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블로그가 무슨 '병자일기'처럼 되어가고 있지만;; 어쨌든 기침하느라 밤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약국에 갔다. 어차피 감기약이 치료제도 아니고 증세를 조금 완화시킬 뿐이지만, 기침 소리에 어머니까지 잠을 설치고 고양이도 밤새 서성이는 바람에 미안해서라도 빨리 나아야겠다 싶었다.
동네 약국은 오후 9시까지만 문을 여는데, 오후 8시에 집에 도착해서 대충 씻고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어느덧 8시 53분이었다. 오늘 약국 문 닫기 전에 약을 못 사면, 오늘밤은 물론 내일 오후까지도 약국 없는 동네에서 퇴근 시간까지 버텨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다.
상가 건물까지 후다닥 뛰어가니 다행히 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주인 약사는 안 보이고, 아마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는 듯한 할머니-어쩌면 한때 약사였는지도 모르지만-만 약국을 지키고 있었다. 예전에 먹던 기성품 감기약 중에 꽤 잘 듣는 약이 있었지만, 한방과립제 형태였다는 것과 제목이 다섯 글자였다는 것만 기억날 뿐 이름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감기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자주 걸리는데도, 정작 내가 기억하는 감기약이라고는 하벤과 브론치쿰(혹은 브롬콜)밖에 없었다. 아, 코리투살도 있지만 이건 너무 오래 전 브랜드이고.
하지만 길게 고민하고 있을 순 없었다. 몇 분 있으면 곧 약국 문을 닫아야 하니까. 학교에서 제일 미운 게, 수업 마칠 때 다 됐는데 눈치없이 "질문 있습니다!"하고 번쩍 손 드는 인간 아니던가. 나는 영업 종료 2분 전에 들어온 손님으로서 최대한 빠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약사 선생님도 없어서 약을 조제해먹을 분위기도 아니었고.
"기침감기인데 밤이면 기침이 더 심해져요" 했더니, 약국 할머니는 즉각 "알약하고 물약 있는데 어떤 거?" 하셨다. 그렇다. 난 애초부터 감기 증세를 말할 필요도, 감기약 브랜드 따위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할머니에게 감기약은 하벤과 브론치쿰과 코리투살과-뭐 이런 이름들로 분류되는 대상이 아니라, '알약 아니면 물약'의 세계에 해당하는 거였다. 더없이 간결하다. 아마 좀 더 깊이 파고든다면, 할머니의 감기약 권하는 기준은 '어른은 알약, 애들은 물약'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알약이요" 하고 말하면 어쩐지 종합감기약을 권할 것 같아서, 그냥 시럽을 달라고 했다.
"그래, 시럽이 먹기는 편하지" 하고 중얼거리며 할머니가 선반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은, 곰돌이가 눈을 찌푸리고 재채기하는 그림이 그려진 '지미코프'였다. 상자 위쪽에 엷은 먼지가 앉아 있었다.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회사도 대웅제약이라 듣보잡은 아니지만, 먹어본 약이 아니어서 망설였다. 예전엔 브론치쿰의 짝퉁인 듯한 '브롬콜'을 주로 먹었는데...하지만 새로운 약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받았다. 가격은 2500원.
한데 오늘의 마지막 손님은 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30대 초반은 됨직한 청년이 내 옆에 섰다. 마침 몸을 돌리면서 나가던 참이라, 손님의 얼굴과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가 너무나 해맑게 웃으면서 "타이레놀 주세요^-^"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타이레놀을 구입하는 것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한 투였다. 타이레놀을 살 사람이면 아파서 약국을 찾았을 텐데, 그도 나처럼 약국 문 닫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약을 살 수 있어 기뻤던 건지, 아니면 영업용 얼굴에 익숙한 건지...
글을 쓰다가 '아,감기약' 하고 뚜껑 따서 먹어본다.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시럽 감기약 중에 단연 최악이다. 숫제 파스를 갈아만든 것 같은 맛이다. 어정쩡한 단맛에 파스 비스무리한 향이 섞이니 괴식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여느 시럽 감기약과 달리 '이건 약이다'란 느낌만큼은 확실했다. 부디 몸이 이 신호를 알아듣고 오늘밤 화끈하게 반응해야 할 텐데.
동네 약국은 오후 9시까지만 문을 여는데, 오후 8시에 집에 도착해서 대충 씻고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어느덧 8시 53분이었다. 오늘 약국 문 닫기 전에 약을 못 사면, 오늘밤은 물론 내일 오후까지도 약국 없는 동네에서 퇴근 시간까지 버텨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다.
상가 건물까지 후다닥 뛰어가니 다행히 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주인 약사는 안 보이고, 아마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는 듯한 할머니-어쩌면 한때 약사였는지도 모르지만-만 약국을 지키고 있었다. 예전에 먹던 기성품 감기약 중에 꽤 잘 듣는 약이 있었지만, 한방과립제 형태였다는 것과 제목이 다섯 글자였다는 것만 기억날 뿐 이름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감기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자주 걸리는데도, 정작 내가 기억하는 감기약이라고는 하벤과 브론치쿰(혹은 브롬콜)밖에 없었다. 아, 코리투살도 있지만 이건 너무 오래 전 브랜드이고.
하지만 길게 고민하고 있을 순 없었다. 몇 분 있으면 곧 약국 문을 닫아야 하니까. 학교에서 제일 미운 게, 수업 마칠 때 다 됐는데 눈치없이 "질문 있습니다!"하고 번쩍 손 드는 인간 아니던가. 나는 영업 종료 2분 전에 들어온 손님으로서 최대한 빠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약사 선생님도 없어서 약을 조제해먹을 분위기도 아니었고.
"기침감기인데 밤이면 기침이 더 심해져요" 했더니, 약국 할머니는 즉각 "알약하고 물약 있는데 어떤 거?" 하셨다. 그렇다. 난 애초부터 감기 증세를 말할 필요도, 감기약 브랜드 따위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할머니에게 감기약은 하벤과 브론치쿰과 코리투살과-뭐 이런 이름들로 분류되는 대상이 아니라, '알약 아니면 물약'의 세계에 해당하는 거였다. 더없이 간결하다. 아마 좀 더 깊이 파고든다면, 할머니의 감기약 권하는 기준은 '어른은 알약, 애들은 물약'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알약이요" 하고 말하면 어쩐지 종합감기약을 권할 것 같아서, 그냥 시럽을 달라고 했다.
"그래, 시럽이 먹기는 편하지" 하고 중얼거리며 할머니가 선반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은, 곰돌이가 눈을 찌푸리고 재채기하는 그림이 그려진 '지미코프'였다. 상자 위쪽에 엷은 먼지가 앉아 있었다.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회사도 대웅제약이라 듣보잡은 아니지만, 먹어본 약이 아니어서 망설였다. 예전엔 브론치쿰의 짝퉁인 듯한 '브롬콜'을 주로 먹었는데...하지만 새로운 약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받았다. 가격은 2500원.
한데 오늘의 마지막 손님은 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30대 초반은 됨직한 청년이 내 옆에 섰다. 마침 몸을 돌리면서 나가던 참이라, 손님의 얼굴과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가 너무나 해맑게 웃으면서 "타이레놀 주세요^-^"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타이레놀을 구입하는 것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한 투였다. 타이레놀을 살 사람이면 아파서 약국을 찾았을 텐데, 그도 나처럼 약국 문 닫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약을 살 수 있어 기뻤던 건지, 아니면 영업용 얼굴에 익숙한 건지...
글을 쓰다가 '아,감기약' 하고 뚜껑 따서 먹어본다.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시럽 감기약 중에 단연 최악이다. 숫제 파스를 갈아만든 것 같은 맛이다. 어정쩡한 단맛에 파스 비스무리한 향이 섞이니 괴식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여느 시럽 감기약과 달리 '이건 약이다'란 느낌만큼은 확실했다. 부디 몸이 이 신호를 알아듣고 오늘밤 화끈하게 반응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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