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9. 2003 | 현대미술의 샤먼, 펠트와 비계덩어리의 작가, 해프닝의 창시자, 행동하는 정치예술가… 전방위예술가 요셉 보이스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그 작품성향만큼이나 다양하다. 긴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눌러쓴 채 난해하고 기상천외한 해프닝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한 요셉 보이스는, 품에 안은 죽은 토끼의 귀에 대고 예술을 설명하거나, 펠트천을 뒤집어쓰고 코요테 무리와 함께 지내는 등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로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을 당혹케 하곤 했다. 1986년 사망한 그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대신 그의 작품들과 조우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11월30일까지 열리는 요셉 보이스의 ‘샤먼과 숫사슴’전에서는 설치 및 조각작품 14점, 드로잉 43점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샤머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본 에너지의 순환과 균형
설명 없이는 해독이 어려운 요셉 보이스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작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독일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 중이었던 요셉 보이스는 크리미아 지방에 추락해 부상을 입게 됐는데, 이때 그를 발견한 타타르 원주민들이 비계를 온 몸에 발라 문지르며 체온을 높여주고 펠트천으로 감싸 살려냈다는 것. 유명한 이 ‘전설’은 다소 윤색된 형태로 부풀려졌다는 비판도 들리지만, 어쨌든 보이스는 이 때의 강렬한 체험을 계기로 작가가 되길 결심했다고 술회한다. 이는 그가 펠트천과 비계덩어리에 부여하는 상징성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즉 강한 압력으로 만들어진 펠트천은 비록 하찮은 존재지만 사물을 감싸 생명력을 보존하며, 비계는 높은 열량을 유지시켜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고체와 액체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형태가 변하는 사물의 순환을 보여준다. 또한 원주민의 비법 속에 느껴지는 주술적 분위기는 남성적이고 희생적인 상징물인 숫사슴, 여성적인 것을 상징하는 토끼 등의 동물을 작품 속에 등장시키면서 요셉 보이스를 ‘현대미술의 샤먼’으로 불리게끔 하는 주된 동인이 됐다.
작품세계의 시원 보여주는 ‘브라운크로이츠’ 드로잉
이번에 소개된 작품에서도 에너지의 순환과 보존으로 대표되는 생명에 대한 관심과 영적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에너지를 구체적 형태로 응축시킨 배터리 상자를 펠트천으로 감싸 마치 침대와 같은 모습으로 구성한 ‘Campaign Bed’(1982)나 그의 대표적인 상징물 숫사슴의 모습을 약식으로 표현한 ‘Monument to the Stag’(1958-85)와 같은 형상이 등장한다. 에너지의 균형에 대한 관심이 영적 균형에 대한 표출로 이어지면 ‘Scala Napoletana’(1985)와 같은 작품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예컨대 ‘Scala Napoletana’는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위태롭게 기울어진 사다리가 마치 꿈에서처럼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두 개의 추가 양쪽에서 잡아당기며 균형을 잡아줌으로써 가능하다.
또한 설치작품과 더불어 대거 소개된 드로잉은 그의 작품세계가 구체적인 형상을 얻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시발점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활용한 봉투, 찢어진 종이, 신문, 노트, 포장지, 트레이싱페이퍼 등 다양한 종이 위에 그려낸 그림에서는 요셉 보이스 자신이 직접 ‘브라운크로이츠(Braunkreuz)’라 명명한 따뜻한 갈색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는 근원적인 안정감과 보호를 상징하는 색으로, 이를 표현하기 위해 유화물감이나 수채물감 등 보편적 재료 외에도 식물 즙, 동물의 피, 심지어 초콜릿까지 동원해 그림을 그렸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성인 5천원, 학생 3천원이다. 평일은 오후 6시까지 개관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자세한 문의는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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