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루(오늘)만이 영원히 있는 것이다. 오늘의 ‘오’는 감탄사이고 ‘늘’은 언제나 항상이란 뜻이다.” |
흔히 철학이라 하면 근대 이후 서구 철학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석은 맹목적으로 서구 철학을 수용하는 대신, 동양 고전과 기독교 성경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가 맡은 연경반은 ‘성경을 연구하는 반’이라는 뜻이지만, 필요하면 불경을 언급하는 일도, 주역의 팔괘를 늘어놓는 일도 망설이지 않았다. 서로 완고하게 담을 쌓아온 이종 학문의 경계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다석은, 이미 시대를 한발 앞선 지식인이었던 셈이다. 또한 근본을 모르는 ‘들온말’, 즉 외래어가 우리말의 입지를 침해하는 현실에 분개하고, 우리말의 어원에서 본뜻을 살려 쓴 ‘다석일지’를 토대로 강의하며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 사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이 이 ‘다석일지’라는 것의 원문이다. 마치 아폴리네르의 캘리그램을 연상시키는 형식으로 한자나 또는 한글을 조합해, 강의 내용을 압축한 모습이 이채롭다. ‘다석일지’에서 다석은 잊혀져가는 고어 단어를 되살려내어 한글 시를 쓰고 이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이를 그대로 두어서는 청중이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입말로 풀어 한 줄 한 줄 해석해가며 강의했다. 이처럼 토착화된 한국 철학의 한 전형을 만들어가려 한 다석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고어들이 중간 중간 눈에 밟혀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글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머릿속에서 ‘번역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은, 이 책의 여러 가지 흥미로운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책을 잡지 못하게 만든다. ‘얇기로는 시간보다 더한 것이 없다’ ‘속알을 밝혀야(明德)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알몸보다 얼맘으로 살다’와 같은 각 장의 제목처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윤문을 한 단계 더 거친 글이었다면 대중적으로 읽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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