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길고양이와 눈을 맞출 기회란 드물다. 한밤중에 짝을 찾아 헤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거나,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진 쓰레기 봉투를 목격하고서야 그들이 가까이 있음을 알 뿐이다. 이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살고 있을까? 인간을 피해 숨던 길고양이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선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상상으로만 그려보았던 순간을, 김경화는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구현해낸다. 전시장 바닥에 머무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지 계단, 담벼락, 심지어 뒤뜰까지 차지한 길고양이와 비둘기의 기세는 압도적이다. 혹시 발로 건드릴까 싶어 조심조심 아래를 살피며 걷다 보면, 조각 사이로 지뢰처럼 촘촘히 심어둔 작가의 의중이 밟힌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동물들과 가까이 마주할 때,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인간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는 작가가 수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우리 곁으로 불러낼 때 의도했던 효과이기도 하다.
한번 전시를 열 때마다 적게는 수십 마리, 많게는 수백 마리의 동물 조각을 선보이지만, 극적인 효과를 낼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선보이고 싶다. 2008년 대안공간 반디에서 열린 개인전 <굿모닝>에서는 전시장 뒤뜰에 무려 길고양이 100마리와 비둘기 200마리를 설치했다. 김경화의 조각은 좌대에 올라 있을 때보다 바닥에 놓일 때, 전시장 안에 있을 때보다 거리로 우르르 몰려나왔을 때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다.
김경화는 부산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의 1기 입주 작가로 있다. 여러 작가와 한 건물을 쓰지만, 2층 창가에 놓인 길고양이와 비둘기 덕분에 그의 작업공간이 어딘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사람이 도시를 점령했지만, 원래는 동물들이 먼저 여기 살고 있었잖아요. 숨어서 안 보이는 것뿐이지. 만약 그들이 다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정말 많을 것 같아요. 그런 존재감을 전할 수 있게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어요.”
모든 것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해버린다. 보이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고,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애써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김경화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끔 한다. 웅성웅성 모여든 동물들을 보며 “어, 쟤들이 왜 저기 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하고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일, 무심코 지나치던 일에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므로.
“시멘트를 굳혀 보면 표면이 거칠게도 나왔다가, 어떤 때는 되게 매끈하게도 나오고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런 흔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한 건 아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고양이의 상처 많은 모습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작가는 자신이 만든 시멘트 고양이가 예쁘장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기보다는, 거리에서 마주친 길고양이처럼 오랜 시간을 견디며 세월의 때가 묻은 모습이길 바랐다. 그러나 속성 건축자재인 시멘트로는 아무리 오래 비바람을 맞히고 햇빛에 노출시켜도 새 것에서 느껴지는 ‘쌩한 느낌’이 났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재개발 지역의 허물어진 건물에서 나온 폐콘크리트를 넣기 시작했어요. 버려진 콘크리트에는 그 건물이 견뎌 온 몇 십 년이란 시간이 들어 있잖아요. 제가 인위적으로 조각에 담으려 했던 몇 개월 혹은 1년, 이런 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긴 시간이죠. 그걸 넣어 만들면 자연스럽게 시간이란 요소가 들어갈 거라 생각했어요.”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리어카 끌고 공사장을 다니면서 버려진 콘크리트 조각을 모았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공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악구에는 그가 찾던 시간의 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와 작업할 때는 집 근처 연지동 재개발 지역에서 콘크리트 조각을 주워 담았다. 덕분에 시멘트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시간을 담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김경화의 작품 속에서 낡고 오래된 건물의 파편은 더 이상 폐자재가 아니다. 조각 하나하나마다 생명을 불어넣어줄, 돌로 만든 심장이다. 재개발로 부서지기 전에 그 건물에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 한 조각, 오래된 기억이 그 심장 속에 잠들어 있다. 작가가 시멘트 동물들에게 불어넣길 바랐던 시간이, 몰드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시멘트와 함께 스며든다.
햇볕과 얼음,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낸 얼룩이 딱딱하게 굳은 시멘트 살갗 위로 켜켜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긴 시간을 견뎌낸 길고양이와 비둘기가 무리지어 선 사이로 걸어보는 일은,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체험이다.
인간에겐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건 당연하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길고양이와 비둘기에겐 내일이란 ‘영영 오지 않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매일 아침 무심코 던지는 “굿모닝!”이란 인사가, 거리의 동물들에겐 절박한 생존 확인이다. 그래서 김경화는 거리의 동물들이 무사히 내일을 맞이하도록, 작품을 통해 염원 섞인 인사를 건넨다.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또한 자신의 자소상이기도 한 그들을 향해서. 굿모닝! 부디, 매일 아침 당신들이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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