모습이거나, 정면에서 본 모습이 있어도 꿈꾸는 듯 눈을 감고 있다. 그가 고양이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눈동자를 묘사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눈이래요. 반짝이는 고양이의 눈을 보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사악해 보인다고까지 말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친근감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고양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바람 냄새를 맡을 때의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럴 때의 고양이는 바람 속에서 뭔가 정보를 얻는 것 같기도 하고, 사색하는 느낌도 들잖아요. 굳이 눈을 표현하지 않아도 고양이의 몸 자체가 워낙 선이 아름다워서, 그런 실루엣을 강조한 작품을 만들었죠.”
다섯 마리 고양이가 가르쳐 준 가족의 의미
김여옥 씨는 땅콩, 감자, 오이를 떠나보내고 현재 고구마, 누룽지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작품의 모델로까지 삼게 된 작가는,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살았던 다섯 마리 고양이들이 전해준 깨우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시어머니가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을 담으라며 선물해준 ‘육묘앨범’에는, 그와 함께 부대끼던 고양이들의 성장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뭉클하다. 김여옥 씨는 고양이에게서 빠진 젖니까지도 고이 앨범 속에 붙여두었다.
“책임져야 할 대상이 생길 때 사람들은 좀 더 힘을 내서 살잖아요. 그전까지는 고양이에게 짜증도 내고 화낼 때도 있었는데, 새로운 아이를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후회도 많았고 많은 것을 배웠어요. 오이, 땅콩, 감자를 보내고 나서 저도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내가 애정을 쏟고 관심을 주는 만큼, 그들도 그만큼 내게 사랑을 주고 웃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았어요.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게 가족이잖아요. 가족은 인연인데, 그런 가족을 만들어준 인연이 참 소중하죠.”
고양이에게 날개를, 고양이에게 자유를
흙으로 고양이의 실루엣을 빚어내는 작업을 계속하는 동안, 작품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양이 홀로 있던 작품에 ‘창’이 추가된 것이다. 창밖의 세계를 그리운 듯 바라보는 고양이를 만드는 작가에게, 창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선인 동시에 다른 세상과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과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네모난 창 하나에 고스란히 담긴다.
또 다른 변화는 먼 곳을 그리운 듯 바라보기만 하던 고양이의 등에 날개가 솟아났다는 점이다. 꿈꾸는 고양이의 몸에서 둥실 솟아나는 상상 속의 날개는, 깃털이 아닌 양귀비 꽃잎으로 만들어진 금빛 날개다.
“양귀비도 야생화이기 때문에 길고양이 같은 야생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면도 있고요. 또 호기심 많은 고양이에게 날개가 생기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나 싶기도 해요. 가고 싶은 곳도 자유롭게 갈 수 있고, 위험하면 빨리 숨을 수도 있고. 그런 고양이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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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담긴 검은 고양이의 매력-도예가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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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조은정의 작업실은 2곳이다. 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작업실이 2곳이라니. 한데 그가 작업을 두 군데서 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여느 도예가들과 달리, 조은정의 작업실에는 가마가 없다. 대신 집에 가마를 뒀다. 지금 쓰는 작업실 공간이 협소한 편이라, 공방 겸 작업실로 쓰는 곳에선 수강생을 가르치거나 초벌구이한 기물에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하고, 가마에 굽는 마무리 작업만 집으로 가져가서 한다. 가마에 불을 때지 않을 때면, 고양이들이 전망대 삼아 창밖을 보는 캣타워로도 쓴다. 가마를 보호하는 철제 앵글에 마끈을 감아 발톱긁개를 만든 모습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도예가의 작업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언니 친구 아버지가 대문 옆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몰래 꺼내오셨대요. 가족이 다 반대하는데, 마침 딸 친구 동생인 제가 고양이를 좋아하니 이리로 보낸 거죠. 그렇게 양양과 처음 만났어요. 근데 고양이가 생기니까 밥이랑 모래를 사야 되잖아요. 그제야 회사에 나가고 일을 하는 의미가 생겼어요.”
원하는 색깔과 무늬별로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가족계획도, 양양의 입양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1998년 2월 모란장에서 사온 둘째 고양이 메이, 역시 모란장 약고양이 장에서 “산 채로는 안 판다”는 걸 우겨서 사온 셋째 나오미, 하이텔 고양이 소모임의 입양란 담당자로 있던 시절 인연이 닿아 입양한 넷째 야로까지 4마리로 1세대 구성을 마치려던 무렵, 예기치 않은 업둥이가 들어왔다. 젖소무늬 고양이 잭, 일명 재구다.
“사고를 겪거나 장애가 있는 고양이라고 해서 모두 트라우마에 시달리진 않아요. 잭은 스스로를 불쌍하다 여기거나, 앞을 못 본다고 괴로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정도 큰일도 겪었는데, 그보다 가벼운 일에는 타격을 받지 않아’ 하는 고양이로 자라줬거든요.”
양양부터 잭까지 5마리가 1세대 고양이였다면, 6년의 터울을 두고 얻은 2세대 고양이는 6마리다. 나오미가 6살 때 낳아준 동고비와 싱그람, 들고양이였던 노랑둥이 소목과 턱시도 무늬의 ‘개냥이’ 브즈, 여신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호리호리한 2대 야호,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동안을 자랑하는 오동이까지. 가족에게서 독립한 지 오래지만, 집에 들어서면 반겨주는 고양이 가족 덕분에 쓸쓸하지 않다.
“카페 손님 중에 혜화동에서 도예 작업실을 하는 분이 계셨어요. 저야 늘 이런저런 고양이 물건을 만들고 싶어 했으니까, 고양이 밥그릇을 만들고 싶어서 공방에 갔죠. 근데 흙으로 빚어 만드는 작업은 당일엔 안 된다고,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는 거예요. 도자 안료가 참 재밌더라고요. 어린애들 쓰는 12색 크레파스로 정물화 그리는 기분이었어요.”
고양이와 관련된 작업이라면 뭐든 신나게 몰입하는 그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업이 있다. 아는 사람에게서 고양이 유골함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다. 오래 전 고양이 모임에서 친해졌다가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가 갑자기 연락해올 때면, 혹시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온 것도 벌써 13년째니, 그 무렵 알게 된 친구들의 고양이가 노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둘 세상을 뜨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인지 모른다.
문득 듣는 ‘아는 고양이’의 부고는, 조은정의 1세대 고양이들 역시 점점 나이 먹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 친구의 고양이를 위한 유골함을 만들면서, 조은정도 언젠가 고양이들에게 찾아올 죽음을 수없이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만성 신부전으로 앓아온 양양이 2009년 6월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같은 해 12월 재구가 양양 곁으로 갔을 때도 그들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고로 고양이가 죽거나, 고양이를 잃어버려서 생이별한 친구도 있거든요. 그때 느낄 감정이 어떤 건지 아니까…. 차라리 나이 먹어서 노환으로 죽은 게 어쩌면 축복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슬픔 속에서도 기쁨이 있다면 그런 거겠죠. 그거라도 있어야지, 그것도 없으면 어떻게 버텨요.”
태어날 때 함께하진 못했더라도, 마지막 순간은 최선을 다해 함께했다는 확신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만큼이나, 죽음을 애도하고 극복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사별은 누구에게나 깊은 슬픔을 남기지만, 함께 사는 고양이의 죽음이란 그에게 ‘상실’보다 ‘완성’에 가까운 의미가 아닐까 싶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삶의 정점”이라 했던 로버트 풀검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목사였던 로버트 풀검은 <내 인생의 여섯 가지 신조>라는 글에서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웃음이며,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나는 믿는다”고 썼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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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체가 굉장히 스타일리쉬하고 개성이 있네요.
제가 이런쪽도 정말 좋아하는데 일러스트하는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
이분이 그 유명한 야호메이님이시군요.
그림은 처음 봤어요. 좋네요 :-)
(얼마 전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를 읽기 시작했어요.
나오자마자 샀는데 이제야.
표지만 보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거든요.
근데 좋더라고요. 좀 행복해지고, 여행가고싶어졌어요.) -
메이님 인터뷰 글이네요. ^^ 평소 메이님 블로그에 자주 들르는데, 이 곳에서 메이님 관련 글을 볼 줄이야~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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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진 분 같아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몇년 전 떠나보낸 울 강아지가 생각나네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분들 모두 사랑합니다 헤헤 -
제 동생이 보면 당장 갖고 싶다고 난리칠 것 같아요 ㅎㅎ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림체가 독특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
작품이 멋진걸요.. 고양이 캐릭터가 도기에서 저렇게 살아 있기도 하네요
생활도기라고 하셨지만 두고 보고 싶은 느낌...
진짜 고양이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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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돌칠미키
2010.12.14 11:17이분 블로그에서 많은 양이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고양이 사랑도 남다르고
무엇보다 아픈 아이들과 함께 해서 그런지 냥이에 대한 것도 누구보다 많이 아시는 분이더군요.
늘상 우당탕 거리는 메이네 냥이들은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
야옹이랑 초코랑~!!
2010.12.14 12:41냥이네에서도 유명한 메이님이시네요...역시~멋진 분이세요..^^
전 재구가 젤로 기억에 남아요...정말 당당한 모습으로 살다가 행복하게 별로 돌아간 아이...... -
소풍나온 냥
2010.12.14 14:02음~ 메이님이 저렇게 생기셨군여~~ 미인이신데요^.^
다 가졌으면 좋겠을 냥이 자기들이지만(특히 술병?과 물잔이...)
재구 등잔? 촛대? 장식......이 젤로 이쁘고 정이 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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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몇 번 방문한 적 있는 블로거 메이님이시네요 ^-^
고경원님, 메이님 같은 분이 계셔서 사람들이 조금 더 고양이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머니야머니야님 2009년 2월 포스팅 '내가 길고양이 통신원 고경원 기자를 좋아하는 이유'에서 2005년에 쓰신 기사를 봤어요
길고양이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
고양이 쿠션 만드는 ‘고양이 삼촌’ 유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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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삼촌’ 유재선의 작업실은 내가 꿈꾸던 이상향과 꼭 닮았다. 한적한 주택가라 소음에 시달릴 염려가 없고, 정오께 작업실로 출근해 셔터를 올리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곤 밥을 졸라대는 길고양이까지 있으니, 고양이 작가의 작업실로는 더 바랄 게 없다. 여섯 살배기 고양이 제이와 단둘이 사는 작가는 고즈넉한 작업실 한켠에서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 쿠션도 만든다.
유재선은 작업실을 반으로 나눠, 수집품 전시 공간 겸 작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통유리창 너머로 언뜻 보이는 방이 전시 공간 쪽이다. 손때 묻은 빈티지 인형, 장정이 예쁜 그림책, 오래된 영화 속에서 슬쩍 꺼내온 듯한 빈티지 소품들…. 그동안 정성껏 모아온 오래된 보물들이 가득하다. 처음 작업실을 열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웬 총각이 인형 가게를 차렸나’ 했단다. 심지어 골동품 가게인가 묻는 사람도 있었다.
유재선이 좋아하는 고양이에 빈티지 인형의 요소가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고양이 쿠션이다. 고양이를 의인화한 복고풍 캐릭터를 그리고, 그들의 손에 빈티지 인형과 소품을 쥐어줬다. 오뚜기 인형을 안은 고양이 소녀, 복고풍 뿔테안경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1970년대 올드스쿨 스타일의 고양이 소년이 하나둘 만들어졌다.
작업대 앞에 놓인 붓과 그림 도구들 사이로 함께 사는 고양이 제이의 그림이 보인다. 작가 이름인 ‘재선’에서 영문 맨 첫 글자인 J를 따서 지어준 이름이다. 대학교 4학년 졸업 시즌인 2003년, 수원에서 자취하면서 10평짜리 오피스텔에 살던 무렵 처음 제이를 데려왔다.
“제이가 처음 저에게 왔을 때는 3개월 된 아기 고양이였어요. 졸업 시즌에 맞춰서 서울로 오려고 방을 내놓았는데, 제가 없을 때 복덕방에서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려고 문을 열었다가 고양이를 보고 놀란 거죠. 고양이가 있어서 집이 싫다는 사람, 문 열어보고 무섭다며 바로 나간 사람도 있었대요. 복덕방에서 ‘고양이 때문에 집이 안 나가는데 어쩔 거냐’고 저희 집에 전화하는 바람에, 고양이 버리라고 난리가 났어요. 지금은 이사를 자주 안하니까 그럴 일은 없는데, 그때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 때문에 집에서 반대가 컸죠. ”
한번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니, 유럽 여행을 가서도 다른 사람이 풍경 사진 찍을 때 그는 길고양이에게만 눈길이 갔다. 그래서 찍어온 사진들을 뒤져 보면 온통 고양이 사진뿐이다. 이른바 ‘유럽 고양이 여행’을 하고 온 셈이다. 어린 조카는 고양이를 유달리 좋아하는 삼촌에게 ‘고양이 삼촌’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제가 유전적으로 천식이 있는데, 그래도 견딜 만해요. 털만 날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제이는 친칠라 종이라 털 색깔이 참 예뻐요. 저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고 까칠하게 대하는데, 친구들이 안아보고 싶어 해도 너무 낯을 가려서 안타깝죠. 하지만 저는 제이가 저만 알아봐주고 다정하게 대하는 게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져요.”
고양이가 없는 동안의 아쉬움은 작업실 근처 길고양이가 채워준다. 작업실로 놀러오는 길고양이는 모두 3마리. 작년 겨울부터 하얀 고양이가 안 보이기 시작해 걱정이란다. 나머지 2마리 중에 1마리는 매일 출근도장을 찍다하다시피 한다. 그 고양이에겐 ‘나비’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중성화 수술을 했다는 표시로 한쪽 귀가 살짝 커팅된 것을 보면, 누군가 근처에 돌보는 사람이 있는 길고양이인 모양이다.
“제가 그린 고양이 캐릭터도 지금처럼 선적인 요소만 있으면 그냥 일러스트지만, 이걸 회화적으로 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 종류에 고양이 그림을 접목시킬 건데, 이를테면 오뚜기 인형과 고양이를 100호짜리 캔버스에 그리는 거죠. 그림에 들어가는 소품이나 패턴에 빈티지 요소를 접목시켜서 재미있는 회화 작업을 하고 싶어요.”
* 작가 홈페이지(www.jaesun-shop.com)를 궁금해하는 분이 계서서 정보를 추가합니다.
쿠션은 수작업으로 그때그때 만드는 거라, 주문하시고 며칠 뒤에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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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건.. 행복할 거 같아요
생각나는대로 만들고 표현할 수 있고...고양이도 함께 살 수 있군요..
고양이 삼촌 보기 좋습니다 ^^ -
남자분이 굉장히 섬세한 분인가봐요.
인상도 좋으시고~
인형도 너무 귀엽네요.
이런 쿠션이라면 역시나 지난번 처럼 앉지도 못하고
장식용으로 보관만 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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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서 고양이쿠션 일러스트를 본적이 있어요.. 이뻐서 살짝 담아왔었는데.. 고양이삼촌님이셨군요..
따뜻한 마음이 인터뷰를 통해서 전해지는듯해요.
쿠션과 함께 고양이삼촌 그림책을 구입하고 싶은데.. 구입할 방법 좀 알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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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귀여운 여자아이 방 같아요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신다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 할까요? -
고양이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정말 부럽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고
고양이와 함께라면 넘 행복하겠죠?^^ -
미첼
2010.12.07 11:00오.. 이런 우연이.. 저희집 아이 이름도 제이거든요, 거기다 집사만 따르는 성향까지 비슷한게.. 제이란 이름을 가진 녀석들의 까탈스러움인가요ㅎㅎ
예전 다른 기사에서도 이분을 뵌것같아요. 길냥이 돌보는것도 여전하시네요.
지난번 스밀라 닮은 쿠션부터 오늘까지, 쿠션에 대한 욕심만 늘어갑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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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언니
2010.12.07 16:03으음.. 천식인데 친칠라면 좀 힘드시겠네요;;
저희도 엄마가 좀 그러신데도 불구하고 새벽이놈을 많이 이뻐해주셔서 그저 감사하답니다 ^^ -
멋진분 이시군요^^재능도 너무나 다재다능하신분~부럽습니다^^
저도 예전엔 이러저러 여러 손으로 만드는 소품들을 만들었었는데..요즘은 도통 만들지를 못했네요 ㅜ,ㅜ
링크따라 조용히~건너가보겠습니다^^/
편한 밤 되셔요~ -
비비안과함께
2010.12.07 23:50링크해 놓으신 주소에 가서 두루두루 구경 잘하고 왔습니다^^작업실이 굉장히 따뜻한 느낌이라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는 곳이네요. 저도 조금씩 자금을 모아 한아름에 안을 수 있는 쿠션에 한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소개해주신 작가분들의 작품을 보면 같은 고양이라는 종을 소재로 했는데도 제 각각 그 분위기나 느낌이 달라서 재미있습니다. 은근 작품 분위기에서 작가의 캐릭터도 상상하게 되고... 그나저나 고양이는 주인도 못알아보고 충성심도 없는 동물이라는 유언비어는 누가 퍼트렸을까요?고양이 삼촌댁 제이도 그렇고 제와 함께 있는 비비안도 그렇고 냥이들은 오히려 진돗개처럼 자기의 반려인만을 바라보는데 말입니다.음...충성심이라는 단어에는 좀 문제가 있긴하군요...쩝.
고양이 초상화를 보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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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해서 보여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마침 책상 위로
폴짝 뛰어올라온 녀석이 있어서, 초상화를 슬쩍 디밀어 봅니다.
고양이가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주변 모습을 인식하는 것을 본
경험이 있는지라, 초상화를 보는 고양이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림 속 자기 얼굴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는데 거울 보듯 가만히 보고만 있네요.
모델과 조금 안 닮았다'고 하는 작가분의 그림 설명을 듣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아니, 그럼 나만 안 닮게 그려줬다는 거야?' 하고
삐친 것 같아 귀여웠어요. 제 눈에는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지금보다 약간 더 어릴 때 그린 그림이라, 그때의 모습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요.
모아놓고 찍은 사진인데, 각각의 고양이 특성이 잘 드러나 재미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스밀라의 초상사진은 수없이 찍어줬어도, 정작
초상화는 그려주지 않았네요. 미대생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초상화 그려달라는 말이라는데^^; 학생 시절엔 그런 부탁을 받으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멋쩍기만 했는데, 그림을 놓은 지 오래됐지만
이렇게 고양이 초상화를 보니 갑자기 스밀라 그림이 그리고 싶어집니다.
'그리다'의 어원이 '그리워하다'에서 온 거라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그리는 그림이라면 흡족하게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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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고양이의 독백을 들었습니다
좀 안 닮았다고 화가 났나봐요
제가 볼때는.. 잘 그린것 같은데...
사람도 초상화 그려주면..
불만족 스러워 하듯이..
고양이도 그런거? 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
그리다의 어원이 그리워하다군요.. 오오.. 몰랐어요.
저두 울곰냥이의 초상사진은 많이 찍는데..정작 초상사진은...;;
냥이들의 특징이 잘 살린 초상화사진들 너무 멋지네요..
전 그림실력도 제로인지라... 아아.. 고민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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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과함께
2010.11.19 13:35박재동 화백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초상화나 캐리커쳐같은 것은 실물보다 조금 잘 생기게 혹은 젊게 그리는게 지구 평화에 도움이 된다...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노랑둥이가 샐쭉했던 것은 아마도 ㅋ 자기가 생각하는 실물보다 그림이 조금 덜 예뻐서 그런게 아닐까나요?^^제가 보기에는 초상화도 실물도 다 예쁜 고양이입니다만~스밀라 초상화 왠지 기대하게 된답니다~사실 그대로 그려도 멋질 것 같고 스밀라는 은빛털이나 얼굴이 카리스마가 있어서 환상적인 그림의 소재가 되어도 좋을 듯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공주보다는 여왕의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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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림을 봤을까요.
얘는 뭐하는 놈이여, 살아있는겨? 죽은겨? 눈은 뜨고 있는데 우째 이리 몸이 종이처럼 쫄아들어 있는겨?
별별 생각을 다했을 것 같아요.
스밀라도 한 번 그려주세요. 시샘하는 것 같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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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초상화를 바라보는 고양이 사진 자체가 한폭의 작품이로군요.
저 고양이 감정 표현이 좀 되는 애인 거 같네요.. 표정 변화가 정말 보입니다 후후
좋아하면 한번쯤 그려주고 싶어진다는데..
요즘은 사진을 찍어주게 되네요... -
와~멋진 작가분이시군요^^어찌이리 잘그리셨는지^^
동물들을 그린다는것이 참 어렵더라구요..
저도 한때 색연필로 냥이들을 그린적이있는데..그게 털표현하다가 포기했던 기억이..ㅎㅎ
(세밀하게 묘사하시는분들 보면 존경심이@@아오~ㅎㅎ)
스밀라도 한번 스케치하셔서 올려봐주세요^^/
고경원님의 사랑과 정성이시라면 멋진~스밀라의 그림이 탄생할것 같습니다^^
그럼 편한밤 되셔요~ -
제가 봐도 닮았는데요.
고경원님 미술 전공 하셨군요.
스밀라도 그려주세요.정말 멋질것 같습니다.
참 우리집에 이쁜이 입양되었습니다.
고양이 일까요??강아지 일까요?? 보러 오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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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루이
2010.11.20 14:31예쁜 녀석들이 많이 있네요..그림을 잘 그리면 좋겠어요~저도 여러번 저희 녀석들을 그려보려고 했는데...나도 녀석들도 맘에 안들어하더군요 ㅎㅎ
간만에 날씨도 좋은데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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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 추천해 주셔서 답방차 들어왔는데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고있는 냥이 모습이 넘 귀엽네요.ㅋㅋ^^ 근데 저도 티스토리 로긴한 상태인데도 댓글쓰려니 세가지를 입력하라는데 Q가 어디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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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게 “굿모닝” 인사하는 이유-설치미술가 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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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길고양이와 눈을 맞출 기회란 드물다. 한밤중에 짝을 찾아 헤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거나,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진 쓰레기 봉투를 목격하고서야 그들이 가까이 있음을 알 뿐이다. 이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살고 있을까? 인간을 피해 숨던 길고양이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선다면 어떤 모습일까?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동물들과 가까이 마주할 때,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인간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는 작가가 수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우리 곁으로 불러낼 때 의도했던 효과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해버린다. 보이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고,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애써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김경화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끔 한다. 웅성웅성 모여든 동물들을 보며 “어, 쟤들이 왜 저기 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하고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일, 무심코 지나치던 일에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므로.
“시멘트를 굳혀 보면 표면이 거칠게도 나왔다가, 어떤 때는 되게 매끈하게도 나오고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런 흔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한 건 아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고양이의 상처 많은 모습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작가는 자신이 만든 시멘트 고양이가 예쁘장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기보다는, 거리에서 마주친 길고양이처럼 오랜 시간을 견디며 세월의 때가 묻은 모습이길 바랐다. 그러나 속성 건축자재인 시멘트로는 아무리 오래 비바람을 맞히고 햇빛에 노출시켜도 새 것에서 느껴지는 ‘쌩한 느낌’이 났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재개발 지역의 허물어진 건물에서 나온 폐콘크리트를 넣기 시작했어요. 버려진 콘크리트에는 그 건물이 견뎌 온 몇 십 년이란 시간이 들어 있잖아요. 제가 인위적으로 조각에 담으려 했던 몇 개월 혹은 1년, 이런 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긴 시간이죠. 그걸 넣어 만들면 자연스럽게 시간이란 요소가 들어갈 거라 생각했어요.”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리어카 끌고 공사장을 다니면서 버려진 콘크리트 조각을 모았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공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악구에는 그가 찾던 시간의 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와 작업할 때는 집 근처 연지동 재개발 지역에서 콘크리트 조각을 주워 담았다. 덕분에 시멘트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시간을 담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김경화의 작품 속에서 낡고 오래된 건물의 파편은 더 이상 폐자재가 아니다. 조각 하나하나마다 생명을 불어넣어줄, 돌로 만든 심장이다. 재개발로 부서지기 전에 그 건물에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 한 조각, 오래된 기억이 그 심장 속에 잠들어 있다. 작가가 시멘트 동물들에게 불어넣길 바랐던 시간이, 몰드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시멘트와 함께 스며든다.
햇볕과 얼음,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낸 얼룩이 딱딱하게 굳은 시멘트 살갗 위로 켜켜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긴 시간을 견뎌낸 길고양이와 비둘기가 무리지어 선 사이로 걸어보는 일은,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체험이다.
인간에겐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건 당연하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길고양이와 비둘기에겐 내일이란 ‘영영 오지 않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매일 아침 무심코 던지는 “굿모닝!”이란 인사가, 거리의 동물들에겐 절박한 생존 확인이다. 그래서 김경화는 거리의 동물들이 무사히 내일을 맞이하도록, 작품을 통해 염원 섞인 인사를 건넨다.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또한 자신의 자소상이기도 한 그들을 향해서. 굿모닝! 부디, 매일 아침 당신들이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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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정성이 우와.. 소리 나오게하네요.
길냥이들이 온 길가에 쏟아져나온다면 음..^^ 왠지 차도를 꽉 막을만큼 많을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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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저렇게 옥상이 내려다 보이는.. 공간에서 일을 했었는데..
(부산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거기서 내려다보면서 찍었던 사진 보여준 적 있어요..
옥상에 종종 와서 놀다가는 고양이들이 기억나네요 -
그린레이크
2010.11.15 09:39어머님은 좀 괜찮아 지셨는지요~~맘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빨리 쾌차 하시길 기도 드릴께요~~
저럼 작가분이 있는지 정말 몰랐네요~~
작품을 통해 길고양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실것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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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 대한 애상을 예술로 표현한 작품이네요.
우리가 그들과 공존하고 있는지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많은걸 생각해봤습니다. -
새벽이언니
2010.11.15 11:47그저 예쁜것만 좋아하는 저같은 사람이 좀 뜨끔하는 글입니다
날도 차가운데 조심하셔서 어머님이 얼른 쾌유하시길 빌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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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는 건물 폐시멘트를 넣은 동물의 폐를 만드는.. 작품을 만들어 메세지를 주는군요^^
거리의 동물들의 아침이 궁굼한...굿모닝입니다!! 어머님도 좋아시시길 빌어요 -
소풍나온 냥
2010.11.15 15:28대단하신 작가님 ~~~조각들에서 생동감도 느껴지고 마음이 짠하네요...
어머님께서는 좀 나아지셨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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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진 작품이네요
고경원님 블로그 스킨도 멋지게 변신하신듯^^
거리의 동물들이 정말 무사히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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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상
2010.11.15 22:39마음이 많이 아프셨겠군요. 어머니도 빨리 씻은듯이 나으시고 고경원님도 우울한 마음, 힘든 마음 탈탈 털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래요^^
고경원님 화이팅! ㅎ -
멋진조각가 십니다^^아 부산에 그러한 공간이있어군요..멋져요^^
비둘기와 길고양이..우리와항상 함께하지만 소외되고 천대마저 받는 동물들 ㅜ,ㅜ
부디 힘내어서 그래도..한줄기 빛처럼 우리와함께 해주었음합니다.
어머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힘내셔요~항상 건강조심입니다~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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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루이
2010.11.20 14:38경원님 덕분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분들을 알게되는거 같아 너무 기뻐요~!!
나중에 김경화님의 전시회를 볼 기회가 생기면 아주 좋겠어요~!!ㅎㅎ
2010.12.17 10:47 신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어떤 일이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네요
상상력도 실력도 정말 멋지신 분이네요^^
2010.12.17 20:56 신고
작품 자체도 멋있지만 설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더군요.
고양이들이 실제로 나들이 나온 것처럼... 창작하는 분들을 찾아뵙다 보면 많이 배우게 됩니다.
2010.12.17 10:52
잘 구경하고 갑니다 ^^
2010.12.17 20:58 신고
더 다양한 작품과 작가분들을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는 다른 글보다는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자극이 되어서 좋아요.
2010.12.17 10:53
비밀댓글입니다
2010.12.17 20:58 신고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해서 테러를 하면 안되지요...
2010.12.17 11:27
고경원님을 몰랐을때부터 '예술가의 고양이'는 즐겨 보고있었어요.
책광고 메일 구석에서 발견한 귀중한 고양이 이야기, 반가운 맘에 읽고, 공감하고, 댓글도 쓰고 그랬더랬죠. 그 글을 쓰신분이 고경원님이였다니ㅎㅎ
새삼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요^^
2010.12.17 21:00 신고
네, 12회 연재하기로 하고 이제 1회 남았네요. 블로그에는 소개하지 못한 글도 있고해서
틈나는 대로 올리고 있습니다. 웹진에 올라온 글을 보셨군요. 고맙습니다.
2010.12.17 11:29
멋진 분이네요. ^^
2010.12.17 21:00 신고
자부심만큼 작품도 멋진 분이랍니다. 실물을 보면 까만 고양이 털빛이나
고양이 금빛 날개가 정말 신비롭고 아름답답니다.
2010.12.17 11:50
저렇게 이쁘신 분이 만드시는 거라면 다 이뻐 보이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정신 모차리는 새라새랍니다.....므튼 머리만 길면 다 여자죠 ㅎㅎㅎㅎ
2010.12.17 21:02 신고
작품도 멋지지만 미인이기도 하시죠^^ 그냥 아름답다고만 하기보다는
그분 특유의 매력이 있기에 더 오래 인상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2010.12.17 23:28
소개해주신 작가분들 작품이 저마다 개성도 강하고 어느 것하나 멋지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전 김여옥 작가님의 작품이 가장 가슴에 많이 와 닿네요^^언젠가 기회가 되면 실제 전시회에 가보고 싶어요. 제가 느끼는 고양이의 이미지나 정서를 가장 비슷하게 느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신기한게 작가들이 분명 모두 고양이를 보고 작품활동을 하는데 작품마다 다 전해지는 정서가 전혀 다르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어떤 분의 작품에는 장난끼나 즐거움이 느껴지고 어떤 분의 작품에서는 애잔함고 쓸쓸함이 느껴지고 또 어떤 분의 작품에서는 혼자이지만 외롭지는 않고 뭔가 손닿지 않는 듯한 정서가 느껴지고...
2010.12.18 20:07 신고
같은 고양이를 테마로 작업하면서도 서로 바라보는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어떤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어떤 고양이는 묵직한 생각거리를 주고, 어떤 고양이는
인간과 참 많이 닮아있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양하게 넓힐 수 있어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좋았어요.^^
2010.12.19 16:09
자연과 자유를 갈망하는 날개달린 고양이를보며 맘이 참 아파옵니다 ㅠ,ㅠ
저희집 누피할배도 원래는 산책묘였는데..이곳으로 이사를온 뒤 크게 다쳐서 방고양이가 된지
꽤 되었거든요..지금도 가끔 바깥을 뚫어져라,,보는데 참..맘이 ㅜ,ㅜ 에효..
그래도 이젠 노년의 생활을 여유롭게 집안이지만 편하게 살다갔음 하는 바램이 크다죠^^
멋진 도예가 분 이시군요^^앞으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셨음 합니다.편한 주말되셔요~
2010.12.20 09:05 신고
에구 어쩌다가 다쳤을까요.. 누피할배도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니
몸을 조심조심 잘 간수해야 할 나이이지요. 겨울 내내 건강 관리 잘해서
다시 씩씩한 고양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