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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고개를 숙이고 걷는 고양이

by 야옹서가 2008. 1. 22.
갤러리 잔다리로 가는 길에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고개를 숙이고, 평균대처럼 도드라진 길의 경계선을 따라 걷는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느릿느릿 걷던 녀석은, 제 뒤를 쫓는 인간의 기척을 느끼고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뛰지는 않지만, 초점을 맞추며 따라 걷기에는 버거운 속도다. 

꼬리 짧은 고양이는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깃발을 빼앗긴 패잔병 같다. 의기양양해서 꼬리를 잔뜩 치켜세울 일이 있어도, 전투 자세로 들어가 상대방을 위협해야 할 때도, 저렇게 짧은 꼬리로는 영 폼이 나지 않는 것이다.

짧은 꼬리 고양이를 볼 때마다, 먼지떨이처럼 길고 풍성한 스밀라의 꼬리를 생각한다. 기분이 좋을 때면 스밀라는 무슨 의식이라도 거행하듯이 꼬리를 바짝 치켜들고 거실을 사뿐사뿐 행진한다.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슬그머니 다가와 꼬리로 내 종아리를 때리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고, 기분이 언짢거나 무료할 때면 꼬리를 들어 땅바닥을 탁탁 친다. 그러니까 고양이로 태어나서 긴 꼬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감정을 표현할 수단을 하나 잃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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