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우석훈은 고양이 사랑이 각별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블로그에 드문드문 올라오던 그의 길고양이 이야기가 얼마 전 <아날로그 사랑법>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4년여 간 마당 길고양이 10여 마리와 함께하며 느낀 '돌봄의 가치'를 담은 책이다. 글뿐 아니라 사진도 직접 찍었다. 역시 블로그로 볼 때와 책으로 볼 때의 느낌은 다르다. 블로그의 포스트가 낱장으로 흩어진 종이라면, 책은 그 종이를 하나하나 이어붙여 묵직한 생각의 덩어리로 안겨준다. 길고양이에게 배우는 아날로그 사랑법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면, 마당 고양이들의 얼굴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저자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야옹구도 길에서 데려온 인연이 있고, 고양이를 돌보다 보니 마당에 찾아오는 길고양이에게도 마음이 가서 밥을 챙겨주게 되었다고 한다. 이사갈 때는 마당 고양이들이 걱정되어 녀석들을 데리고 이주방사를 감행한다. 마당으로 밥을 얻어먹으러 오던 길고양이들이 하루아침에 집주인이 바뀌어 홀대를 당할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의 다른 책에도 가끔 '야옹구'의 이야기가 등장하곤 했다. 야옹구는 생후 4개월 무렵 사경을 헤매는 상태로 발견된 길고양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 편한 집고양이. 철학자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해서 원래 지어준 본명은 '헤게루'. 헤겔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엔 절대 반응을 안하는 바람에 다시 붙여준 이름은 '싼나 미르달'. 스웨덴 경제학자 군나르 미르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워낙 집안 곳곳에 오줌을 자주 싸는 녀석이라 그렇게 불렀다고. 하지만 집에서 편하게 부르는 애칭은 야옹구.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면 '야옹이' '나비' 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녀석도 자연스레 야옹구가 되었다. 그의 전작들을 읽으며 또반가운 마음에 그의 블로그를 찾아가 야옹구의 귀여운 모습을 염탐하곤 했는데, 야옹구의 팬이라면 이번 책에 더욱 마음이 갈 듯하다.
책의 도입부에는 등장인물, 아니 등장묘들의 간략한 소개가 나와 있다. 노랑둥이 가족이라 무늬가 헷갈리는데 미리 가족소개를 읽고 보면 도움이 된다. 그가 가치를 두었던 단어인 '강북'과 '생협'이 고양이의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 흥미롭다.
왜 그는 돌봄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우석훈은 서문에서 '돌봄'과 '사랑'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하면 보통 소유하려고 하고 집착으로 바뀌기 쉬운데 돌봄은 그 대상을 가지려고 하는 건 아니다. 내가 길거리에 떠도는 고양이 몇 마리에게 밥을 준다고 해서, 그들이 내 소유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듯이 말이다.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것, 그것은 소유하지 않으려는 사랑이 아닌가. 그 정도가 내가 내린 임시 결론이다.
최근의 사회적 트렌드였던 '힐링'이 내가 아픈 것에만 주목한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돌봄'의 가치는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너의 아픔이 사라진다면 나의 아픔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먼저 아픈 너에게 손을 내민다면, 나의 아픔도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이렇게 서문을 끝맺는다.
조금씩 서로를 돌보며 약간씩 서로 숨 쉴 공간을 만드는 것.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면서 누구나 다 돌봄을 받고 있다는사실을 이제는 배울 차례다. 삶은 싸우는 게 다가 아니고 힐링이 다가 아니다. 그 양극단 사이에 돌봄이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극진한 돌봄을 받으며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존재가 아니던가. 살아 있는 모든 것끼리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며, 쉬엄쉬엄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행복이란 놈은 저어기 앞에서 우릴 마중 나와 있을 거다. 그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책에는 야옹구의 모습이 종종 등장하지만, 바보 삼촌과 엄마 고양이, 그리고 새끼 고양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마음을 끌었다. 내가 마당 있는 집을 부러워한다면, 그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우리 집 안마당에서 들어와 밥 먹는 녀석까지 누가 뭐라할 수는 없을 거 아닌가.
햇볕 따사로운 날 서로 몸을 맞대고 앉아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길고양이들.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걸 녀석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가 마음을 놓고 있는 풍경을 보면 내 마음도 평화로워진다.
길고양이의 삶은 혹독한 것이지만 특히 어린 고양이들에게는 가혹하다. 고양이별로 떠난 고양이들과의 사연을 보면서 생전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련해진다. 사진 속에서만큼은 녀석들의 추억도 생생히 살아 있으리라.
저자가 집을 이사하면서 함께 이주방사를 한 길고양이 가족들의 모습. 서로 의지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이 짠하다. 누군가를 대가 없이 돌본다는 것. 이 책은 조건없는 돌봄을 통해 순수한 기쁨을 얻는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한다. 물론 책에 길고양이 이야기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살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기를 기르며 느끼는 소회까지 수많은 인연이 이 책 안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그 인연들을 돌아보고, 때론 돌보며 나누는 사랑은 무심한 듯 다정한 고양이 식의 사랑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날로그 사랑법'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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