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포털 엔키노/2000. 10] SF영화들을 보면, 긴박한 상황에서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주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혹은 에일리언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혹은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할 수 있도록 긴 통로 한쪽 끝부터 순차적으로 닫히는 문. 내가 통과한 뒤 문이 닫히면 스릴 만점이겠지만, 바로 눈앞에서 그 문이 퉁 떨어져 내릴 때의 암담함이란...윽∼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제 눈에 비친 김영삼의 작업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퉁, 퉁, 떨어져 내리는 문의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SF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한 터라 비디오작업을 연상하실 지도 모르지만, 그의 작업은 이른바 일반인들에겐 `비인기 종목`인 추상회화입니다. 장황한 이론적 배경을 늘어놓으며 현학적인 게임을 즐기는 작가도 있습니다만, 그는 라깡이나 보드리야르를 들먹이며 썰을 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가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비로 대관료를 치러 일주일 동안 전시를 하고, 전시가 끝나는 화요일이면 빡빡한 일상으로 돌아가 작업과 생계유지를 병행해야 하는, 이른바 무명작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제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 절박한 순간의 감정이 그림 속에서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시장 벽에 걸린 그림들은 흐릿한 얼룩 위에 교차되는 불규칙한 가로선 혹은 세로선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십자형이 여러 개 중복된 것처럼 보이는형태들은 작가가 1997년도부터 창살을 그리다가 우연히 가로선을 긋게 되면서 나온 것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창살의 이미지에,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장애물의 이미지가 합쳐지면서 시각적인 압박감은 더욱 커집니다. 버거운 과제를 해치우듯 삶을 살아내는 작가 앞에 펼쳐지는 사건들이 일종의 거대한 쇠창살처럼 표현되는 것이지요. `삶은 장애물 경기와 같다`는 작가의 생각이 이렇게 중첩되는 검은 선으로 나타납니다. 또 검은색의 선 뒤에서 대립을 이루는 적색과 녹색의 색면 처리는 강한 대비를 이루며 내면의 갈등구조를 드러냅니다.
전시장이 회화작품으로 채워져 있는 반면, 바닥 한쪽에는 흰색 부직포 조각들이 잔뜩 쌓여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십자형태를 일일이 손바느질해서 만든 것으로, 마치 허물을 벗은 듯한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작가는 원래 솜을 채워 넣어 통통한 형태로 전시하기로 계획했었지만, 수많은 십자 형태를 만들어내는 동안 지금 상태대로 전시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그 모습이 마치 병원침대에서 끄집어낸 시트 같기도 하고, 평면회화에서 보이는 창살 이미지가 표백되어 그림 밖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자신의 삶이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눈앞을 막아서는 건 외부의 무언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깨달음을 창작과정에서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의연함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자신을 공격하는 힘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힘이 어떤 모습을 하고 쳐들어올지 마음졸이며 기다릴 뿐이지만, 그 실체를 파악한 사람은 적어도 무엇과 싸워야 할 것인지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삶에 있어서 자신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한편으론 힘겹지만, 한편으론 뿌듯한 일이지요. 그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작업을 계속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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