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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학살의 공포 »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지만, 몸에서 솜털이 빠질 무렵이면 시련이 시작된다. 사간동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산비둘기 새끼를 만났다. 어떤 새나 새끼 때는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몸에서 솜털이 슬슬 빠지고 깃털이 자라나면 시련이 시작된다. 어미는 더 새끼를 돌보지 않고 매정하게 내버려둔다. 한때는 귀여웠을 솜털이 지저분하게 너덜거리는 것으로 보아, 어미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닐 시점은 이미 지난 청소년 비둘기인 듯했다. 한데 사람이 눈앞에 다가와도, 화분 그늘에 숨어 있던 녀석은 도무지 달아날 기색이 없다. 어딘가 불편한 듯 작은 몸을 움찔거릴 뿐이다. 새끼 비둘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마의 깃털이 성글게 빠져 있고, 눈과 눈 사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쭉한 상처가 있다. 상처가 꽤 깊.. 2007. 11. 4.
고양이 발바닥의 매력 서울역 근처 헌책방 북오프에 들렀다가 재미있는 일본 문고판을 발견했다. 이름하야 고양이 발바닥 책. 고양이 발바닥에는 ‘육구’라는 말랑말랑한 살이 있는데, 고양이의 종류와 나이에 따른 발바닥의 모양을 실제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물론 고양이 발바닥이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발바닥의 주인인 고양이씨의 얼굴과 몸도 가끔 등장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양이의 육구는 한때 구멍가게에서 인기리에 판매되었던 ‘곰형 젤리’라는 과자류와 비슷하다. 밝은 색 계통의 털을 가진 고양이들에게 흔한 분홍색 발바닥은 ‘딸기 젤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어두운 색 계열의 털을 지닌 고양이의 발바닥은 ‘초코 젤리’, ‘포도 젤리’ 등으로 부르는데, 애묘가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별칭이다.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 스밀라의 발바닥은.. 2007. 11. 2.
고양이말 번역가 우리 집에서 스밀라는 ‘시간 잡아먹는 고양이’로 통한다. 녀석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깃털 장난감을 흔들거나 털을 빗어 주거나 하다 보면, 한 시간은 뚝딱 지나가 버리니 말이다. 고양이와 함께 산 지 1년이 넘어가면서, 이제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에 나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딱 두 가지인 줄 알았다. 평상시의 ‘야옹’ 하는 소리와, 발정기 때의 약간 기괴한 울음소리. 하지만 스밀라 덕분에 어설프게나마 ‘고양이 언어 초벌 번역’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 참고로 고양이마다 울음소리에 차이가 있으므로, 우리 집에서 먹히는 번역이 다른 집 고양이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스밀라가 눈을 절반쯤 감다시피 뜨고 ‘앵!’ 하고 짧게 울면, 기.. 2007. 10. 19.
애견 운동장을 지읍시다 » 일본의 애견 운동장. 펜스를 친 공간 안에서 목줄을 푼 개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다. 사진 이지묘 도시에서 개가 마음 놓고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간신히 짬을 내어 개를 산책시킬라치면, 무섭다며 비명 지르는 사람, 내 개가 눈 똥도 아닌데 ‘개똥 치우라’며 면박하는 사람을 만나 마음 상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목줄 매고 사람 보폭에 맞춰 느릿느릿 걷는 개에게도 미안한 노릇. 개도, 사람도 행복하게 산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 세 마리와 함께 사는 이지묘씨는 문득 ‘한강시민공원에 애견 운동장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냈다. “반려 동물을 데리고 나오는 게 죄가 되는 분위기가 화났죠. 일부 양심 없는 개 주인 때문에 개 키우는 사람들이 뭉뚱그려 욕먹는 것도 싫었고요. .. 2007. 10. 4.
접대 고양이를 아십니까 마음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꿈꾼다. 고양이 동호회 게시판을 기웃거리고, 애묘가의 블로그를 즐겨찾기하고, 오프라인 고양이 카페를 찾아 아쉬움을 달랜다. 애묘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꿈을 잠시나마 이뤄주는 ‘고양이 테마파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쿄의 신흥 쇼핑지구 오다이바에 위치한 ‘네코타마 캐츠리빙’도 그중 하나다. ‘고양이 100마리와 놀 수 있는 테마파크’란 말에 솔깃해져서 이곳을 찾았을 때, 실제로 눈에 띈 것은 열댓 마리 남짓한 고양이뿐이었다. 그럼 나머지 고양이는 어디에? 한쪽 벽 구석에 붙은 ‘접대묘’ 명단 속에만 있다. ‘미녀 100명 상시 대기’ 따위의 유흥주점 전단지를 보았을 때와 같은 황당함이랄까. 규모 면.. 2007. 9. 6.
샴비는 우울증 치료제-고양이 작가 성유진 우울함이 극에 달하면 살가운 위로의 말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마음이 바닥으로 치달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다가와 발치에 머리를 비비는 반려동물에게서 힘을 얻는다. 고양이와 인간이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생명체를 그리는 화가 성유진씨에게도, 고양이 샴비는 우울증 치료제 같은 존재다. 성씨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건 대학을 다닐 무렵이었다. 겉으론 밝고 명랑해 보였지만, 감정을 억누르는 성격이 그의 마음을 좀먹었다. 절친했던 친구가 절교 선언을 하면서 감정이 폭주했다. 폭식과 구토를 반복했고, 일주일 만에 10㎏이 늘었다. 그러다 고양이를 키우면 우울함도 덜해진다는 말을 듣고, 2006년 봄 발리니즈 종의 수고양이 ‘샴비’를 입양했다. “제 상상 속의 고양이는 얌전하고 새침한 모습이었는데, 샴비는 절.. 2007.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