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반이 되면 부엌에서 달각달각 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가 새벽밥을 차리는 소리다. 부엌과 방은 얄팍한 벽 하나로 나뉘었을 뿐이라, 방음 따위 될 리 없다. 그릇과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탕, 문 닫는 소리, 전자렌지에 음식이 돌아가다 땡, 멈추는 소리, 잠시 조용하다 다시 30분 넘게 이어지는 설거지 소리. 하다못해 설거지라도 하지 말고 그냥 두시라고 했더니, 당신이 해야 한다는 거다. 나도 어머니도 잠을 설쳐 힘들다고 몇 번이나 말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다른 가족을 생각해서 아침 시간을 늦출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푸념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으니 결국 포기하고 귀마개를 끼고 잤다. 서로 다른 생활주기를 가진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부대낄 때 생기는 불편함은, 가족이라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함민복 시인을 만나 이런 푸념을 늘어놓았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의 세 번째 산문집《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현대문학)에 수록된 마지막 글, <사람 소리>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셋집을 정리하고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이 셋방으로 옮겨간 시인은, 이사 첫날 얇은 벽 사이로 전해지는 옆방 소음에 난감해한다. 한데 그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내는 소음이 옆방에 불편을 줄까 고민한다. 화장실 물도 눈치 보며 내리고, 놀러온 아는 동생에게도 목소리를 낮추라고 안절부절못한다. 그런 그의 불안은 "괜잖시다. 다, 사람 사는 소리 아니꺄. 사람 소리인데, 뭘 그러시꺄" 하는 동생의 한 마디에 툭 털어진다. “아이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 다 사람 살아가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못 받아들이고 못 껴안을 게 뭐 있겠는가” 라 하는 시인의 글은, 아직 내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있다.
삶의 고단함도 ‘사람 사는 소리’로 껴안는 시인의 마음은 산문집 전반에 일관되게 흐른다. 1996년부터 강화도에 정착해 시 쓰고 낙지 잡으며 '강화도 시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번잡한 도시에서 만날 수 없는 자연의 친구들이 하나하나 글감이 됐다. 밥 지으려 꺼낸 쌀에서 쌀벌레가 수십 마리 나와도 “식객들이 이렇게 많이 나와 동거를 하고 있었으니, 내가 만날 독상을 대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고맙게 여긴다. 함께 사는 개에게 “야, 길상이 너는 왜 한 귀는 세우고 한 귀는 세우지 않았냐” 묻고는 “응, 세상 소리 반만 들으며 살라 한다고” 대신 답했다가, 다시 “응,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지 않으려고 한 귀는 닫고 한 귀는 세웠다고” 고쳐 답한다. 나비와 대화하고, 막걸리에게서도 예의를 배우는 시인이 글 사이로 툭툭 섞는 농담은 썰렁한 듯하지만 잔잔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청빈한 삶을 담은 진솔한 글과 더불어 마음을 울리는 건 어머니에 대한 몇 편의 글이다. 전작인 《눈물은 왜 짠가》에서 마음을 짠하게 했던 ‘설렁탕 에피소드’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병든 어머니와 작별하고 어머니를 추억하는 글에서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를테면 <산소 코뚜레>나 <나는 내 맘만 믿고> 같은. 살아생전 양복 입은 아들 모습을 보지 못한 어머니께 보여드리기 위해 상조회에서 빌린 양복 입고 영정 앞에서 씩 웃는 아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고향집 지역번호 043이 휴대폰에 찍혀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는, 그리움과 슬픔 두 바퀴는 그대로 남았는데 손잡이가 될 축은 사라져버려 어쩔 줄 모르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산문집을 쓰면 흔히 '외도'라고 말하지만, 나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작가의 일상을 알 수 있어서 산문집이 좋다. 작가의 글이 어떤 삶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보여주니까. 마음이 쓸쓸해지는 계절, 유머와 페이소스가 함께하는 함민복의 산문집을 추천해본다.
*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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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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