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다음 2006.03.21] 1970년 11월,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몸을 불사른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만화 <태일이>로 전태일을 되살려낸 만화가 최호철을 만났다. 달동네 풍경, 봉제공장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의 삶까지 두루 포착한 최호철의 다른 그림들도 함께 소개한다.
2003년부터 월간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 중인 <태일이>.
최호철은 1980년대 민중미술판에서 활동하다 만화가로 선회한 작가다. 초창기 그의 작업에 담긴 정서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1970년대 달동네 정서’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몸 붙이고 살아온 오래된 동네에 대한 헌사이자, 주변부적 삶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내가 겪은 일, 본 것, 감흥을 받았던 것들을 그리겠다는 그의 신조는 “알기 쉬운 그림을 그리자”는 말로 요약된다.
‘보이는 것’을 넘어 ‘보아야 할 것’을 그린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와우산’(1994)을 보자. 소가 누운 형상의 와우산 머리는 오른편의 난지도를 향한다. 왼편의 63빌딩과 도심 풍경은 실제보다 훨씬 더 왜소한 모습으로 짜부라든 반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와우산은 거대하게 과장된다. 또한 달동네 꼭대기 외진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터전은 가장 크게 묘사된다.
와우산(1994)
‘와우산’은 동시대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몇 십 년 전 어느 낙후된 공간을 회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호철은 이를 가리켜 “지금도 서울 어디에선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풍경이며, 단지 사람들이 보지 못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은 ‘보이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는 세상에 일침을 놓는다. 최호철은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또한 우리가 보아야 할 세상을 화폭에 빼곡하게 그려 넣는다. 광각렌즈가 인간의 시야를 넘어선 화각으로 드넓은 풍경을 포착하듯이, ‘바로 거기’ 살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풍경까지 섬세한 펜 터치로 집요하게 그려낸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짊어지고 다녀야하는 산동네 풍경, 연탄재 버려진 텃밭, 가파른 골목길에 내놓은 화분 등의 묘사가 그것이다.
최호철의 그림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에서 저기로 쉼 없이 시점이 이동하는 “어수룩한 원근법”이 적용된 것이다. 작가는 이 같은 시점이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브뤼겔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설명하는데, 이는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브뤼겔이 ‘이카루스의 추락’에서 농부와 양치기, 낚시꾼의 태연자약한 태도를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한 무관심을 은연중에 비꼬았듯이, 최호철 역시 넘쳐나는 이미지를 묘사하면서 “우리가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이 여기 이렇게 존재하지 않느냐”고 속삭인다.
을지로 순환선(2000)
‘와우산’에서 시도했던 요소들을 지하철 안으로 옮겨온 그림이 ‘을지로 순환선’(2000)이다. 을지로 순환선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은 지하철에서 흔히 만나는 익명의 군중을 그대로 옮겨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사, 장바구니를 껴안은 피곤한 엄마, 노숙자와 새침한 아가씨, 빈자리가 있는데도 서서 가는 외국인-이 모든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지하철에 펼쳐진다. 마치 백일몽처럼 일그러진 전철 속에 피곤한 몸을 싣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동안 순수미술과 만화의 경계선상에서 작업을 해왔던 최호철의 이름은, 이제 만화가라는 호칭으로 더 익숙하다. 신문에 릴레이 만평을 싣고, 인권 만화집 《십시일반》에서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룬 ‘코리아 판타지’를 선보이며 워밍업을 한 작가는 2003년부터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전태일의 일대기 <태일이>를 만화로 연재하고 있다. 예정된 연재 분량 중 절반을 이미 끝냈고, 앞으로 절반이 남았다.
최호철이 전태일에 매료된 건 그가 ‘노력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고민만 하다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현실 문제를 명료하게 꿰뚫은 사람이었고, 그 깨달음으로 뭔가를 이루려 했던 사람이었기에 만화로 그의 삶을 재현해 보고 싶었다. <태일이>가 어린이 잡지에 연재되기는 하지만, 어른과 아이들이 알아야 할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비속어나 심한 욕설 등을 약간 걸러내는 선에서 당시 공장 노동자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을 생각이다.
전태일이 일하는 봉제공장을 그리는 최호철 작가. 책상 위에 비스듬하게 경사진 라이트박스를 올려놓고 그림을 그린다.
전태일이 일하는 봉제공장을 그리는 최호철 작가. 책상 위에 비스듬하게 경사진 라이트박스를 올려놓고 그림을 그린다.
두 개의 스탠드와 라이트박스, 컴퓨터, 펜과 연필, 그동안 모은 스케치북 등으로 작업대와 책꽂이가 가득 찼다. 책상 왼편 벽에는 만들기를 좋아하는 작가가 평소 쓰는 각종 공구들이 즐비하다.
그는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에는 《전태일 평전》을 넘어서리라 다짐했지만, 지금은 평전의 감동을 재현하기만 해도 다행”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만큼 조영래라는 필자가 걸출한 필력을 지녔기도 하지만, 전태일의 삶을 그림으로 온전히 그려내기엔 자신의 그릇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예전에 민중미술을 할 때 청계노조에서 2년 간 야학 교사를 하면서 익힌 공장의 분위기와, 당시 만났던 사람들의 기억을 토대로 작업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만으로는 힘이 부친다 했다.
초창기엔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씨를 찾아갔다가 “하다가 그만두려면 지금 관둬라”는 격려 섞인 충고도 들었고, 동생 전순옥 씨를 찾아가 조언을 듣기도 했다. 요즘은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같은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매달 연재분을 이어간다.
“<코리아 판타지>를 그리던 마음가짐으로 <태일이>도 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잘 안됐어요. 예를 들면 나이어린 시다가 졸지 않으려고 잠 안 오는 주사를 맞을 때, 이 장면을 본 태일이가 놀라야 하는지, 말려야 하는지, 아니면 담담하게 지켜봐야 하는지, 이런 상황 묘사까지 상상하고 그려 넣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죠. 단순히 공장 그림 그리고, 주사 맞는 그림 그리는 걸로 끝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큰 원칙은 있다. 전태일을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미화하기보다 그가 발견한 ‘따뜻한 사람’의 면모를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만화 제목을 ‘전태일’ 아닌, <태일이>로 정한 것도, 어리다면 어린 스물두 살 노동자의 모습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한 달에 20쪽을 그리는데, 공력이 더 쌓인 뒤에 시작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자꾸 생겨요. 그래서 앞으로 한 2년간은 다른 만화는 안 하고 <태일이>만 그릴 생각이에요.”
<태일이>가 끝나면 다큐멘터리 만화를 해볼 생각이다.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와우산’, ‘을지로 순환선’ 같은 관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그림도 그려내고 싶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거의 마지막 부분에 젊은 여자(루이스)가 백미러를 바라보면서 ‘세상이 이렇게 투명해보인 적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언젠가 제게도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한 개인의 이야기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 그림을 그려보고 싶네요. 사람이 욕구를 가졌는데 이룰 수 없는 문제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라던가….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그는 한때 대형 포스터 형식으로 500장을 찍어 주변에 돌렸던 ‘와우산’ 그림을 조만간 다시 찍어낼 거라고 했다. <태일이>가 연재되는 《고래가 그랬어》의 후원을 위해 선뜻 제공한 것이다. 와우산 그림은 고래 후원회원이 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라니, 최호철의 와우산 그림이 탐나는 사람이라면 고래 후원회원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작업실을 나서는 최호철 작가를 붙들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작가의 등 뒤로 손수 만든 지 10년이 넘었다는 낡은 책꽂이와,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 온 거라는 책꽂이가 사이좋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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