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마츠야마 현으로 고양이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고양이 섬 아오시마. 처음에는 당연히 별 무리 없이 들어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섬은 하늘이 허락해줘야 발을 디딜 수 있는 땅이었다. 섬으로 들어가는 날은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렸다. 사실 비보다 더 큰 문제는 바람이었다. 이십 명 남짓 탈 수 있는 작은 배는 풍랑이 일면 위험하다. 오전 배는 들어가도, 오후 배는 뜨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함께 배를 탔던 사람들 모두의 눈에 실망한 빛이 어렸다. 결국 들어온 배로 다시 나가야 하는 상황.
아예 오후 배는 운항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배가 뜰지 말지 모르겠다고 하니 마음이 더 복잡했다. 하지만 그날 섬에서 발이 묶인다면 다음날로 잡힌 귀국 일정도 무리가 생길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고양이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잠시 돌아본 뒤 고양이 먹이터에서 먹이를 주고 나서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고양이 여행을 떠날 때면, 중간에 허비하는 시간이 없도록 목적지와 다음 목적지 사이의 경로를 구글맵으로 미리 확인해둔다. 교통편과 소요 시간까지 완벽하게 정리해서 이동해야 안심이 됐다. 그렇게 꼼꼼하게 준비해도 여행에는 늘 변수가 생긴다. 그걸 알기에 한 곳 정도 못 가게 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날은 하루 종일 고양이 섬에서 보내기로 한 터라 다른 일정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간 상태였다. 하나뿐인 목표가 사라지면 의욕도 사라진다. 비까지 내렸다 말았다 하니 마음은 더 바닥을 쳤다. 그렇다고 숙소에만 있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일단 도고 온천 근처의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바로 옆 도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예정에 있었던 일정은 아니지만, 어쩐지 공원 고양이들은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고양이 섬에서 느낀 아쉬움을 만회할 만큼, 공원 곳곳에서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와 만날 수 있었다. 공원 한 구석 정자에서는 길고양이들에게 밥 주는 할머니를 만났고, 소나무 아래 쉬던 줄무늬 고양이와는 한동안 눈 맞추고 “앵, 앵~” 소리를 주고받으며 놀기도 했다. 조금 멀리까지 돌아볼까 하고 공원을 한 바퀴 도는데, 평상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커다란 찹쌀떡 같은 털뭉치가 눈에 띄었다. 얼룩무늬 흰 고양이였다. 비를 피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앞발을 가슴털 아래 집어넣고 식빵 자세를 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상황, 오늘은 여기가 마지막이겠구나 싶어 나도 평상 위에 올라가 고양이 곁에 배를 깔고 누웠다. 녀석은 갑자기 등장한 큰 고양이 같은 내 모습을 보고 당황한 눈치더니, 도망은 가지 않고 방향을 틀어 앞발에 턱을 괴고 눕는다. 의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모습이 귀여워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늘 강행군으로 마무리했던 ‘고양이 취재 여행’과 다르게 이번 여행은 본의 아니게 ‘고양이 휴양 여행’이 됐다. 하지만 사는 게 늘 예정대로만 될 수 없다면, 좋은 일과 힘든 일의 합이 평균치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것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겐 이번 여행은 ‘평균 이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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