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위론적인 환경보호론을 내세우기보다, 매년 여름 인사동 거리에 나가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티셔츠에 그려주는 퍼포먼스로 대중들에게 한 발짝 다가선 환경운동을 펼친다. 교수란 직함보다 ‘인사동 티셔츠 할아버지’란 별명으로 더 친숙한 윤호섭 교수(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의 그린디자인 작품들을 만나본다.
윤호섭 교수가 설파하는 그린디자인은 웰빙 상품으로 포장된 상업디자인이 아니다. 이보다는 환경지향적인 생활 태도를 구체적인 일상의 사물로 형상화한 것에 가깝다. 주변의 버려지는 물건이나 일회용품에 재활용 가능성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멸종되어가는 동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작업 역시 그린디자인 운동의 일환이다.
환경 메시지를 그려넣은 티셔츠를 입은 윤호섭 교수가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전시 개막 인사를 하고 있다. 거창한 오픈식 대신, 환경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벼룩시장과 호떡 잔치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일상 속에서 환경 메시지를 찾는 윤호섭 교수의 소신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로, 며칠 전 동숭동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열린 '하루하루의 녹색메시지'전 개막행사를 들 수 있다. 대개 유명작가의 전시 개막일에는 푸짐한 뷔페 음식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윤 교수는 전시장 앞길에서 호떡을 팔던 청각장애인 부부를 초빙해 손님들에게 갓 구운 따끈따끈한 호떡을 대접했다. 몇 가지 음료와 떡만 준비됐을 뿐이지만, 어떤 호화로운 뷔페 음식보다 기억에 남는 인상깊은 개막식이었다.
윤호섭 교수는 개막식에서 "이번 전시를 연 덕분에 연구실이 깨끗해졌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의 작업실에는 잡동사니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다. 이미 쓴 편지봉투와 서류봉투, 골판지 상자, 빈 깡통, 노끈, 다 쓴 프린터 토너, 어묵만 쏙 빼먹고 버린 긴 대나무 막대기, 심지어 비닐테이프 조각까지. 왜 이런 것을 모을까 궁금해질 만큼 잡다한 물건들이 그득하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하찮은 것들이 모여 차곡차곡 쌓이면서 시간의 힘을 입어 흥미로운 작품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거의 새로운 재료를 사지 않고, 대부분 모아둔 일상용품과 폐자재를 동원해 만든 것이다. 인위적으로 재료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떨어져나오는 부스러기 같은 재료들을 모아 쓰기 때문에,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의 힘이 없다면 작품도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실천을 요구하는 윤 교수의 그린디자인 운동은 일상 속의 퍼포먼스이자 '시간예술'이다. 이번 전시가 '하루하루의 녹색메시지'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윤호섭 교수가 햇수로 4년 째 거리에서 티셔츠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도, 사람들이 가장 흔히 입는 흰색 면 티셔츠를 통해서 환경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윤 교수의 붓끝에서 태어난 고래와 황새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티셔츠를 보며 멸종된 황새의 비극을, 포경선에 희생되는 고래를 한번쯤 더 생각하게 된다.
올해도 여름이 돌아오면 매주 일요일 인사동에서, 초록색 모자에 노란 앞치마를 두르고 그림을 그려주는 윤호섭 교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윤 교수의 재미나는 작품들을 보고 싶다면, 동숭홀 옆 제로원디자인센터로 찾아가보자. 호떡 잔치는 아쉽게도 개막일에 끝났지만, 전시는 4월 2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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