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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 고양이 기념비의 사연은?

by 야옹서가 2010. 8. 18.

파리 3대 묘지로 흔히 페르라셰즈 묘지, 몽파르나스 묘지,

몽마르트르 묘지를 꼽습니다만, 이중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특별한 사연을 담은 고양이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묘지에 잠든 이들 중에는 세기의 커플로 불리던 사르트르와 보봐르를

비롯해 시인 샤를 보들레르,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

등 수많은 명사들이 묻혀 있지만, 제 눈길을 끈 것은 이 기념비였는데요. 



밋밋하고 삭막해 보이기까지 하는 비석과 무덤 사이로, 뚱뚱한 뱃살을 드러낸 채 두 발로 우뚝 선 

고양이의 익살스런 모습에 그만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묻힌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가까이 가보았는데, 어쩐지 작품 스타일이 익숙합니다.


화려한 원색의 모자이크 조각, 비석에 적힌 꼬불꼬불한 글씨체는 설치작품과 조각으로 유명한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솜씨입니다. 그러나 몽파르나스에 니키 드 생팔이

묻힌 것은 아닌데...가만히 들여다보니 '리카르도'에게 바치는 기념비입니다.


리카르도라면, 1977년부터 10년간 니키 드 생팔의 어시스턴트로 함께 했던

리카르도 메농(Ricardo Menon)을 말합니다. 



1986년 니키 드 생팔이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한 조각공원 <타로 정원>에 전념할 무렵,

리카르도 메농은 숙원이던 연극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니키 드 생팔과 작별하고 파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89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니키 드 생팔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AIDS: You can't catch it holding hands?>를

공동집필했으며,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오랫동안

보필했던 리카르도 메농에 대한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그 메농과의

인연을 오랫동안 기리기 위해 이렇게 고양이 모양의 기념비까지 만들어놓은 것이죠.


넉살 좋게 잔잔한 미소를 띤 고양이와 마주보면, 숙연했던 무덤가에서도 슬며시 웃음짓게 됩니다.

니키 드 생팔은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이 다른 이에게도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라며

이 고양이 기념비를 세웠겠지요.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은 하나도 없겠지만,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알고 보면 더욱 오래 기억하게 된답니다.

언젠가 제가 이 세상과 이별하는 날이 오면, 조그만 고양이 조각과 함께 잠들고 싶네요.

무덤을 찾아오는 사람도 살며시 웃음지을 수 있고, 저 역시 외롭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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